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형지 Jul 01. 2020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계절

또 한 명의 환자를 떠나 보냈다.



바야흐로 봄이다.  

아직 쌀쌀한 감이 있지만 기숙사는 물론 방문하는 곳곳마다 꽃과 녹음이 태동해댄다. 

하나같이 봄에 피어나는 새 생명이 아닐 거라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모습이다.

파스텔톤의 하늘은 높고 푸르며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 많아 매일이 눈부시다. 

봄은 그냥 그 자체로 예술이다.


자주 가는 과일가게에는 겨우내 매대를 차지했던 딸기들이 눈에 띄게 사라지고 

상큼한 맛을 지녔거나 색이 밝은 녀석들이 하나 둘 선점하기 시작했다. 

'아니 심지어, 수박이 벌써 나왔더라니까?'하며 친구에게 수다 떨 일이 하나 더 생길 정도?



기숙사 근방 전경, 시선 닿는 곳마다 꽃들이 만개했다.



사실 이번 인간 일기의 주인공은 약 2~3주 전에 생을 마감했다. 

감정과 생각을 몰입해 그에 대해 정리하기에는 내가 많이 게을렀다.


더불어 거쳐가는 환자들의 죽음은 너무도 비일비재한데다가, 

한 명 한 명에게 서글픈 감정을 대입하기에는 함께하는 시간이 지나치게 부족하다. 

인계장 앞,뒤 한 장 차이로 환자들의 이름이 새로 쓰이고 사라지는 것에 

신경을 쏟아붓는 것은 사치라 해도 과언이 아니란 말이다.


그래서 잊었다. 


날이 너무 좋아서, 신이 나서, 재밌는 것들이 많아서, 

삶이 즐거워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혼자 취미 생활하는 것이 재밌어서. 

갖은 이유가 변명이 되어주었고 그래서, 감히 잊었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아주 마음에 들었던 북 카페에 가서 새로운 책을 만났다.

<엄마의 계절>, 항암치료를 받는 엄마를 바라보며 느끼는 처절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적어낸 간병 일지다. 

지극히 짧지만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은 이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인간은 딱 한 명이었다.


저자의 엄마와 비슷한 상황, 질환을 지니고 한 달 여간을 고통 속에서 보존적인 치료만 받다 

모든 장기가 백기를 하나 둘 들기 시작하더니, 삽시간에 심장이 멎으며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호흡을 내뱉고 간 한 할아버지. 


대장암 수술 과거력에 소화능력이 거의 0에 수렴해 50일이 넘는 재원기간 동안

입으로 물 한 번 제대로 먹은 적이 없던 그는 그저 마른 혈관을 타고 흐르는

수액 몇 방울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버텼다. 


고통스러워하는 그를 볼 때마다 물 몇 모금 주고 싶은 게 우리네 심정이지만 

마시기만 하면 사레가 들리고 갈 때까지 간 폐렴으로 물이 가득 찬 폐는 

할아버지의 구강 섭취를 사망 전까지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사실 할아버지는 임상학적으로 적극적인 처치를 해줄 수 없는 신체였다. 

가족들은 결국 DNR(소생술, 위급상황 시 적극 처치 중단)을 유지하며 

환자의 임종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구강 안에는 남아 있는 이빨이 없고 살 거죽은 축축 꺼져 해골의 형상을 하고 있어 

불편한 것을 말하거나 하고 싶은 말을 건네는 것이 지독히도 어려웠던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겨우 만나는 하루 한 번의 면회시간에도 그저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를 찾아오는 보호자들이 유독 많았다. 

병에 대한 인지는 부족하지만 매번 할아버지를 찾아와 "나 보고 싶었어?"라고 

묻는 배우자의 얼굴에는 근심이 어리면서도 오늘 하루 연명해있는 그에게 안도하는 듯했다.





책을 덮고 주위를 둘러봤다. 버릴 것 없이 예쁜 카페에 젊음까지 가득 차 있었다.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스치는 풍경은 하나같이 아름답고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엄마 무릎을 겨우 넘는 키의 아기가 뒤뚱거리며 도보를 걸으니 

뒤쫓아 오는 엄마의 얼굴은 마스크에 가려져도 미소를 머금은 것이 확실해 뵌다. 

아이의 작은 머리통을 소복히 감싼 연하고 얇은 머리칼이 햇빛에 물결친다.

그 자체로 아름다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오랜만에 취미생활을 하러 나왔는지 가죽과 수술이 주렁주렁 달린 

고급 오토바이에 기어를 부릉부릉 넣으며 방귀 소리를 내는 한 중년 남성의 

얼굴도 헬멧에 가려져있지만 만족스러워 보일 거란 생각을 한다. 


한참 친구들과 뛰어놀며 에너지를 발산해야 할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놀이터에서 놀거나 자전거를 타고 작당모의를 하는 듯 보인다.

역시, 즐거워 보인다.


무엇보다 자기는 봄의 정령이라도 된다는 듯 엄청난 존재감과 

생명력을 뽐내는 벚나무들, 개나리, 유채꽃, 푸르른 나무들은 마냥 밝아 행복해보인다.


한편에서는 누군가의 어버이가, 친구가, 자식이 죽어가는데 

한 곳에서는 새 생명이,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 이토록 가득하다니.  

참으로 비현실적이다.


장기화된 침체기에 많은 이들의 어깨도 하한선을 모르고 쳐져간다.

어떤 이들은 사랑했던 사람이 곁을 떠나가는 일생일대의 아린 경험을 겪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이 꿈틀대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일상은 제자리를 찾아가고 인간은 삶을 지속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 대치하는 상황에 다시금 이질감이 오른다. 


할아버지는 많은 이들의 곁에 공백을 건네며 여러 가지 감정도 함께 남겨두고 떠났을거다.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신체는 물론 정신의 명료함을 잃어가는 환자보다 

그를 바라보는 보호자들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죽음이 더욱 선명하고 아릿하게 다가온다.


본인의 버킷리스트이자 삶의 모토 중 하나인 '생을 마감할 때 슬퍼하지 않도록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자.'는 다짐은 다가오는 죽음과 임종의 순간을 지키는 

가족들의 모습에 늘 우습고도 보잘것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할아버지가 떠난 다음날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을 영위하면서 나는 

반복적이지만 그가 주는 안정감과 행복에 대해서 재고하게 되었는데,

예측 가능한 일상이 인간에게 예상보다 더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이트였지만 조금 일찍 일어나 씻고, 건강한 식사로 끼니를 챙기고,

할 일과 일기를 끄적이고, 책 한 권을 읽어내고, 이렇게 글도 써보려고 밖으로 나와보고. 

모두 죽음에 비하면 예측이 쉽고, 가역적이며, 내 힘으로 조절이 가능한 부분들이다.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위안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난데없이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삶은 

팽팽하게 유지하고 있던 삶의 균형을 무참히 부숴버린다. 

아무리 노력하고 발악해도 끝이 정해져있는 미래를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리고 그를 지켜보는 자들의 억장은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는 걸까?

과연 인간은 삶의 유한성에 대한 두려움과 슬픔을 극복할 수는 있는걸까? 


나이에 비해 많은 죽음이 내 손을 거쳐갔지만 여전히 어떤 방법이 옳은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아마 평생 모른 채로 나 또한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저 내가 세운 방식을 고수할 거다. 

내가 사랑하는 자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생의 제한선을 종종 상기하며 

삶의 가치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한 편으로는 '봄'은 신이 특별히 인간을 배려해 만든 계절, 상황이라는 생각이 이어졌다. 

전신을 따뜻하게 감싸는 대기와 온도를 느끼며, 밝은 조도에 몸을 맡기도록,

그래서 연화된 신체에 따라 굳게 닫히고 좌절했던 마음도 조금은 풀릴 수 있도록.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잃지 말라는 1년의 초입에 전하는 신의 사랑이 담긴 메시지랄까.


그래서 봄은, 그 어떤 계절보다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계절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충분하지 않을까.




P.S


할아버지 안녕히 가셨는지요.

할아버지가 숨이 멎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심장이 멈추자마자 

사망선고를 받아내고, 사후 처치를 하고, 장례식장으로 보내고, 

할아버지가 계시던 자리를 황급히 정리했습니다. 

아직 할아버지 온기가 채 가지 않은 자리에 다른 환자가 오기로 했었거든요.


바빠서, 정신이 없어서, 할아버지를 기릴 시간도 없이 근무시간이 끝나버렸습니다. 

그날 이후로 할아버지는 제 인계장에나 존재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죄송해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인사드려요.

그래도 할아버지랑 알게 모르게 정이 들었나 봐요. 

책 몇십 쪽 읽고 할아버지 생각이 나서 가슴 한켠이 먹먹해지는 걸 보니까요.

따뜻한 날씨에 더욱이 따사로운 천사들의 안내를 받으며 하늘로 가셨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가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