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내가 부자라는 소문이 회사에 돌았다 한다.
'000가 해운대 마린시티에 아파트를 갖고 있다더라.'
회사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한다.
그 사실을 한참 지난 뒤에야 알았다.
어느 날 선배가 술자리에서 말을 꺼냈다.
"니 집 있다메!"
"무슨 집이요? 무주택자인데"
무주택자란 소리에 선배는 위안이 됐나 보다.
감추려 해도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눈은 웃지 않으려 하고 있어도 입꼬리는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진짜가? 없나?"
"진짭니다. 없는 걸 없다 하지"
"엥 왜 그런 소문이 났지?"
그날 선배는 안타까움에 집이 있어야 되느니 어쩌니 장황하게 떠들어 댔다.
집이 없다는 사실이 선배에게는 안쓰러움 20% 기쁨 80%가 된 듯 보였다.
자신보다 못한 후배를 보며 위안이 됐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문의 진상을 생각해 보니 문득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회사 사람들과 비싸게 분양해 짓고 있는 아파트를 지나갈 때
"와 내 집이 지어지고 있네. 화장실 한 칸 정도 살 수 있는 집! 저런데 언제 살 수 있나"
사람들은 "화장실 한 칸"이라는 단어가 아닌 "내 집"에 집중했고.
"저런데" 보다 "언제 살 수 있나"에 집중하면서
순간 저 집을 갖고 있는 여자가 돼 버렸다.
이후에 회사 사람들이 가끔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분양 좀 어떻게 받아야 되냐고 문의를 하면 '있는 것들이 더 심하네, 또 무슨 집?'
하는 눈길로 쳐다보고 대답도 잘 안 해줬다.
여하튼 소문 잘 내는 선배에게 내가 집 한 칸 없는 무주택자라고 밝히고 나서
회사에 순식간에 집도 절도 없는 캥거루족임이 확인이 되자
회사사람들, 특히 선배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측은지심.
술자리에서 집이 있냐고 물었던 선배에게 이어 물었다.
"부자라고 소문나면 좋은 것 아니에요? 없는 것보다 낫네!"
입은 가볍지만 세상살이에 능한 선배가 답했다.
"바보야. 차라리 못 산다고 소문나는 게 좋지 회사에서 니 잘 산다고 소문 나봤자
하나도 안 좋다. 회사 어려워지면 잘리는 1순위 되는 거 모르나?"
머리에 번개가 쳤다.
그렇네. 회사에서는 못살고 애처롭고 측은하고 가여운 게 차라리 낫네.
밖에서 떵떵거리더라도 회사에서는 절대 표시를 내면 안 되겠네.
돈 없고 부러울 것 하나도 없는 나에게
되레 사람들이 잘해 주니 더욱 그렇다.
그런데 나는 객관적으로도
남들이 부러워할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성공을 한 것도, 돈을 많이 번 것도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굳이 가여워 보이지 않으려도
남들 눈에는 가여워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적어도
적은 생기지 않을 테니...
하지만 언젠가는 꼭
이중생활을 하고 싶다.
성공함을 감추고 회사에 다니는 그 이중생활을.
회사서 잘랐는데 알고 보니 뒤통수 칠 만큼
더 잘 돼 있는
그런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