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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고, 지나치고

by Juma

매거진에 글을 오랜만에 쓰려고 보니, 짧은 글로 풀어냈던 나의 이전글을 읽게 되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마음에 담아두기에 벅찬 감정들을 옮겨놓는 것인데, 글을 읽으니 그때의 내가 어렴풋이 느껴졌다.


예전의 내 감정을, 나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때의 감정들이 손에서 빠져나가는 고운 모래알 같다는 생각은 한다. 부여잡지 않으면 절로 빠져나갈 것들. 남은 모래알마저도 바람에 휘날려 제자리로 돌아갈 것들. 나는 왜 그런 것들에 감정을 소모하고, 시간을 허비하고, 힘듦을 자처했을까.


열두 살 때 쓴 일기장에는 열두 살의 내가 적어놓은 수많은 감정들이 있다. 친해지고 싶은 친구와 더 친해지지 못해 애가 타는 마음을, 학원을 가기 싫은데 억지로 가야 하는 착잡함을, 친구 집에서 자고 싶은데 허락해주지 않는 부모님에 대한 섭섭함을 모두 글로 써서 기록해 두었다. 그것과 더불어 좋아하는 친구에 대한 마음을, 동생과 함께 보낸 즐거운 하루를, 커서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희망도 글로 적어두었다. 마음에 담아두기 벅찬 힘듦과 설렘과 행복이라는 감정을 모두 덜어내어 적어둔 것이다.


열두 살 때 쓴 일기장이나, 내가 전에 써놓은 매거진이나 별반 다를 것은 없다. 그때가 언제든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경험을 했기에 후회도 할 수 있다. 경험하지 않았다면 다른 방식으로 감정을 소모하고, 시간을 허비하고, 힘듦을 자처했을 것이다. 오히려 내가 했던 선택이 늘 최선이었기에 나는 지금 의 삶을 살아낼 수 있는 것이라 믿는다.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닐 것들, 고운 모래알처럼 쉽게 빠져나갈 것들이 나를 힘들게 할지라도, 꼭 지나가야 할 일이라면 지나치도록 기다려야지. 시간이 흘러 지금의 내가 그리워질 때, 쥐고 있던 모래알을 보러 와서 똑같은 말을 반복할 것이다.


참 별일 아니었는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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