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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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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녀 Mar 19. 2024

부러워할게 하나 없는 인생이
나쁘지 않은 이유.

나도 모르게 내가 부자라는 소문이 회사에 돌았다 한다.

'000가 해운대 마린시티에 아파트를 갖고 있다더라.'

회사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한다.

그 사실을 한참 지난 뒤에야 알았다.


어느 날 선배가 술자리에서 말을 꺼냈다.

"니 집 있다메!"

"무슨 집이요? 무주택자인데"

무주택자란 소리에 선배는 위안이 됐나 보다. 

감추려 해도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눈은 웃지 않으려 하고 있어도 입꼬리는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진짜가? 없나?"

"진짭니다. 없는 걸 없다 하지"

"엥 왜 그런 소문이 났지?"

그날 선배는 안타까움에 집이 있어야 되느니 어쩌니 장황하게 떠들어 댔다.

집이 없다는 사실이 선배에게는 안쓰러움 20% 기쁨 80%가 된 듯 보였다.

자신보다 못한 후배를 보며 위안이 됐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문의 진상을 생각해 보니 문득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회사 사람들과 비싸게 분양해 짓고 있는 아파트를 지나갈 때

"와 내 집이 지어지고 있네. 화장실 한 칸 정도 살 수 있는 집! 저런데 언제 살 수 있나"

사람들은 "화장실 한 칸"이라는 단어가 아닌 "내 집"에 집중했고.

"저런데" 보다 "언제 살 수 있나"에 집중하면서

순간 저 집을 갖고 있는 여자가 돼 버렸다.

이후에 회사 사람들이 가끔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분양 좀 어떻게 받아야 되냐고 문의를 하면 '있는 것들이 더 심하네, 또 무슨 집?'

하는 눈길로 쳐다보고 대답도 잘 안 해줬다.


여하튼 소문 잘 내는 선배에게 내가 집 한 칸 없는 무주택자라고 밝히고 나서

회사에 순식간에 집도 절도 없는 캥거루족임이 확인이 되자

회사사람들, 특히 선배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측은지심.


술자리에서 집이 있냐고 물었던 선배에게 이어  물었다.

"부자라고 소문나면 좋은 것 아니에요? 없는 것보다 낫네!"

입은 가볍지만 세상살이에 능한 선배가 답했다.

"바보야. 차라리 못 산다고 소문나는 게 좋지 회사에서 니 잘 산다고 소문 나봤자 

하나도 안 좋다. 회사 어려워지면 잘리는 1순위 되는 거 모르나?"

머리에 번개가 쳤다.

그렇네. 회사에서는 못살고 애처롭고 측은하고 가여운 게 차라리 낫네.

밖에서 떵떵거리더라도 회사에서는 절대 표시를 내면 안 되겠네.

돈 없고 부러울 것 하나도 없는 나에게

되레 사람들이 잘해 주니 더욱 그렇다. 


그런데 나는 객관적으로도

남들이 부러워할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성공을 한 것도, 돈을 많이 번 것도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굳이 가여워 보이지 않으려도

남들 눈에는 가여워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적어도

적은 생기지 않을 테니...


하지만 언젠가는 꼭

이중생활을 하고 싶다.

성공함을 감추고 회사에 다니는 그 이중생활을.

회사서 잘랐는데 알고 보니 뒤통수 칠 만큼

더 잘 돼 있는 

그런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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