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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금아 Nov 01. 2024

어장




친정집에는 작은 유리장이 하나 있습니다. 희부연한 유리창과 빛바랜 나뭇결에서 오랜 세월이 느껴집니다. 친척 아재 손에 들려 우리집 문지방을 넘어오던 때가 오십 년이 지났으니 생애를 같이 한 식구입니다. 기우뚱한 모습은 어머니의 구부정한 어깨를 닮았습니다. 


어머니의 여든세 번째 생신날, 육 남매가 모였습니다. 모두 안부를 묻듯이 유리장 앞을 기웃거립니다. 유리장도 침침해진 눈을 껌뻑이며 알은척합니다. 책 한 권을 꺼내어 무르팍 위에 누이고 귓불을 만지작거리면 책이 귀를 열어줍니다. 


어머니와 함께 갔던 새벽 바다가 떠오릅니다. 그물을 싣고 돛단배를 저어가면 노 끝에서 바다가 깨어났습니다. 아직 어둑했지요. 어느 날에는 해파리 떼가, 어느 날엔 오징어의 푸른 눈이 뱃길을 안내해주었습니다. 뱃머리에 앉아 바닷물에 손을 담그면 물결이 파문을 일으키며 흩어졌습니다. 세상이 고사리손에 보내는 기척이었을까요. 


섬을 돌아가면 집안 대대로 이어오던 발(鮁)이 있습니다. 좁은 물목에 깔때기 모양으로 참나무를 세우고, 사이를 대나무로 엮어 만든 죽방(竹防)입니다. 배에서 내려 나무 기둥을 타고 오르면 힘찬 생명이 들려옵니다. 먼 길을 달려 온 물고기들이 뒤엉켜 노니는 소리입니다. 망설인 어머니가 그물을 내립니다. 뜰망 속으로 물고기를 몰아넣으면 평화롭던 죽방에 소동이 일어납니다. 바르작거리느라 물고기들은 비늘까지 벗겨질 지경입니다. 어머니도 전 생애의 힘으로 그물을 당깁니다. 그물을 잘 끌어 올리려면 힘의 균형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자칫 어느 한 곳으로 쏠릴라치면 어머니도 고기도 바다에 빠지고 말지요. 어머니의 사지가 파르르 떨렸습니다. 살아 있는 것들의 무게를 재는 일은 늘 두 다리를 후들거리게 하지요. 힘을 내려놓는 일도 그랬습니다. 두꺼비씨름 끝에 그물이 바다를 완전히 빠져나오면 그제야 사투가 끝납니다. 어머니가 배 바닥에 벌러덩 누워 있는 물고기를 내려다보며 나직이 이릅니다.


“미안타이……. 내는 느그들이 있어서 참말로 고맙다이…….”


아침 햇살에 부딪치는 물고기의 비늘이 왕관처럼 빛나 보였습니다.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생선을 고무 다라에 담아 이고서 삼천포 장에 갔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면 이웃 섬으로 가는 도선이 섬집 앞바다를 지나갑니다. 어머니가 장에서 돌아오는 시간입니다. 집 뒤안 대밭 머리에 서서 선착장 쪽을 보면 막 배에서 내려서 명매기걸음으로 섬길을 걸어오는 어머니가 보였습니다. 


일곱 살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머니는 전과 달랐습니다. 곧장 들어오지 않고 문간에서 집안을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조부모님이 안 계신 것을 확인하고서야 마당으로 들어섰습니다. 어머니가 내려놓은 다라 안에는 생필품과 책 몇 권이 담겨 있었습니다. 책갑의 모서리에 빨간색으로 ‘兒童百科事典’이라고 쓴 두꺼운 사전 한 권과 동화책이었습니다. 


얼마 후에 책장이 들어왔습니다. 어머니가 갑수 아재를 시켜 만든 4단 유리장이었습니다. 방 아랫목은 책장 차지가 되었고, 책이라야 몇 권뿐이었지만 자물통을 달아 곳간 지키듯 했습니다. 섬에 사는 아주머니 중에 유일하게 초등학교 졸업장이 있다던 선자 아지매가 그 앞을 암만 오래 기웃거려도 어머니는 딴청만 부렸습니다. 


섬의 겨울밤은 춥고 길었지요. 문풍지로 스미는 칼바람이 우리를 아랫목으로 밀었습니다. 따뜻한 자리를 차지하려고 궁둥이를 당기다 보면 유리장 앞에 앉았습니다. 자연히 눈망울은 책장에 닿아 있었지요. 그러면 어머니가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죽방에서 물고기를 건지듯 책을 빼내어 펼치면 방 안에 아가미질 소리가 났습니다. 책들은 고래와 같은 폐활량으로 우리를 먼 이방으로 데려다주었습니다. ‘신섬’을 떠나면 ‘삼천포’가 전부였던 나에게 <성냥팔이 소녀>와 <엄지공주>는 신기한 나라의 이야기였습니다. 


책이 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리어카에 책을 싣고 두어 달마다 장마당을 찾아오는 ‘구루마 책방'이 전부였습니다. 어머니에게는 적은 돈조차 쓸 수 있는 권한이 없었습니다. 어른들의 허락 없이는 어느 것 하나 쉽게 살 수 없었지요. 아직 아들 없이 딸만 셋을 낳았을 때였으니 딸들에게 읽힐 책을 사겠다는 말은 꺼낼 수조차 없었을 테지요. 조부모님 말씀을 한번도 거역한 적이 없는 어머니였지만 자녀교육만큼은 달랐습니다. 고심 끝에 내린 선택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책장수가 오는 날이면 가끔, 새벽 어장을 열었습니다. 모두가 잠든 달구리도 전입니다. 물살을 가르는 작은 노질 소리에도 섬이 깰까 봐 깜짝깜짝 놀라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물질이 끝나면 죽방을 다시 자물쇠로 채우고 바닷길을 돌아왔습니다. 어머니와 나와 바다만이 아는 비밀이지요. 그때부터 알았습니다. 바다가 얼마나 속이 깊고 입이 무거운지를 말이지요. 


어머니가 고기잡이를 하는 것은 반란이었습니다. 그 시절엔 여자들이 배에 오르는 것은 금기였으니까요. 게다가 몰래 죽방을 여는 일은 고방에서 쌀가마를 훔치는 것과 같았습니다. 들키기라도 하면 계모 시어머니를 비롯한 어른들로부터 평생 ‘어장 도둑’이란 오명을 듣고 살아야 할 판입니다. 책은 아주 천천히 키를 높여갔습니다. 나와 동생들도 얼추 그만큼의 속도로 자라났을 겁니다. 책의 키가 유리장 천장에 닿았을 무렵이었습니다. 동생들도 나를 따라 섬을 넘어 뭍으로 왔습니다. 


생신 이튿날, 어머니가 또 어장을 여는 모양입니다. “삑, 삐이익!” 오랜 시간 속으로 물고기 떼의 힘찬 유영이 펼쳐집니다. 민어와 갑오징어와 뽈락*, 놀래미*, 뱅에*, 쥐치……. 죽방 가득히 차진 생명의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볼락’, 노래미, 병어의 경남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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