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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결된 봄 Dec 17. 2020

해결된 봄:남편의 임신_ 그날의 감정들

출산

 출산 전 날 저녁, 금방이라도 할 것 같았던 출산이 점점 늦어진 탓에 열 몇 번째 최후의 만찬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출산 짐을 최종 점검하니 벌써 자정이 다 되었다. 

 

 드디어 41주 1일 출산 당일. 잠을 잔 건지 안 잔 건지 헷갈릴 정도로 새벽을 뒤척인 아내는 전 날 미리 포장해 둔 삼계 전복죽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심한 염려와는 다르게 푹 자고 일어나서 괜스레 미안함이 몰려오는 아침이었다. 먼저 씻고 나온 아내의 몸에 튼살 크림과 오일을 적당히 비벼댄 후 펴 바르기 시작했다. 아내의 팽팽한 배에 튼 살 크림을 바르는 게 꽤 쏠쏠한 재미였는데 오늘이 지나면 이 배를 만지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고 말하며 긴장을 날린다.


 이어 비장한 마음으로 서로 죽 한 사발씩을 비우고 입을 옷을 꺼내 입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의 공기는 평온한 듯했지만 우리는 폭풍전야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병원에 도착했다. 그 어느 때보다 안전해야 할 그 날의 운전은 모든 차들이 나를 공격할 것만 같았다.  




내 아내 아님. 내 아내 한국사람, 검은머리.


 도착해서 몇 가지 검사 후 촉진제(유도분만)를 투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내는 걷기도 하고 짐볼도 타며 아기가 내려오고 자궁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약 7시간의 유도분만 시도에도 아기가 내려오지 않고 촉진제도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의사 선생님은 하루 더 유도를 진행해도 큰 변화가 없을 거라는 판단을 하셨고 우리도 그 판단에 동의하여 오후 4시에 제왕절개를 결정했다. 그리고 4시 40분, 잠시 화장실 다녀온 사이에 아내는 제대로 인사할 겨를도 없이 수술실로 향해야 했다. 두 손 잡고 기도 한 번 해주고 보내야 하는데 하필 그때 오줌이 마려웠던 것은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예상보다 빨리 다가온 수술 순서에 정말 인사할 틈도 없이 간호사 손에 이끌려 수술실로 들어가 버렸다. 걱정 말라고, 잘 될 거라고, 혼자 고생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꼭 말하고 싶었는데 말이다. 보내고 나니 눈물이 차올랐다.(기억하자. 아내를 위해 기도하고 축복하는 것은 미리미리)




 발을 동동거리며 손을 모으고 기다리기 시작했다. 눈을 계속 감았다가 떴다가를 반복했다. 기도가 끝나서 눈을 뜨고 있으면 다시 초조함이 몰려와 기도를 재시작하는 반복을 수없이 하다 보니 제법 시간이 지났다. 제왕절개 수술 들어간 지 30분 정도 지났을까. 가늘지만 거친 아기 울음소리와 함께 아내의 이름 뒤에 '남편분'이라는 단어를 붙여 나를 찾는다. 그렇게 아기와의 첫 만남을 가졌다. 그때의 감정은 아마 겪어보지 않고는 그 어떤 미사여구를 사용한다 할지라도 반의 반도 표현하지 못할 것이다. 신생아 같지 않게 보송한 피부와 뚜렷한 이목구비는 절로 감탄사를 나오게 했고 사진 몇 방 후다닥 찍는 중에 아기는 급히 어딘가로 향했다. 원래 그런가 보다 싶었다.

우리 아가 아님. 우리 아가 흑백 사진 없음.



 아기를 만난 기쁨도 잠시, 다시 아내 걱정이 시작됐다. 수술실 입구 벨을 누르고 아내의 상태를 확인했다. 


산모 건강한거죠? 


간호사 선생님은 확인하고 알려준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왕절개 잘 진행됐고 후처치를 하고 있는 중이니 마치면 불러드리겠다고 한다. 그다지 믿음이 가는 표정이 아니었기에 찜찜했다. 내 눈으로 봐야만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후처치는 생각보다 길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유가 있었다. 여하튼 일단 40~50여분의 후처치 끝에 아내가 회복실로 이동되었다는 소릴 듣고 떨리는 마음으로 병실 커튼을 걷어냈다.

 아내는 한 껏 인상을 쓰고 곤히 잠들어 있는 줄 알았는데 나를 놀라게 하려는 심산이었다. 두려움에 휩싸인 내게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혀를 내밀며 메롱을 하는 게 아닌가. 분명 아내는 그런 장난칠 컨디션이 아니었다. 그러나 내게 그리 행해준 것은 배려와 사랑이었다. 자세히 보니 눈 옆에는 눈물이 길을 낸 흔적들이 확연하다. 그 길을 따라가보니 물방울이 맺혀있다. 그래도 얼굴을 보니 마음이 아주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나는 아내의 머리를 정리해주며 늦게나마 수술실 들어갈 때 하지 못했던 말들을 늘어놓았다.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하고, 고생 진짜 많았다는 뻔한 말이지만 어떤 말이 뻔해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뻔해도 꼭 해야 할 말이기에 더 뻔해진 것이다. 그렇게 출산을 마친 아내의 모습은 신성해 보이기까지 했다. 고결 그 자체였다. 




 2020년 12월 11일, 오후 5시 09분, 우리 예쁨이가 드디어 엄마 뱃속에서 나와 세상의 공기를 마셨다. 많이 기다렸단다 아가야. 우리에게 와줘서 고맙다. 잘 이겨내줘서 고맙다. 이 땅에 태어났다는 사실이 늘 축복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게 아가야. 엄마 아빠도 널 사랑하고 예수님도 널 사랑해. 온 세상이 너를 기뻐해. 엄마 아빠가 콩보다 작았던 너를 만났을 때부터 얼마나 좋아했는지 너는 다 모를 것이다. 아빠 2kg 빠졌다. 안먹어도 배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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