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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율 May 09. 2024

기적을 사는 사람들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가을 운동회를 한다고 했다.

장소는 동네에 있는 호수공원. 학부모가 참여해야 하는 운동회여서 나는 아침부터 채비를 하여 모여야 되는 시간에 맞추어 호수공원으로 갔다. 유치원 선생님들과 아이들은 이미 호수공원에 와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유치원에서는 아이들을 위해 여러 가지 활동을 준비했다. 아이들이 각각의 모둠에서 잘게 잘라진 여러 모양의 나뭇가지를 작은 나무판에 요리조리 붙여서 작품을 완성하는 활동을 하는 동안 부모들은 그 모습을 사진 찍느라 바빴다.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그 작은 작품을 만들면서도 자신의 마음대로 잘 되지 않으면 속상해하며 울기도 하고 잘 안된다며 짜증을 내기도 했다. 다행히 내 딸은 침착하게 나뭇가지들을 잘 붙이고 색깔도 칠하며 활동에 열중했고 잘 되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지도 않았다. 나는 아이의 사진을 몇 장 찍어주고 아이가 만드는 작품에 대해 몇 마디 질문을 하며 프로그램들이 어서 끝나기를 기다렸다.


사실 나는 부모들이 꼭 참석해야 하는 유치원의 이런 프로그램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집에서 할 일도 많은데 이렇게 시간을 내야 하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아이들을 낳아서 기르고는 있지만 아이를 엄청 예뻐하는 성격이 아니기에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이 나에게는 쉽지 않았다.


다음 활동은 아이들이 학부모와 함께 돋보기로 공원에서 자생하고 있는 식물을 관찰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식물에 대해 설명해 주시는 선생님 말씀을 잘 들으며 아이와 식물 관찰 활동을 잘하려고 노력했다. 선생님 설명이 끝나고 학부모들은 각자 흩어져서 자신의 아이와 식물을 찾아다니며 돋보기로 관찰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공원의 바닥에는 모두 비슷하게 생긴 초록색 식물들이 즐비해서 특정 식물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는 신이 나서  여기저기를 훑고 다니면서 식물을 찾느라 바빴다. 아이가 신기해하는 모습에 맞장구 쳐주며 나름대로 열심히 식물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지만 허리를 오랫동안 굽히고 있었다 보니 허리가 너무 아팠다. 다시금 오늘 프로그램이 어서 끝나기를 바랐다.




시간이 어느덧 흘러 행사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그날의 마지막 행사로 학부모들이 아이들에게 헹가래를 태워주는 활동이었다. 학부모들이 행사를 진행하는 선생님의 설명에 맞춰 오색의 단단한 노끈을 이리저리 엮어 헹가래 태워주는 가마를 만들었다. 학부모들은 노끈의 끝을 잡고 있고 아이들을 한 명씩 돌아가면서 가운데에 앉힌 후 학부모들은 각자가 잡고 있는 노끈을 힘껏 들어 올려 아이를 헹가래 태운 후 받아서 내려놓는 것이었다. 행사를 진행하시는 선생님은 아이를 한 명 한 명 태울 때마다 해당 부모에게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아이의 꿈을 외치게 했다.


학부모들이 자신의 아이 차례가 왔을 때 "OO야, 의사가 되어라.", "OO야, 선생님이 되어라."와 같이 아이의 꿈을 외치면 모든 학부모들이 박자에 맞춰 노끈을 들어 올리며 아이를 헹가래 태워주었다. 어느덧 나의 아이 차례가 왔고, 나는 아이의 꿈인 화가가 되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렇게 여러 명의 학부모들이 자신의 아이의 꿈을 외치고 있었는데 어떤 학부모가 "OO야, 건강해라."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다들 아이의 장래 희망을 외쳤는데 건강하라고 외치다니 왜 그런가 궁금해져서 나는 고개를 돌려 어떤 아이의 엄마인가 살펴봤다.


그리고 그제야 왜 그 아이 엄마가 아이의 꿈을 건강이라고 외쳤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아이는 장애가 있는 아이였던 것이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은 병설유치원이었는데 몸이 불편한 아이들을 별도로 가르치는 특수학급 반이 있었다. 평소에는 다른 반 아이들과 분리하여 수업을 하다가 특정 수업이나 이렇게 행사가 있을 때는 다른 반과 특수학급 반 아이들을 함께 수업을 진행하여 나는 몇 번 그 아이를 본 적이 있었다.


잘 알 수는 없었지만 그 아이의 말이 어눌하고 행동이 민첩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발달장애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건강하지 않은 아이에게 '건강해라'라고 외친 것은 아이의 꿈이 아니라 엄마의 꿈인 것이 분명했다. 그 엄마는 아이의 꿈을 알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 아이 엄마의 외침을 듣고 나는 내 아이의 꿈을 외친 것이 순간 부끄럽고 미안하게 느껴졌다. 그 아이 엄마의 간절한 꿈을 나는 이미 가지고 있는데 그 엄마는 그것을 꿈이라고 외치고 있지 않는가?


나는 그 아이의 엄마의 심정으로 감정이입이 되어 버렸다. 그 아이 엄마는 자신의 아이가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말하고 평범하게 뛰어와 자신에게 안기는 모습을 얼마나 염원할까. 이 세상 모든 것을 주어도 자신의 아이가 다른 아이들처럼 건강해질 수 있다면 모든 걸 포기할 수 있는 심정이리라. 누군가는 기적이라고 믿는 것을 나는 이미 가지고 있지 않은가?


나는 그날 유치원 행사가 빨리 끝나기를 바라며 행사참여에 소극적이었던 내 모습을 반성하게 되었고 나의 아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행복에 대해서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만 늘어놓았구나 하는 마음에 평소의 나의 마음 자세에 대해서도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위 이야기는 첫째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던 2018년 때의 일이었다. 세월이 많이 지나 이미 그때 일을 잊고 있었는데 문득 그때의 일이 떠올라서 글로 옮겨 보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나간 일을 잊는 것처럼 지난 시간에 얻은 깨달음도 함께 잊는 것 같다.


내 아이는 어느덧 초등학생 6학년이 되어 사춘기에 접어들었다. 아이가 자기 의견이 강해지고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원하면서 나와하던 영어 공부도 하기 힘겨워졌고 나는 아이의 반항심 어린 대답도 듣기 버거워졌다. 아이에게 화내지 않으려고 화를 억누르고 참다가도 아이가 예의 없는 말투로 대꾸를 하는 순간이 오면 화가 치밀어 소리를 질러버리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다.


대학 졸업 후 내가 원하는 일을 찾겠다며 어학연수도 가고 영국 유학도 다녀오며 내 꿈을 찾아 노력하다가 첫째 아이를 임신하고 곧 직장생활을 그만둔 나는 어느덧 딸아이의 나이만큼 경력단절이 되었고 갱년기도 찾아와서 마음속에 우울감도 무력감도 패배감도 가득했다. 그런 나에게 딸아이의 반항심 어린 말투는 가시가 되어 내 가슴에 박혔고 아이를 내 손으로 키우기 위해 선택했던 지난 10년 넘는 시간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잘 키우지도 못할 거면서 직장을 괜히 그만뒀구나.'


이런 생각이 가득한 상황에서 문득 위에 서술한 옛 일이 기억났다.

'아, 나는 그때의 깨달음을 완전히 잊고 살았구나. 지금 내 아이들이 내 곁에 와준 것과 건강하고 별 탈 없이 지내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기적 같은 일인데......' 하는 깨달음이 다시 생각났다. 우리 모두는 기적을 살아가고 있다.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면에서 누군가가 가지길 염원하는 간절한 기적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엄청난 확률을 뚫고 이 세상에 태어났고 오늘 이 시간을 누린다는 것도 기적이지 않은가?


나는 아이의 공부에서 한 발짝 물러나기로 했다. 방 정리,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등 기본 생활 습관에서도 100%는 아니더라도 잔소리를 많이 줄이기로 했다. 그리고 아이들을 양육하면서도 내 꿈도 다시 찾겠다는 의지가 강해졌다. 그래야 내 삶도 바로서고 아이들의 삶도 바로 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가진 기적에 항상 감사함을 갖겠다는 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그림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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