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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형지 Aug 25. 2020

부모에 대한 단상



사망 또는 질병으로 인한 가족과의 물리적, 정신적 이별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편이다.

아마도 하루 아침에 쓰러지거나, 쇼크가 오거나, 사지를 쓸 수 없게 되거나, 

죽어가는 중환자들 혹은 그를 지켜보고 간호하는 보호자들의 모습을 가감 없이 

경험하는 탓에 생긴 일종의 직업병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간호사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가족의 모습을 더 많이 촬영하고, 드라이브에 담아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으나 결국은 불가분으로 겪게 될 가족의 장례식에서 생전 그들의 

생동하고, 아름다우며, 행복했던 순간을 담아 환송하고 싶다는 심정으로.


곧 이가 다 빠져서 틀니를 하고 빙구처럼 웃는 아빠의 얼굴이나, 

기력이 없어서 걷지 못하는 엄마를 태운 휠체어의 모습이 담길지도 모르겠다.

그전에 함께 더 많은 곳과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고 아낌없이 사랑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서로가 이별할 때 단 1%라도 덜 슬플 수 있게, 하루하루 노력하는 인간이 되기를 바란다.


대개 젊은이는 전반적인 생의 방향을 탐색하고 삶을 꾸려나가느라 정신이 없다. 그래서 돈도 여유도 없다.

그 와중에 부모는 나이 들어간다. 명료했던 정신력은 힘을 잃고 선명한 주름으로 환생한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겨우 생겼을 때 부모는 좋은 곳을 걸을 기력이 없다. 

고급진 음식들을 씹을 이가 없다. 물질적인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병을 얻기도 한다. 

그렇게 후회로 얼룩진 마지막은 오래도록 가슴 깊은 곳에 멍에로 스며든다. 


하지만 현재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회한을 옅게 할 수 있고  

사랑과 관심이 절대적으로 돈과 여유에서 출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돌아보자. 끊임없이, 의식적으로. 

부모가 팔 벌려 그대를 안아줄 힘이 남아 있을 때, 기꺼이 달려가 안기자.

돌자갈이 가득한 흙길이라도 두 손 꼭 잡고 지금이라도 함께 걸어가자. 




할아버지 댁 근처에 맛있는 메기탕 집이 있다 하여 가족 여행 중 마지막 코스로 들렀다. 

따스한 색감의 가로등 빛이 수면에서 넘실거리는 강변의 풍경은

본래도 뛰어난 음식의 맛을 더욱 깊어지게 만들었다. 

서로가 뜨거워진 뚝배기 안에 하루의 소회를 여김 없이 풀어낸다. 저녁까지 완벽한 하루였다. 


계산을 마치고 강변의 풍경에 한참을 취해있는데 문득 선배 간호사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본인은 부모의 장례에 대해 굉장히 구체적인 대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 

아무래도 언제든 불안정해질 수 있는 개인 사업체를 운영하시는데다 

최근 큰 병을 얻으신 아버지를 보고서 더 이상 미룰 수 없겠다 싶었단다.

아직은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입장의 장녀로서는 더욱이 걱정이 컸을 터다.


실제 사업체의 자산 규모나 빚 등에 대해 파악하다 보니 

자연히 부모의 보험이나 사망 시 대처 방안에 대해 고려하게 되었고, 

그와 관련된 내용들을 부모와 자주 이야기하다 보니 장례는 어떻게, 어디에서

그리고 이후의 삶은 어떤 식으로 꾸려가면 좋을지에 대한 개요가 머릿속에 자리 잡혀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말을 듣고 참 대단하다 싶었다.

가족과 떨어질 생각만 해도 눈물이 그렁거리곤 하는 나는, 아직 한참 멀었구나라는 생각도 했다.


할머니가 15년, 할아버지는 돌아가신지 7년이 넘어섰다. 

제사나 가족행사로 박호동을 들를 때마다 아빠의 표정은 덤덤해 보였다.

다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서 근 3년간 지켜낸 금연을 깬 그를 보고 적적함을 짐작할 뿐이었다.


솔직히 지금도 궁금하다. 애써 슬픔을 감추는 것인지 혹은 흐른 세월만큼 미련도 옅어진 것인지.

아빠처럼 부모님의 자취가 가득한 장소에서 웃으며 

밥 한 끼 먹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미어짐이 필요할까? 이건 솔직히 상상도 못하겠다. 

아마 아빠도, 엄마도 그저 그리운 마음에 한 번 더 부모의 자리를 찾아뵈는 것이겠지.   

아닌 척하지만 문득 슬픔과 처리하지 못한 아쉬움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 있겠지. 


그들은 누구에게 하소연하고, 못내 앙탈을 부리고 마음을 터놓으려나. 

마음이 또 한 번 아릿해진다. 나는 엄마, 아빠라도 있는데 말이다.

내 곁을 단단히 지켜주는 두 분이 부디 함께, 오래 오래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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