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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형지 Apr 25. 2021

요런 거 저런 거 다 섞어서 간 좀 맞춰

중환자실 간호사의 임상일기


'요런 거 저런 거 다 섞어서 간 좀 맞춰'


 처음 입원에는 검사 수치도 좋지 않은 데다가 호흡곤란 증세까지 있어 금식으로, 투석 카테터를 삽입하고 혈액 투석을 시작하면서 조금씩 컨디션이 괜찮아지면서는 비위관으로 관급식을, 그리고 최근에는 중환자실에서 병실로 이전할 정도로 상태가 좋아져 입을 통해 당뇨식 식사를 하시는 만 85세 할머니가 외치는 매 끼니마다의 코멘트다.


 곱게 갈아져있는 반찬과 검은 간장을 흰죽에 섞는 모습을 바로 눈앞에서 시연해도 금세 잊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할머니는, 노인이라면 으레 가지고 있는 치매 증상과 난청까지 있어 의사소통이 쉽지 않다. 그래서 때로는 벽과 이야기하는 기분이 들 때도 있으나 오늘처럼 한가한 주말의 아침에는, 그래서 내가 직접 환자에게 밥을 떠먹여 줄 수 있을 정도로 일하는 강도가 덜한 날에는 그런 할머니의 모습도 쉽게 수용되곤 한다.


 뜨겁기도 하지만 흡인의 위험이 있어 완전히 갈린 죽이라도 시간을 두고 천천히 식사를 제공하는데, 그 간극 동안 할머니는 계속해서 구수한 사투리로 '너무 싱거와. 간장 좀 더 타란 말이여'를 연신 남발하신다.

할머니의 소금기 가득한 입맛은 아마도 노인으로서 짠맛에 대한 역치가 올라간 것도 있겠지만, 고향이 곡성인 그녀의 전라도식 식생활이 전적으로 투영된 듯싶다. 그나마 기능이 살아있는 귀에 대고 '할머니~ 간장 너무 많이 넣었어요!'라고 외쳐도, 흰죽이 거즘 갈색 죽이 된 모양새를 보여줘도 소용없다. 


 아이러니한 것은 싱거와서 못 먹겠다는 할머니는 막상 수저를 들이밀면 꿀꺽 꿀꺽 식사를 잘도 삼키시는 것이다. 식사 후 정리를 마치고 약까지 투약하고 나면 " 아이고 선생님 고마와." 그럼 난 또 입모양을 크게 벌려 "아니에요"라고 웃으며 대답한다. 


 중환자실은 환자 개인당 2시간마다 활력징후와 Input, output을 체크해야 하기도 하고 환자의 상태가 시시각각 변할 수 있어 맡은 섹션에서 자주 라운딩을 돌아야 한다. 홀로 체위변경이나 위생 활동을 하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대소변을 치워줘야 하는 일도 라운딩만큼 자주 있다.


 할머니는 어느 정도 지남력이 있기 때문에 대변을 보고 나면 늘 "선생님"을 연달아 크게 부르신다. 달려가서 대변의 양과 색깔을 확인하고, 그 사이에 엉덩이에 욕창은 생기지 않았는지 확인한다. 물티슈로 깔끔하게 닦아내고, 새 기저귀를 채워드리고 나면 할머니는 또다시 "아이고 미안해. 똥 싸서 미안해, 고마와." 라고 하신다. 


 몇 번을 미안해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려도 같은 반응인 할머니의 모습에서 깊은 애잔함이 올랐다. 할머니가 느낄 불편함과 어려움을 풀어드리고 싶었다. "아니에요, 저희 일인 걸요"라는 건설적인 답보다는 할머니의 웃음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할머니에 귀에 가까이 가서 "할머니 왜 이렇게 예쁘셔요"라고 말씀드렸다.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기도 했고.


 거짓말처럼 환하게, 아이처럼 웃는 그녀를 보면서 말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예쁘다, 멋지다"라는 말은 마법 같은 언어임을 확신했다. 결핵을 앓았던 전력이 있는 보균자로써 준 격리의 상태에 계시는 할머니지만, 불편해하는 그의 곁으로 스스럼없이 다가가 이야기를 건넨 것을 후회치 않는다. 오히려 뿌듯하고 즐거운 감까지 올랐다면 지나친 걸까?


 내일 아침 근무 중에 전실을 보낼 예정인데, 왜인지 아쉬운 마음이 들어 일기 쓰듯 끄적여봤다. 아마도 할머니를 보고 있으면, 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이 휘감겨져 있어 그에 부응해주고 싶기도 하고, 삽시간에 늙어가는 할머니와 부모님 생각이 절로 나는 탓에 감정이입이 쉬이 되는 것도 한몫하지 싶다. 


할머니처럼 미각을 잃어가기 전에, 더 많은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드리고 싶고 

할머니처럼 청력을 소실해가기 전에, 더 많이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고 

할머니처럼 생리적 활동 하나에 미안해하기 전에 나에게 의지하는 것이 당연하고

힘든 일이 아닐 수 있도록 더 단단해지고 성장하고 싶다. 


할머니뿐만 아니라, 매일같이 만나는 부모님 또래의, 또는 나이의 차이가 적은 연령대의 환자군을 보고 있노라면 이따금 가슴이 저릿하고 간담이 서늘해진다. 언젠가는 맞이해야 할, 언젠가는 준비해야 할 그들과의 이별이 자꾸만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가능하다면 그저 그 순간을 한없이 미루고만 싶을 뿐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도리가 없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제한적이다. 그저 나를 믿고 온몸을 맡기는 환자들을 위해 끊임없이 일성 일신할 수밖에. 그저 나를 믿고 아껴주는 주변을 위해 멈춤 없이 나아가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밖에.


 앞으로도 만나는 환자들, 부딪히는 인연들마다의 에피소드를 정리해서 인간 일기를 적어볼까 한다. 나름대로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축적해오고,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어쩌면 지구 반대편에서 왔을지도 모르겠다고 여겨지는 사람들도 접하고, 일상 속에서 단단히 갇혀있던 편견을 깨어주는 사람들도 접해왔으며, 삶을 더 단단하게 하는 군상들도 만나며 인생을 꾸려왔다는 생각이 스쳤다. 벌써 몇 명의 인물들이 스치듯 지나가는데, 데이터가 축적되면 우리 가족이나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아도 참 재밌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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