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옛 사랑을 찾아서 단수이로 떠났다

by 김샤갈

단수이.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동네다.

나에게 단수이는 대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곳이다. 단수이는 내게 사랑이었고, 설렘이었으며, 그리움 그 자체였다.

그런 단수이라지만, 이번 대만 여행에서는 쉽사리 이곳에 가야할지를 결정하지 못했다. 먼 길을 힘들어하는 여행 메이트, 네 살짜리 딸아이가 함께였기 때문이다.

‘단수이에 가도 될까’라는 질문은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여행을 즐기고 있던 때까지 계속해서 나를 따라다녔다. 여행의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그리운 옛사랑을 만나러 가자고. 조금 힘들더라도, 그것이 후회를 남기지 않을 유일한 선택일테니까.

단수이로 가겠다고 마음먹자 신기하게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타이베이 시내를 벗어나 바닷마을을 향해 달리는 그 시간부터 이미 행복은 시작되고 있었다.

나의 그리운 옛사랑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그곳에서 나는 어떤 감정을 마주하게 될까. 그리고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곳을 내 아이도 좋아해 줄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질문은 늘어났고, 설렘도 함께 커졌다.


가장 먼저 올드 스트리트를 걸었다. 자연스레 발길이 닿은 곳은 대왕 카스테라 가게였다. 인기 많은 가게 세 곳이 나란히 붙어 있어 하나를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아이와 함께 뜨거운 카스테라를 후후 불며 조심스럽게 한 입씩 베어 물었다. 따뜻한 빵의 온기가 손끝을 지나 마음까지 전해졌다. 더 말이 필요 없는, 단수이의 대왕 카스테라였다.


대왕카스테라를 손에 든 채 강변 산책로를 걸었다. 익숙한 스타벅스가 눈에 들어왔다. 스타벅스는 못 참지. 아이와 나는 자연스럽게 그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주스를, 나는 카페라떼를 주문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가능하다면 테라스석에 앉고 싶었지만, 그 자리는 쉽게 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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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매의 눈으로 자리를 노렸고, 결국 테라스석 하나를 차지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여유 모드로 전환했다. 잔잔히 흐르는 단수이강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셨다.

물론 그 여유는 오래가지 않았다. 네 살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나는 곧 커피 타임 대신 육아 타임을 시작했다.


커피를 마신 뒤 우리는 다시 강변을 걸었다. 걷다가 멈추고, 멈췄다가 다시 걷기를 반복했다. 아이는 길 위에서 만난 보트에 앉아 한참을 놀았다. 배를 타고 떠나는 여행자 놀이를 하며. 가방 안에는 옷과 책이 가득 들어 있고, 자기는 지금 여행을 떠나는 중이라나.

아이와 나란히 배에 앉아 있으니 문득 지난날의 단수이가 떠올랐다. 그 시절의 나 역시 이 배에 앉아 꽤 오랜 시간을 보냈었다. 그리고 그때도 지금처럼 행복했었다.

놀이터가 보이면 놀이터에서 놀고, 꽃이 보이면 꽃을 보며 놀았다. 길게 이어진 강변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으며 깨달았다. 내가 찾고 있던 힐링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이런 순간들이었음을. 그리고 내가 결국은 이곳까지 온 이유도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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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날씨도, 바람도, 햇살도 모두 완벽했다. 잔잔한 단수이강을 바라보고 있으니 요동치던 내 마음도 어느새 잔잔해졌다.

그리웠던 나의 옛사랑은 그렇게 나를 위로했다.

‘토닥토닥.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이제 괜찮아. 네 아픔은, 내가 다 품어줄게.’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듯, 우리 딸도 딸기 빙수 가게 앞을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아이는 딸기 빙수를 맛있게 먹고, 야무지게 요리 놀이까지 즐겼다.


빙수를 먹고 난 뒤 우리는 진리대학으로 향했다. 붉은 벽돌 건물의 그곳은 조용하고 단정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아이의 시선은 곧 연못에 머물렀다. 물 위로 고개를 내민 거북이를 발견하자 아이의 얼굴은 금세 환해졌다. 연못 가장자리에 쪼그려 앉아 거북이가 움직일 때마다 작은 환호를 터뜨렸다. 그런 아이의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러워 함참를 바라보았다.

아이의 웃음과 잔잔한 연못, 그리고 햇살 아래 서 있는 진리대학의 모습이 겹쳐지자 내 마음이 예뻐졌다.


진리대학 구경을 마치고 나오자, 어느새 해가 기울기 시작해 있었다. 황금빛을 머금은 햇살이 길게 늘어졌고, 낮 동안 반짝이던 풍경은 부드러운 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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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 나오며 문득 하루가 저물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타이베이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마음은 자꾸 뒤에 남았다. 몇 번이나 걸음을 늦추고,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떠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그렇게 자꾸 몸을 붙잡았다.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있었지만, 시선은 계속해서 단수이를 향했다. 저물어 가는 풍경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아이가 말했다.

“엄마, 여기 또 오자.”

아이는 이곳이 좋았다는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그 한마디로 충분했다. 내가 사랑했던 이 장소를, 내 아이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 한켠이 따뜻해졌다.

단수이.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동네.

단수이는 여전히 나를 흔들림 없이 품어주었다. 사랑은 변하는 게 아니라, 그 모습을 바꾸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움은 쌓이고, 기억은 겹쳐지고, 그 위에 새로운 시간이 덧붙여진다. 그렇게 단수이는 내 안에서 더 깊은 사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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