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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진 Jan 19. 2024

하몽

내가 스페인으로 요리학교를 간다고 했을 때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빠에야 배우러 거기까지 가냐?" 였다. 


일반인 이상으로 요리에 관심이 깊은 분들에게나 스페인 하면 분자요리가 떠오르겠지만, 스페인 음식의 상징은 여전히 빠에야 그리고 하몽이다. 본격적인 학업을 위해 산세바스티안으로 이사를 가기 전,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하몽 생산지인 기후엘로에 들른 적이 있다.


 


스페인 고유문화의 영향으로 이곳에만 존재하는 특별한 직업이 몇 가지 있는데, Jamónero(하모네로:하몽을 전문적으로 써는 사람)가 그중 하나이다. 이날 우리는 장인이 직접 썰어주는 최고 등급의 하몽(Bellota)을 원 없이 시식할 수 있었다. 


달콤한 감칠맛을 넘어 참치, 도토리 견과류, 과실 심지어 초콜릿까지.. 장인의 작은 하몽 한 조각에서 온갖 풍미가 쏟아졌다. 나를 포함한 몇몇 참가자들도 직접 하몽을 커팅해 보는 기회를 가졌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아무리 장인의 그것을 비슷하게 따라 해도 막상 먹어보면 그 풍미가 드러나지 않았다. 아마도 스시가 그러한 영역에 있는 것과 비슷한 경우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재료가 좋으니 당연히 맛은 있었지만, 나의 하몽은 감동이 없었다. 





무딘 나는 음식에 유난 떠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그럼에도 머릿속에 ‘미식’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돈도 명예도 좋지만, 나는 언제나 이런 것들이 가장 부럽다.



어제의 내 노력이 오늘의 나에게 꼭 묻어나는 것들.

반드시 시간만이 만들어 줄 수 있는 그 무언가. 

그래서 훔칠 수도, 무너질 수도 없는 그런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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