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나는 시작부터 헤매었다. 분명 지도를 보고 열심히 따라왔는데, 내가 도착한 곳에는 문이 없었다. 벽은 있었고, 담장은 이어졌지만 사람이 들어가는 입구는 보이지 않았다.
당황한 기색이 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던 모양인지, 아이는 활짝 웃으며 “엄마,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면 알려줄 거야. 괜찮아.”라고 말했다. 신기하게도 아이의 말에 마음이 놓였다. 그래, 그렇지. 길을 모르면 물어보면 되는 거지. 어른이나 된 내가 왜 그걸 몰랐을까.
우리가 임가화원에 갔을 때, 그곳은 보수 공사 중이었다. 임시로 입구의 위치가 바뀌어 있었고, 모든 공간이 공개된 것도 아니었다. 대신 입장료는 조금 저렴했다.
사람들이 입을 모아 아름답다고 말하는 공간을 모두 둘러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쉽기는 했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서자 그 아쉬움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관람이 허락된, 한정된 공간만으로도 임가화원은 충분히 컸고, 충분히 강력했다.
청조시대 중국에서 타이완으로 건너온 임씨 가문이 지은 정원. 1853년에 지어진, 한 가문의 삶을 고스란히 담긴 저택. 이곳이 타이베이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가옥이자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된 곳이라는 사실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타이베이 시내와 거리가 있음에도 굳이 여행 일정표에 이곳을 넣은 것이었다. 이동의 부담이 있으니 하루 일정을 통으로 모두 임가화원에 투자했면서까지.
뭐, 사실 여러 장소를 빠르게 훑는 여행보다 한 공간에 오래 머물며 깊게 느끼는 여행을 더 좋아하기도 하고.
임가화원을 천천히 걸으며 곳곳을 온몸으로 느껴보니 이곳은 단순히 ‘부잣집’이라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공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곳은 정치와 장사가 오가고, 사유와 휴식이 동시에 이루어졌을 그런 공간이었을 거다. 이 집주인 가족의 삶 전체가 이 담장 안에서 완결되었으리라.
이 집, 혹은 이 정원은 어떤 부유한 이의 집이라기보다는 차리라 궁전에 더 가까웠다. 비록 왕이 살았던 곳은 아닐지라도, 공간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태도는 여느 궁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 목소리가 낮아지고, 걸음은 느려지고, 괜히 허리도 한 번 더 세워보는 것을 보면 말이다.
궁전 같은 남의 집 가운데 서 있으니, ‘예나 지금이나 돈이 있으면 궁전에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생각은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세상은 신분제가 무너졌다고 말하지만, 정말 그럴까. 귀족 대신 자산가, 혈통 대신 자본. 이름만 달라졌을 뿐 세상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일종의 위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토록 진지한 생각에 빠진 나와는 별개로, 아이의 시선은 엄한 곳에 머물러 있었다. “엄마, 오리!” 아이는 궁전 같은 건물에도, 아름다운 정원에도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연못 속을 유유히 헤엄치는 오리들이 아이에게는 이 거대한 저택보다 훨씬 더 중요한 존재였던 거다.
“저 오리들 수영하는 거 진짜 재밌겠다. 그렇지 엄마?” 아이는 그렇게 말하며 난간에 붙어 한참 동안이나 수영하는 오리를 구경했다.
그 모습이 웃기고, 귀엽고, 조금은 부끄러웠다. 나는 신분제와 계급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이는 그저 살아 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
전시된 옛 의복 앞에 섰을 때도 그랬다. 정성스럽게 보존된, 아마도 이 집에서 살던 이들이 입었을 옷. 나는 ‘어떤 복을 타고나야 먼 옛날에 이런 옷을 입을 수 있었을까’를 상상하고 있었는데, 아이는 전혀 다른 말을 했다. “엄마가 이 옷 입으면 진짜 예쁘겠다.”
그 한마디에 순간 모든 생각이 멈췄다. 계급도, 역사도, 부도 사라지고 그저 지금의 나와 아이만 남았다.
이 옷이 누구의 것이었는지, 어떤 신분을 상징했는지는 아이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엄마가 예쁠 것 같다는 상상만 있었을 뿐이다.
그제야 조금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신분제 사회는 정말 붕괴된 걸까. 아니면 아이가 보는 세상처럼 애초에 존재한 적이 없었던 걸까.
임가화원은 한때 피난민들의 임시 거처가 되었다가 다시 복원되어 지금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이 되었다고 했다. 궁전 같던 집이 역사의 굴곡을 지나 ‘누구나 구경할 수 있는 곳’이 된 지금, 나는 이 아이와 함께 그 공간을 걷고 있었다. 비록 소유하지는 못할지라도, 들어갈 수 있고, 바라볼 수 있고, 또 나만의 방식으로 의미를 만들 수 있는 그 공간을.
임가화원은 나에게는 질문을 남겼고, 아이에게는 오리와 예쁜 옷을 남겼다. 그리고 그 차이는 이 여행을 더 값지게 만들었다.
아마도 신분제가 무너졌는지 아닌지 보다 더 중요한 건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느냐 하는 것이 아닐까? 아이처럼 연못 속 오리를 보고 웃을 수 있는 마음. 엄마를 떠올리며 “예쁘겠다”라고 말해줄 수 있는 시선. 그 시선과 함께라면 궁전 같은 집도, 좋은 집도 결국은 그저 우리가 함께 걸었던 공간으로 남는다.
여행은 나의 어리석은 질문에 아이의 현명한 답을 살짝 얹어주는 일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