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 온도계가 30.5도를 가리키고 있다.
덥다고 생각하겠지만,
에어컨을 켜지 않고도 이 정도면 괜찮은 것이다.
집 안 에어컨 온도를 28도로 맞춰놔도,
거실 에어컨 바람이 내 방까지 잘 닿지 않기에.
방안 기온이 30도 31도 정도만 되어도 시원함을 느꼈다.
그런데 내 방 온도가 에어컨을 켜지 않았는데도 30.5도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밤의 바람이 달라졌다.
선선함이 더해졌다.
바닷바람을 타고 온 바람이 새벽에는 냉기까지 느껴진다.
한 낮 매미 소리도 성량이 줄어들었다.
밤에 잠깐 울던 귀뚜라미도 좀 더 길게 울기 시작했다.
기승을 부리던 더위는 이제 슬쩍 한 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여름이 지나간다.
일 년 전 여름의 첫날
난 똑똑히 기억한다.
한낮의 더위가 시작되던 날이었다.
왠지 모르게 하늘을 보며
'아 이제 여름이 시작되네'
라고 혼잣말을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그 계절이 시작되던 그날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그리고 여름을 싫어하게 됐다.
너무나 뜨겁고, 너무나 힘없고, 너무나 슬퍼서 말이다.
이제 그 여름이 지나간다.
안 지나갈 것 같았던 일 년 전 여름도,
올해 여름도
또 지나간다.
고맙다.
나 자신에게.
여름을 버텨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