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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형지 Oct 11. 2021

근무 잡상1



얼마 지나지 않은 나이트였을거다. 다른 존에 있던 할아버지가 밤새 '엄마'를 찾았다.

90대를 향해가는 탓에 다 망가진 몸뚱이 속에는 하루살이나 다름없는 영혼이

어떻게든 탈출하려고 애를 쓰는 모양새였다.


누군가의 아들이자, 아이라고는 쉬이 연상되지 않는, 꺼져가는 생명에게도

그 마지막에서는 역시나 엄마 얼굴이 아른거리나 보다.  

폐가 제 기능을 못해 숨도 못 쉴 지경에 이르러 가래를 공장인양 만들어 내는 와중에도

엄마를 몇 번이나 외쳐대는지. 시끄럽고 신경 쓰인다기보다는 나 역시 엄마 생각이 났다.


당시에 내가 맡은 존에는 Alert patient가 한 명 있었는데,  

이제 60세가 다 되어가는 것이 나의 아버지와 또래셨다.

검사가 있어 채혈 필요성을 설명하고 주삿바늘을 꽂는 순간 눈을 꼭 감고 내 손을 꽉 잡는다.


얇은 바늘을 타고 흐르는 피를 보면서 우리 아부지 생각이 났다.

우리 아빠 역시 바늘 하나에 무서움을 느낄 수 있는 연약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표현하고 싶진 않겠지만 여전히 두려운 것들이 주변에 만연하겠지.

어른이라는 이유로 혼자 견뎌야 할 외로움들이 숱하게 남아있겠지.

버팀목이었던 부모까지 곁을 떠나고,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지탱하는 생활이 길어지면서

사무치는 쓸쓸함과 그리움 따위를 표현할 길이 몇 없어 술을 마시곤 하는 거겠지.


피곤하지만 부모님께 메세지를 남겨본다. 시간이 남으니 전화도 건다.


짧은 통화를 마치고, 부모라는 근간이 내 곁을 여전히 지켜주고 있어 정말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완벽한 출발을 선사받진 않았으나 적당히 충족되는 삶을 살았고,

사랑을 받았고, 그 결과 주체감과 성취감을 갖고 삶을 꾸려갈 수 있었다.


물론 걸어온 길에 고난도 있었고 앞으로도 어떤 일이 놓여있을지 알 수 없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이 서로의 우산이 되어주고, 버팀막이 되어주면서

더욱 굳건한 사이가 되기를 절실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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