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여행 중 가장 깊고 진한 깨달음은 가장 고요하고 잔잔한 곳에서 찾아왔다. 공자묘.
타이베이 공자묘에 가고 싶어 하루 일정을 원산역 중심으로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그 근처에 가니 공자묘로 곧장 들어가지 못했다. 그건 공자 선생님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그놈의 예의를 차리겠다며 타이베이 공자묘 입구를 어슬렁 어슬렁 걷고 있는데, 길 건너에 있는 공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공자 선생님께 예를 갖추기 위해 잠시 들른 (내게는 휴게소 정도의 존재였던) 공원은 막상 들어가 보니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그곳은 도시 한복판이라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놀라울 정도로 평화로웠다. 나무 사이로 햇빛이 부드럽게 내려앉았고, 연못 속 금붕어들은 세상 그 누구보다 여유로운 얼굴로 헤엄치고 있었다.
아이의 걸음에 맞춰 천천히 걷다 보니 여기가 정말 타이베이인지, 아니면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세계의 입구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무릉도원이라는 말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곳이 또 있을까.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무릉도원을 한 바퀴 걸으며 마음을 고른 뒤에야 우리는 공자묘로 들어섰다. 문을 지나자 공기의 밀도가 분명히 달라졌다. 관광지 특유의 활기 대신 오래된 생각들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낸 사유 혹은 깨우침에 가까운 기운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건물 기둥에 새겨진 글자를 올려다보고, 벽에 붙은 설명문을 하나씩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걸음이 느려졌다. 아이의 발걸음에 맞추어 천천히 걸으며 그저 보고, 멈추고, 생각했다.
그때 문득, 아주 조용히 한 생각이 스쳤다. 세상이 바뀐 것이 아니라, 내가 너무 많은 걸 안다고 믿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내가 겪고 있던 그 모든 혼란과 고통은 결국 세상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은 그저 제 이치에 따라 돌고 돌았을 뿐인데, 나는 그 이치를 비난하며 내 멋대로 사람을 판단하고, 상황을 단정하고, 그 안에서 스스로를 가장 힘들게 만들고 있었던 거다.
다 내 배움이 부족했고, 그래서 깨우침도 부족했을 뿐인데 나는 그 사실을 외면한 채 세상만 탓하고 있었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나와 달리, 아이는 공자묘를 무척 즐거워하고 있었다. 아이의 눈높이에서만 보이는 것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전시물 앞에 서서 글자를 읽고 있으면 아이는 몇 번이나 나를 불러 세워 이건 뭐고, 저건 왜 저렇게 생겼냐며 궁금한 것들을 쏟아냈다.
아이의 질문은 늘 단순했다. 그 단순함 덕분에 나는 설명문을 다시 읽고, 그림을 다시 보고, 아는 척 지나쳤을 법한 것들 앞에 다시 서게 되었다. 그 반복 속에서 문득, 배운다는 건 어쩌면 이렇게 다시 묻고, 다시 바라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자묘 곳곳에는 아이를 위한 체험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버튼을 누르며 마차를 운전하는 게임 같은 전시였는데 아이는 그 앞에서 한참을 떠날 줄 몰랐다. 게임의 단계를 하나씩 넘기며 이겼다며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고 있으니 깨달음이란 꼭 무거운 얼굴로만 얻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공자묘를 한 바퀴 더 돌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를 짓누르던 생각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있었다. 나는 더 많이 아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조금 덜 단정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공자묘를 나서며 아이는 말했다.
“여기 좋다. 또 오고 싶어.”
공자묘를 나와 우리는 길 건너 보안궁으로 향했다. 공자묘에서 보안궁까지의 거리는 아주 가까웠지만, 그 짧은 이동 시간이 이상하리만큼 길게 느껴졌다.
길 위에서 올려다본 하늘이 유난히 맑았다. 특별할 것 없는 골목과 신호등, 평범한 사람들 사이를 걷고 있었지만 내 마음만큼은 분명히 조금 전과 달라져 있었다. 여전히 머릿속에는 많은 생각이 뒤얽혀 있었지만, 그 생각들이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는 않았다.
보안궁에 가까워지자 분위기가 또 한 번 바뀌었다. 공자묘가 생각의 공간이었다면, 보안궁은 기도의 공간이었다. 화려한 장식과 강한 색감, 연기처럼 흩어지는 향냄새가 이곳이 살아 있는 사원임을 말해 주는 듯했다.
보안궁은 의학의 신을 모신 사원으로, 몸의 건강을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에는 저마다의 걱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소리 내어 우는 사람도 종종 눈에 띄었다. 아이에게도 그 분위기가 전해졌는지, 공자묘에서는 질문이 많던 아이가 보안궁에서는 한결 조용해졌다.
그곳에서 나는 공자묘에서 내가 얻은 깨달음과,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품고 있는 바람은 어쩌면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덜 아프고 싶고, 덜 흔들리고 싶고, 지금보다 조금은 더 나아지고 싶은 그런 인간의 마음.
보안궁을 나설 즈음, 나는 더 이상 뭔가를 크게 바라지 않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우리는 함께 임안태고조로 향했다. 물가를 따라 이어진 그 길은, 이번 여행의 감정을 가장 또렷하게 남겨준 순간이었다. 길 위의 하늘이 참 예뻤다. 넓게 트인 하늘 아래로 조용히 흐르는 강도 참 예뻤고, 생각보다 훨씬 시원했던 바람마저도 그랬다.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 내내 ‘아, 지금 참 좋다’는 생각이 몇 번이고 마음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여행은 원래 이런 거였을까. 아무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들을 조용히 쌓아가는 일.
회사 일로 가득 차 있던 머릿속이 조금씩 비워지는 게 느껴졌다. 일이 전부인 것처럼, 회사에서의 관계와 감정이 삶 전체인 것처럼 그 안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인생은 생각보다 짧고, 여행은 이렇게 분명하게 아름다운데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상황을 원망하는 마음으로 내 시간을 더럽히며 살 필요가 있을까.
강 위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나는 아주 단순한 결론에 도착했다. 삶은 견뎌내기만 하는 게 아니라, 기분 좋게 걸어도 되는 거라는 것.
임안태고조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 아이의 손을 쥔 내 손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갔다. 지금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졌다.
임안태고조에 도착했을 때,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었고, 훨씬 정제된 공간이었다.
단정하게 다듬어진 건물과 여유로운 배치, 이곳이 한때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의 자리였는지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틀 연속, 말 그대로 부잣집을 구경했다. 그런데 집을 구경하는 그 마음은 서로 달랐다. 전 날엔 그 어떤 감정보다 타인을 향한 부러움부터 앞섰던 반면, 이날에는 모든 생각의 중심에 내가 있었다.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은 천천히 이 길을 걸었겠지? 나는 왜 저 예쁜 하늘을 보는 대신 복잡한 엑셀만을 보며 살았으까.’
공자묘에서 마음을 고르고, 보안궁에서 사람들의 기도를 지나, 강변을 따라 걸으며 바람을 맞으며 내 마음의 키가 자랐듯했다. 남의 삶을 부러워하기보다 지금 내 삶을 가만히 바라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임안태고조 마당을 천천히 걸었다. 아이는 건물보다 돌바닥에 더 관심이 많았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재잘거리던 아이가 거짓말처럼 갑자기 잠들었다. 아이도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잠든 아이의 작은 숨소리가 내 마음을 서서히 느슨하게 만들었다.
아이가 깨어날 때까지 나는 연못 위에 세워진 정자에 앉아 있었다. 물 위로 비친 하늘이 천천히 흔들렸고, 바람이 스칠 때마다 연못은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 그 변화를 지켜보는 일이 이상하게도 재미있었다.
여러 생각이 오갔다. 그러다 하루치의 생각이 하나의 결론에 닿았다. 누군가를 미워하며 살아가는 일은 결국 내 마음을 가장 먼저 더럽히는 일이라는 것. 상황을 원망하며 보내는 시간은 내 삶을 스스로 낭비하는 일이라는 것.
연못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 속에서 나는 충분히 배웠다. 세상은 여전히 제 자리를 돌고 있고, 나는 그 안에서 굳이 더 아프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아이의 잠든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여행을 통해 내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앞으로의 시간을 조금 더 가볍게 살아가도 괜찮겠다는 확신 하나는 얻었다.
임안태고조를 나와 길을 건너자 커다란 공원이 펼쳐졌다. 공원 안쪽에 자리한 큼직한 놀이터를 보는 순간, 아이의 표정이 단번에 달라졌다. 참고 있던 에너지를 한꺼번에 풀어놓기라도 하듯, 아이는 미끄럼틀을 오르내리고 각종 놀이 기구를 차지하며 넓은 공간을 마음껏 뛰어다녔다.
놀이터 위로 비행기가 지나갔다. 송산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였다.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 훨씬 크게 보였다. 엔진 소리가 하늘을 가르며 지나갈 때마다 아이의 시선도, 내 시선도 동시에 위로 끌려 올라갔다. 비행기가 지나간 자리에는 아이의 웃음소리만 남았다. 그 웃음이 공원에 퍼지며, 내 마음까지 환하게 밝혀주었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놀이터를 벗어나 호텔로 향하던 길 위에서, 우연히 사원 하나를 마주쳤다. 행천궁이었다.
발걸음을 멈추고 그 안으로 들어섰다. 언제나처럼 기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 역시 두 손을 모았다. 그 순간, 내 기도가 전날의 기도와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에 스스로도 잠시 놀랐다.
내 기도에는 더 이상 이직도, 더 나은 자리도 없었다.
그저 매 순간을 이렇게 꽉 채워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는 마음뿐이었다. 일에만 매달리지 않고, 미움으로 내 마음을 흐리지 않고, 지금처럼 느끼고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는, 아주 단순한 바람.
행천궁을 나서며 나는 조용히 확신했다.
이 여행이 나를 바꾸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