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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니 완 Dec 25. 2020

수업료를 못 낸다고 왜 나를 혼내셨을까?

  중학교를 다닐 때 분기마다 내야 하는 수업료를 10일까지 내야 했다. 나는 기한 내에 수업료를 내지 못했고 수업료를 내지 못할 때면 교무실에 불려 가 많은 선생님들이 계신 곳에서 혼나거나 교실에 있는 친구들 앞에서 

'왜 수업료를 안 가져왔느냐' 고 선생님께 혼나기도 하고 교실 뒤에 서 있기도 했다.

  수업료를 못 내는 것이 내 잘못 아닌데도 수업료를 내야 하는 기한이 다가오면 다른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창피한 마음에 학교에도 가기 싫었고 공부는 더욱 하기 싫었다.


  당시 공무원이신 아버지는 매월 20일이 되어야 봉급이 나왔다. 넉넉하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봉급날을 손꼽아 기다렸고 그 이후에 학교 수업료를 낼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집에 필요한 비용을 쓸 수 있었다. 때문에 학교에서 준비물을 가져오라고 할 때도 챙겨가지 못하는 날도 자주 있었다. 


 

 학교에 다니고 싶어도 새벽같이 지게를 지우고 밭으로 끌고 가신 할아버지로 인해 학교를 다니지 못한 아버지는 자식들은 어떻게라도 공부를 시키려고 하셨기에 아버지는 봉급이 나오면 수업료를 가장 먼저 챙겨주셨다. 그런 부모님 마음을 알고 또 재촉한다고 빨리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에게 혼이 나더라도 아버지의 봉급날을 기다려 수업료를 내곤 했다. 

  아버지는 수업료를 늦게 내는 것이 미안해서 선생님께 양해해달라고 직접 전화도 드리고 수업료 늦게 내서 죄송하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리라고 하셔서

 '죄송하지만 아버지 봉급이 나오면 수업료를 낼 수 있어요'라고 말을 했다.


  아버지 봉급이 나와야 수업료를 낼 수 있다고 말을 한 것은 중학생인 내가 수업료 내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고 봉급이 나와야 낼 수 있다고 말하면 선생님께서 기다려주기를 기대했는데...

'선생님들은 왜 나를 혼내셨을까?' 

  선생님이 원망스럽고 속상하며 이해가 되지 않아 더 힘들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나를 혼냈던 선생님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겠지 생각하지만 어릴 때 가졌던 창피하고 속상했던 부정적 경험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아이들이 유치원과  초등학교 다닐 때는 준비물을 가져오라는 알림장을 보면 우리 아이뿐만 아니라 가져오지 못한 친구들과 나누어 쓸 수 있는 만큼 넉넉하게 챙겨서 보내었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학교에 무엇인가 내야 할 때면 기한을 지키려고 노력했고. 대학교 다닐 때는 두 아이가  동시에 사립대를 다니게 되어 한번에 등록금을 챙기려면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등록금을 기한 내에 내려고 힘을 다해 노력했었다.  힘을 다해도 안 되는 상황도 있을 수 있는데 다행히 그때는 일하는 만큼 경제적으로 보상을 받을 때라 가능했지 싶어 감사하다.


  아이들은 나와 다른 시대를 살고 있어 등록금을 조금 늦게 낸다고 예전의 나처럼 친구들 앞에서 창피를 당하거나 교무실에 불려 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든 채워주려고 하고, 아이들이 알바도 하지 못하게 하며 부모니까 감당하려고 애쓰며 버거워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부모로서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어릴 때 아픈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 다르게 하고 있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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