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플로리스트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퇴사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플로리스트가 아니다. 하지만 주로 수학이나 과학과 같이 답이 정해진 공부를 주로 해온 나에게 ‘플로리스트’로서의 짧은 경험은 그동안 잘 모르고 살았던 예술 분야에 눈을 뜨게 해 주었으며 세상을 좀 더 다채롭게 바라보고 풍부하게 느낄 수 있는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퇴사 후 플로리스트가 되기로 결심한 뒤, 3년 간의 퇴직금을 털어 국내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수업을 등록했다. 대학 등록금보다도 훨씬 비싼 금액이라 지금 돌아봐서 생각하면 그 결단력이 멋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충동적이고 무모했다는 생각도 든다. 선생님의 실력과 가치관을 우선으로 보고 신중하게 골랐던 터라 수업 자체의 질은 수강료만큼의 값어치를 했다. 선생님께서는 오랫동안 영국에서 플로리스트로 일을 하고 오신 만큼 꽃과 디자인에 대한 안목이 높으셨고 언행에도 진심이 묻어나 신뢰가 갔던 분이셨다. 또한 평일 오전 시간대에 이루어지는 수업이라 다른 사람들이 출근하는 시간에 꽃을 배우러 가는 기분도 너무나도 설레고 행복했다. 집에는 감당이 안될 정도로 꽃이 너무 많이 쌓여서 수강기간 동안 친구들을 만나러 갈 때면 항상 꽃다발을 준비해 갔다. 친구들이 내 꽃을 받을 때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덩달아 행복했다.
평일 오전에 꽃 수업을 들으며 하루하루 설레고 여유로운 일상을 보내던 차에 어느덧 종강이 다가왔고, 29살의 나는 퇴사 7개월 만에 플로리스트로서 첫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하게 될 일은 웨딩 성수기 시즌인 5월 한 달 동안 서울의 유명한 호텔인 w호텔에서 내 플라워 팀에서 보조를 하는 것이었다. 플로리스트 업계에서 호텔에서 일을 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소문을 익히 들었던지라 약간 긴장이 되기도 했다. 나는 주말에 열리는 웨딩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무거운 화기를 나르고, 닦고, 수백 개의 꽃을 컨디셔닝(꽃의 잎이나 줄기를 다듬는 행위)하면서 봄햇살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과 처음으로 ‘플로리스트’로서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것이 무척 뿌듯했다. 힘들다며 중간에 그만둔 아르바이트생들도 많았지만 출퇴근을 왕복 4시간을 걸려 하면서도 나의 첫 아르바이트를 무사히 마쳤다.
호텔 아르바이트가 끝나는 시점에 맞추어 두 번째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번에도 비슷하게 웨딩 이벤트 전문업체의 플라워팀에서 보조업무를 하게 되었다. 원래는 업체에서 급하게 사람이 필요하여 당일 아르바이트로 나간 것이었는데, 부부였던 대표님과 팀장님께서 내가 열정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좋게 봐주셨는지 그 뒤로 계속 함께 일을 하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화기 나르기, 컨디셔닝 작업만 시키던 첫 번째 아르바이트와 다르게 초보자인 나에게도 직접 꽃을 꽂게 해 주셨다. 플로리스트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과 나의 취향을 반영해 정성스럽게 꽃을 꽂았다. 일을 하면서도 꽃을 배우는 느낌이었다. 그 전에는 수백만 원을 들여 꽃을 배웠지만 이제는 꽃을 배우며 돈을 벌고 있었다. 몇 푼 되지도 않는 돈을 벌고 있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분야에서 한 걸음씩 발전해나가고 있는 나 자신이 대견했다. 또한 대표님과 팀장님은 사람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기본이 될 뿐 아니라 웨딩이라는 고객 인생의 중요한 이벤트를 자신의 일처럼 최선을 다하시며 준비하시는 좋은 분들이셨다. 그동안 직장이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 곳인 줄 알았던 나에게 열심히 일하고 싶은 직장, 배우고 싶은 상사라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처음 깨달은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