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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금아 Nov 01. 2024

놀란흙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아들의 음성이 떨렸다. 

손주가 태어났단다. 남도를 여행 중인 남편으로부터 스마트폰으로 사진 한 장을 전송받은 직후였다. 눈 내린 마을을 배경으로 감나무에 까치 한 마리가 앉아있었다. 홍시 두 개가 하얀 눈을 이고 있는 풍경이 풍요로웠다. 

아기가 태어난 시각의 세상이 그러했을까. 아기의 첫 울음소리가 우렁차게 울려오는 것 같았다. 바람은 고요하고, 까치는 울음을 멈췄겠다. 사진을 찍은 시각은 오전 7시 30분이었다. 아기가 태어난 때는 2분 뒤인 7시 32분이었다니 남편은 손주가 세상에 오는 기운을 영靈으로 먼저 느꼈던가 보다. 

성당에 가던 길이었다.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면회 시간에나 볼 수 있단다. 혼자 길을 걷는데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사람들을 붙잡고 손주가 태어났다고 자랑하고 싶었지만, 삼칠일 동안은 비밀로 해야 한다는 옛말이 떠올라 꾹 참았다. 성당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성모님께로 달려가 귀에다 대고 살짝 속삭였다. 촛불을 켜고 올려다보니 성모님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지는 듯했다. 

미사를 마치고 나오니 남편에게서 연락이 와 있었다. 서울에 도착하려면 네 시간이나 남았단다. 조바심이 났다. 집에 와서 집 안 구석구석을 몇 번이나 걸레질하면서 아기를 만날 때 입고 갈 옷을 생각했다. 환한 색이 좋을 것 같았다. 평소에는 잘 입지 않는 노랑 원피스를 꺼내어 빨래 건조대에 걸어두고 거풍을 시켰다. 흰색은 어떨까. 그러다가 초록 원피스에 흰 블라우스를 받쳐 입었다. 아기가 푸른 잎 무성한 나무로 쑥쑥 자라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남편이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갔다. 아기는 유리 칸막이 너머에서 강보에 싸인 채로 곤히 잠들어 있었다. 긴 여정을 풀고 있는 것 같았다. 눈을 감은 모습으로도 영락없는 우리 식구였다. 사람들이 손주를 일러 아빠 닮았네, 엄마 닮았네 하면 입으로는 맞장구를 치면서도 속으로는 그랬었다. ‘고슴도치 양반님네들! 신생아 얼굴이 다 비슷하지요.' 그런데 어쩐 일인가. 우리 아기는 신생아 때의 제 아빠를 빼닮아 보였다. 

선물로 가지고 간 오르골을 틀어주었다. 규슈의 유후인 거리를 걷다가 맑은 음색에 반해 들어갔던 상점에서 한참을 골라 사 온 것이었다. 갓 태어난 손주의 귀에 담길 소리라고 생각하며 얼마나 가슴 벅차했던가. 그때 점원이 포장하는 동안에 나도 모르게 읊조렸던 그 기도가 다시 새어 나왔다. ‘아기가 오르골 소리처럼 맑고 아름답게 살아가기를….’

돌아오는 길에서였다. 지하철을 두 번 환승하여 서울대입구역에서 내렸다. 집까지는 다시 버스를 타고 네 정거장을 가야 하는데 남편과 나는 약속이나 한 듯 버스 정류장을 지나쳐있었다. 걷고 싶었다. 하늘과 땅, 바람이 난생처음 보는 새것이었다. 멀리 아파트가 보였다. 남편은 고깃집에서 저녁이나 먹고 가자고 했다. 삼겹살로 자축하고 있는데 친척들에게서 축하 전화가 이어졌다. 오늘 아빠가 된 아들이 처음 이 세상으로 오던 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마음이 들뜬 모양이었다. 

온 집안 식구가 함께 아기를 낳은 것 같았다. 어느새 모두는 새 이름을 받았다. 우리 부부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고 딸은 고모가 되었다. 두 시동생은 작은할아버지가, 다섯 명의 여동생은 이모할머니가 되었다. 이종과 고종, 육촌과 사돈, 그 사돈의 팔촌도 새 이름을 얻었다. 친척뿐 아니다. 숫자로만 기억되던 사람들이 누구누구네 옆집 아줌마가 되었고 아랫집 아저씨, 윗집 누나가 되었다. 이름을 받은 이상, 그 이름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 한 명의 아기가 온다는 것은 운명 공동체를 '놀란흙'으로 만드는 일이다. 아기가 오면서 우리 일가는 자신들의 자리를 조금씩 내어주고 받아들이면서 한 자리에 오래 머물러 있어 굳어진 흙덩이를 새 공기와 볕살로 포슬포슬하게 쟁기질할 거다. 다른 사람이 서 있던 자리에 서게 되면서 조금씩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될 테지. 

또 한 장의 사진이 왔다. 아들이 아기에게 젖병을 물리고 있다. 아들이 태어나던 날, 남편이 아들에게 우유를 먹이던 사진과 어찌 그리 닮았는지…. 그 아기가 자라 한 생명의 아빠가 되다니, 세상에 와서 해놓은 일 없이 머물다만 가는가 보다 했는데 내 한 몸도 이음새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후듯해졌다. 아기가 마음밭을 벌써 '놀란흙'으로 만든 때문이었을까. 늦도록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날 밤, 지구 바깥 어느 별에서는 여느 때보다 더 푸른 지구를 볼 수 있었을 테다. 



*한 번 파서 손댄 흙. 마경덕 시인의 시 <놀란흙>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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