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생각보다 짧다
누군가에게 최선을 다했음에도 그 누군가의 최선이 내가 아닌 경우는 허다하다. 그는 자신을 자책했다. 정성을 쏟은 그 시간을 후회하고, 사람을 볼 줄 모르는 자신에게 화를 내기도 하며, 함께 했던 추억에 젖어 슬펐다가 그 추억에 다시 분노가 차오르기도 했다. 결국 제자리걸음 같은 되새김에 자신의 감정만 상처받고, 피폐해진 채로 나를 찾아왔다.
이야기인지, 넋두리인지 모를 상대방의 말들을 듣고 난 후 오랜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상담사도 아니고, 해결사도 아니기에 그를 달래거나 위로해줄 마음은 없었다. 뻔한 위로는 오히려 독이 되고, 나 역시도 그가 뻔한 말을 듣기 위해 나를 찾아온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나는 솔직한 내 감정을 담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보다 그 사람이 더 불쌍해"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었는지 그는 화를 내고, 기분이 상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지만 이내 이유를 듣고 싶어 했다. 왜, 자신이 아닌 상대방이 불쌍하다고 하는지에 대해.
어쩌면 나의 생각 또한 상당한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전문가가 아니기에. 하지만 그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누군가가 나에게 저렇게 최선을 다한적이 있었나?'라는 생각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이유가 없으면서도 이유가 있다. 그 모든 조건들이 맞아 타인이 나를 좋아하고, 생각해주고, 잘되기를 바라고, 진심으로 대한다. 그런 사람을, 인생에 한 번도 만나기 힘든 그런 사람에게 상처를 준 사람은 소중함의 무게를 모르는 사람이기에 불쌍했다.
가장 힘들 때 , 가장 행복할 때 옆에 있어준 사람을 소홀히 대하는 것은 눈앞에서 로또 1등 용지를 찢어버리는 것과 비슷하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의미일 수도. 조각조각난 종이들을 다시 붙인다고 해도 절대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음을 모르는 그 사람이 불쌍했다.
운이 좋으면 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의 최선이 될 수도 있지만, 소중함의 무게를 모르는 그 사람은 그 인연 또한 가볍게 생각해 놓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그렇기에 나는 그 사람이 오히려 불쌍했다. 운이 좋고, 복이 많지만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그 사람이.
나의 말을 전달한 후에 나는 말했다.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다면 에너지를 같이 공유할 수 있는, 결이 비슷한 사람과 함께 하라고.
상처의 기억을 되새기는 것은 상처받은 부위를 다시 한번 상처 입히는 것과 같다. 그것을 알면서도 상처를 받은 사람은 되새기고, 또 상처를 받는다. 그러나 상처가 났던 자리엔 새살이 돋는다. 흉터 없이 새살이 돋기 위해서는 나 자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우선이다. 다른 사람에 의해 상처만 받고 살기엔 우리의 인생이 너무 짧다. 되새기지 말고, 상처받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