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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형지 Jul 31. 2021

오늘도 중환자실에선


여유롭게 출근했는데 오래 담당했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첫 번째 바이탈 할 때부터 산소포화도가 불안불안하더니 

흡입 산소를 최고유량으로 올렸는데도 숨 쉬시는 게 심상치 않더라. 

곧이어 동공이 산대/고정되면서 mental이 급격히 쳐지기 시작했다. 직감했다. 오늘 가시겠구나.


엄마, 조금만 더 있다가. 엄마는 강하잖아. 엄마, 눈 좀 떠봐. 엄마, 가지마로 표출되는 간절함은 

곧 허옇게 뜬 얼굴과 곤두박질치는 심박동 그래프에 '그래, 엄마. 잘 가. 우리끼리 잘 살아갈게'

'엄마, 천국 가서 아빠랑, 형이랑 만나서 잘 지내고 있어. 고생했어'의 절절한 마지막 인사로 바뀌었다.

다행스럽게도, 할머니는 자녀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서 임종하셨다. 의사의 사망선고가 내려지고,

몸에 있는 관들을 모조리 제거한다. 원무, 서류 절차를 거의 마쳐갈 때 즘 장례식장 직원이 도착했다.


할머니를 작고 차가운 간이침대에 옮긴다. 곧이어 하얀 포에 온몸이 돌돌 말린다.

본래도 체구가 워낙 작은 그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포에 감싸지니 웬만한 쌀가마보다 작아 보이더라. 

시체가 아니라 어째 짐가방처럼 비친다. 순간적으로 오묘하고 괴랄한 기분에 휩싸였다.

할머니는 삶의 숱한 걱정과 고난을 내려놓고 떠나기에 이토록 가벼우신 걸까.


늘 죽음을 생각한다는 명분 아래 삶을 가열차고 의미로이 만들고자 노력하는 나는 

극히 덧없는 생명의 소강을 지켜볼 때마다 때때로 무상함에 휩싸인다.

그렇게 오늘도 답이 없는 난제에 대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이날 중환자실에서는 또 한 명의 인간이 삶을 마감했었다.

이토록 죽음이 가까이 있는 일상을 살아가는 탓에, 어처구니없게도 죽음을 쉬이 잊곤 한다. 

익숙하기에 무뎌져간다. '사'를 바탕으로 소중하게 닿았던 사유들과 다짐들이 퇴색된다. 

안타깝지만 별도리가 없다.


건강하고 의연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쉬이 잊어야 하고, 

유한함을 수용해 삶을 단단하게 하기 위해서는 자주 떠올려야만 한다. 

나는 앞으로도 이렇듯 숱한 죽음을 만나며 그 중도를 찾기 위한 끝없는 여정을 견뎌야겠지.

할머니, 그리고 할아버지. 끝까지 고생 많으셨습니다. 무사히 소천하시어 그곳에선 천수 누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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