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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형지 Apr 25. 2021

피노키오의 석션

중환자실 간호사의 임상일기


 4일의 근무 동안 함께한 71세 할아버지 J는 그리도 술이 좋으셨는지 입소해있던 병원에서 도망쳐 술집에 도달했단다. 한껏 취기가 올라 몸을 가누지 못했던 그는 CCTV에서도 그 모습이 선명할 정도로 꽝, 하고 넘어지고야 말았고 그 길로 급성 뇌출혈과 후두부 골절을 얻었다. 


 약 10일간의 중환자실 care 후 점점 상태가 호전되어 뇌, 기도, 정맥에 가지고 있던 큰 관들을 모두 제거할 수 있었고 이후 집중치료실로 전실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중환자실을 떠나 4일을 넘기지 못하고 그는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는데, 엄청난 양의 가래와 염증수치 악화로 close 한 내과 treatment가 필요해진 탓이다.


 잠시 한눈판 사이에 들끓는 가래를 시도 때도 없이 뽑아야만 적정 산소포화도와 호흡이 유지되는 그는 지남력이 꽤 살아있는 편임에도 스스로 가래를 뱉기 힘들어했다. 별 수없이 기다란 관이 목과 코로 넘나들며 흡인하는 고문을 하루에도 수십 번 견뎌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 것이다. 몸에 큰 관도 있고, 낙상 위험성이 꽤 높았던지라 손발이 억제대로 묶여있던 그는 매 석션마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고개만 내저으며 거부 의사를 표현했지만 종국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수용하기를 몇 번이고 반복한다. 

 

 5~6번째의 suction 중이었을까, 얕은 신음과 함께 그의 감겨진 두 눈에서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린다. 기도를 자극해서 불수의적으로 튀어나오는 눈물과는 다른 결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기계처럼 가래를 뽑아대던 나는 그 짓거리를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 뽑아야 할 가래가 기도와 입안에 가득 차 있었지만, (그래서 큰 의미가 없었겠지만) 그에게 잠시나마라도 휴식시간을 선사하고 싶었다. 심호흡을 장려하며 눈가의 눈물을 닦아드렸다. 가슴 주위를 따뜻하고 차분하게 두드리면서 할아버지를 진정시켰다.


 할아버지가 축 처진 고개를 겨우 들어 눈을 마주친다. 

"할아버지, 거의 다 뽑았어요. 그래도 아직 많아서 한 번 더 뽑아야 될 것 같아요, 한 번만 더 해볼까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수긍한 그의 입을 airway로 거칠게 열어 흡인을 시작했다. 오늘 그의 눈물샘은 쉼 없이 가래를 뿜어내는 그의 폐처럼 멈출 생각이 없나 보다. 나는 그저, "할아버지, 진짜 거의 다 했어요. 좀만 참아요, 좀만" 하며 의미 없는 거짓말을 위로로 위장했다. 이후로도 20~30분 간격마다 석션과 눈물 닦기를 되풀이하다 보니 입에서는 "거의 다 뽑았어요"라고 녹음된 멘트가 자동으로 재생되고 있더라. 40cm에 달하는 suction tip보다 코가 더 길어진 피노키오가 된 듯하여 번듯한 양심에 금이 가는 듯한 근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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