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마지막 날, 우리는 쓰린관저공원을 찾았다. 한때는 장제스와 송미령 부부가 숨 쉬고, 걸으며, 하루를 살았던 닫힌 공간이었고, 이제는 누구나가 숨 쉬고, 걸으며, 자기만의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열린 장소가 된 곳.
쓰린관저공원에 들어서자 내가 품고 있던 분주함은 담장 너머로 밀려나고 세상은 낮은 음계로 천천히 흘러가기 시작했다.
공원은 생각보다 훨씬 잘 가꾸어져 있었다. 정갈함은 과시가 아니라 배려 같았다. 이곳이 오랜 시간 많은 손에 의해 조심스럽게 지켜져 왔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 아름다움을 누군가의 소유로 남겨두지 않고 모두에게 내어주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소유가 아니라 공유, 나는 그 선택이 마음에 들었다.
함께 걷는 아이의 발걸음이 갑자기 멈췄다. 그 앞에는 어마어마한 장미 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붉은색, 분홍색, 노란색. 색색의 장미가 겹겹이 포개진 정원은 마치 숨을 쉬는 하나의 생명처럼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이의 얼굴이 한순간에 환해졌다.
“너무 예뻐.”
아이는 장미 사이를 오가며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예쁜 꽃을 손으로 가리키고, 더 예쁜 꽃을 찾으러 조금 갔다가 이내 다시 돌아보고, 쉽게 장미 주변을 뜨지 못했다.
이 많은 장미를 보고 있으니, 송미령이 얼마나 장미를 좋아했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가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이) 공들여 가꾼 장미들 속에 그의 취향과 삶의 태도가 여전히 남아 있는 듯했다.
공원의 모든 길은 서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시야는 막히지 않으면서도 다음 풍경을 은근히 기대하게 만들었다. 앞서 걷는 사람과의 거리도,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르기에도 불편함이 없었다.
입장권을 사 관저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와 나는 방 하나하나를 천천히 걸었다. 가구의 배치, 창이 난 방향, 사소해 보이는 동선들. 그들의 일상이 스며 있었을 자리들을 말없이 따라갔다.
그렇게 삶의 결을 가까이서 마주하다 보니 송미령이 부러워졌다. 분명한 자신만의 무대 위에서
자기 언어와 신념으로 세상과 맞닿아 설 수 있는 그 또렷함이 무엇보다 더 부러웠다. 내 손을 잡은 아이가 송미령처럼 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부러움에 잠긴 채 관저를 나와 다시 정원을 걸었다. 정원 한쪽에는 작은 교회가 있었다. 교회는 눈에 띄게 웅장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다. 작은 교회를 보며, 이들 부부의 신앙은 장식이 아니라 버팀이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역사의 중심에 있던 사람들도 결국은 이런 조용한 공간에서 자신을 낮추고 마음을 다잡았으리라.
나는 내 삶을 떠올렸다.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을까. 누군가에게 이들 부부만큼의 영향을 줄 수 있을까. 비교 자체가 무의미한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들과 난 다르니까. 시대도, 조건도, 책임의 무게도 모두 다. 그럼에도 부러움이 사라지지 않는 걸 보면 영향을 주는 삶에 대한 갈망이 내 안에도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장제스의 삶은 논쟁으로 남았고, 송미령의 삶은 거리감 있는 존중으로 남았다. 둘 다 세상에 아주 큰 영향력은 펼쳤지만, 둘의 영향이 따뜻하진 않았다.
그들의 삶을 보며, 제대로 사는 삶이란 얼마나 많은 이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남겼는가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제대로 사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제대로 사는 삶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은 채, 쓰린관저공원을 나와 타이베이 메인역을 향했다. 복잡한 디화스트리트를 지나 단수이강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강가를 걷는 동안 이 도시에서의 시간이, 이번 여행이 조용히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해가 단수이강 위로 기울고, 우리는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 풍경을 이번 타이베이 여행 기억 위에 쌓았다.
여전히 제대로 사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지만, 이다음의 여행 어딘가에서는 그 답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저무는 해 뒤에서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