어렸을 때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도 좋아하고 어느 정도 외향형(E) 인간이었던 나는 나이가 들면서 점차 내향형(I) 인간으로 변했다. 알고 지내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진짜 친하다고 느끼는 친구들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며, 그 마저도 내가 굳이 먼저 연락을 하거나 자주 만나지 않는다. 빈도보다는 밀도가 중요한 관계들만 유지하고 있다. 나 자신에게 좀 더 집중하고, 내 시간을 갖는 것을 선호한다. 그렇게 세월 따라 성향도 바뀌어 갔다.
파이어(FIRE,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족이라는 개념을 알고나서부터 인생의 방향을 그쪽으로 정한 것도 내 변화된 성향에 잘 맞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월급루팡은 아니었지만, 월급 그 이상의 열정은 없었고, 성취감 따위는 잊은 지 오래였다. 업무도 성격과 맞지 않아 전전긍긍하는 날들도 있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목표는 오직 하나, 빨리 돈을 모아서 노동에서 해방되는 것이었다.
근무연차가 늘면서 수입은 조금씩 늘어났지만 반대로 소비는 줄어들었다. 꾸미고 치장하는데 들이던 돈을 점점 줄여나갔고, 대신 내가 좋아하는 여행 다니는데 돈을 더 썼다. 뭐가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지 스스로 깨닫는 과정을 거치고 나니, 쓸데없는데 돈을 쓰지 않게 되었다. 파이어를 위해서는 쓸데없는 소비를 줄이고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아는 것이 중요했다.
올해 4월, 드디어 나는 1차적으로 회사를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고 내가 돈을 꽤나 모아서, 재테크에 성공해서 파이어를 한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나의 성향과 나의 생활방식에 비추어 이 정도의 자산이면 살아갈 수 있겠다는 계산과 조금은 긍정적으로 예상한 미래가 있어서다.
그러나 아직도 사실 확신은 없다. 회사에 소속되어 있을 때 느꼈던 안정감이 없어지고 나니 오히려 더 큰 책임감과 불안감이 느껴졌다. 이 선택이 잘한 것인지, 평생 추가적인 수입 없이 자산을 갉아먹으면서 살아낼 수 있을 것인지, 내가 살날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모르는데? 나 자신에게 묻고 또 묻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정해진 미래가 없으니 어떤 선택이든 온전히 옳은 것은 없다. 그때는 틀리지만 지금은 맞을 수도 있고,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이 틀릴 수도 있는 법. 선택을 옳게 만드는 것은 현재를 살아내는 나 자신일 것이다.
하여 나는 내향형 인간이 파이어를 한 이후에 어떻게 살아가는지 적어보려 한다. 어떤 시련이 있고, 어떤 행복이 있는지에 대해서. 파이어 자체가 맞고 틀린 게 아니라 내가 한 선택에 대해 내가 어떻게 책임지고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지.
때로는 찌질하고 때로는 달콤하며,
다소 불편하지만 퍽 여유로운 시간들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