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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 Nov 20. 2023

핫초코와 전기요


엄마, 그거 왔어?

아이들 성화에 현관 밖으로 나가보니 새벽 배송으로 주문한 핫초코가 여러 박스 도착해 있었다. 우유를 데워 아이들과 함께 타 먹었다. 부드러운 달달함이 온몸 구석구석을 데우며 내려갔다. 아이들은 잔을 두 손으로 감싸쥔 채 입을 집게처럼 내밀고 뜨거운 초코를 애타게 조금씩 흘려넣었다.

너희도 이 맛을 알아버렸구나.


핫초코 말고도 우리 집은 몇 가지 월동 준비를 마쳤다. 지난 주말 아웃렛과 백화점을 돌며 아이들 패딩과 남편의 발열 내의, 몇 주 전에는 내가 쓸 전기요를구입했다. 손발이 차고 추위를 많이 타지만 그동안 전기요는 사용하지 않았다. 수면 양말을 신고 차가운 겨울 이불 안에서 훈기가 돌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리곤 했다. 전기요를 사용하면 금세 따뜻한 잠자리가 준비될 것을 알지만 그 생각만으로도 왠지 차가운 겨울이 몸으로 느껴지는 것 같아 사려는 마음이 안 들었다.




처음 집을 나와 이모집에 머물었던 시기가 있었다. 대학교 3학년 때 장학금을 받아도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취업 준비를 제쳐 놓고 친척 오빠가 운영하는 강남의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12시 넘어 퇴근하기가 예사라 분당에 혼자 계시는 이모집에서 지냈다. 이모는 아주 검소한 분이었는데 특히 냉난방비를 아까워하셨다. 이모는 나에게 진심으로 잘해주셨고 기꺼이 내방은 온도를 올리라고 하셨지만 나만 따뜻하게 지낸다는 게 내키지 않았다. 잠만 자고 나가는데 굳이,라는 생각에 오자마자 잠들었다 잠결에 벗어둔 점퍼를 끌어당겨 이불 위에 덮고 잔 적도 있다.


몇 년 뒤에 다시 이모네 신세를 지게 됐는데 엄마가 어떤 경로로 샀는지 모를 옥장판을 보내줬다. 옥장판은 광택이 나는 매끈한 옥색 천 안에 골고루 둥근 옥이 박혀있었는데 위에 매트를 깔고 누워도 몸에 배겼다. 온도를 조금만 높이면 뜨겁고 낮추면 영 시원찮았지만 그나마 그게 있어 다행이었다. 그때도 일이 많은 직장이라 늘 피곤했기에 따뜻한 온도에 감지덕지하며 곯아떨어졌다.


그 시절에 나는 초콜릿을 참 많이 먹었다. 출근하며 사들고 가서 쉬는 시간마다 수시로 먹는 나를 보고 옆자리 동료가 마트에 다녀왔다며 커다란 ABC초콜릿 봉지를 건네기도 했다. 커피 대신 핫초코도 자주 마셨다. 입안에서 초콜릿이 녹아 사라지는 잠시 동안 입안의 달콤함에 집중하는 것이 좋았다. 숨을 고르기도 하고 그러다 잊기도 하고 따뜻한 기분에 취해 좋아질 거라 믿고 싶었다.




과자며 빵이며 온통 초코맛을 좋아하는 아이를 보면 남편은 자신을 닮았나 웃지만, 초콜릿을 입에 달고 살았으나 지금보다 날씬했던 20대가 떠오르는 나는 감상에 빠진다.


지나간 사랑처럼 기억이란 으레 나빴던 것은 흐릿하고 좋은 기억만 아련해진다. 따뜻한 잠자리와 달콤함이 간절했던 시기는 떠올릴 때마다 쓸쓸하지만 그때는 젊어서 나쁘지 않았다 싶다. 시간이 왜 이리 빠르냐면서, 하루가 빨리 가길 바라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울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했지만 결국 겨울은 지나갔다. 안락하게 단맛만 누릴 수 없다는 것도 알아버렸다.


그럼에도, 겨울은 추워야 한다지만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탈 누군가를 위해 이번 겨울은 조금만 덜 추웠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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