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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금아 Nov 01. 2024

그리운 객석




연극을 보러 갔다. 공연 시간이 되었는데도 객석엔 나 혼자여서 취소할까 말까, 마음으로는 매표 창구를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다. 그 사이 막이 오르고 배우가 나왔다. 모노드라마였다. 단 한 명의 관객을 두고도 울다 웃다 하며 혼신을 다하는 연기를 보고 있으니 어린 날의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서편 하늘에 붉은 기운이 돌기 시작하면 아버지는 간간이 심심해하는 나를 태우고서 바다로 갔다. 뱃멀미가 심해지면 섬으로 올려보냈다. 비렁 위 칡넝쿨이 우거진 곳에 몸을 웅크려야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었다. 철 따라 붉은 갯나리와 청보랏빛 해국이 피어나던 그 자리는 섬에 사는 사람 누구도 앉아본 적 없었을 나의 지정석이었다. 그곳에 앉아 턱을 괴고 있으면 해면을 노 저어가는 아버지가 보이고, 멀리 아슴아슴한 뭍이 보였다.  

  용광로에서 흘러나온 듯 거세게 출렁이던 금물결, 물결을 따라 전속력으로 흘러가던 아버지의 돛배, 까치놀 속으로 칸나꽃 이파리처럼 뚝뚝 떨어져 내리던 날치 떼‧‧‧‧‧‧. 찰나의 순간, 물속으로 몸을 처박았다가 해면 위로 소스치기를 반복하며 필사적으로 달려가던 바다. 모든 것이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등 푸른 날치 떼가 하얀 배를 뒹굴어 날아오르면 천지에 섬광이 일었다. 

  바다를 떠나고 싶어 하는 몸짓인 줄로만 알았다. 바닷속 포식자의 아가리를 피하려면 날개가 없어도 해수면을 떠나 물 한 방울 없는 공중으로 날아올라야 한다는 것, 그 슬픈 비행의 내력을 알기에는 나는 너무 어렸다. 그러느라 지느러미는 찢어지고, 숨이 멎을 듯한 절명의 고통도 제 안으로 삼켰을 터. 그 작은 물고기가 한 생을 살아가는 데에도 그토록 고된 여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 것은 어른이 되고도 한참 후였다. 

열다섯 나이에 바다에 사지(四肢)가 묶여버린 아버지였다. 서자로 태어나 혼자만 섬에 살며 어장을 일구어야 했으니 얼마나 오래 꿈꾸었을까. 아버지도 도회로 공부하러 간 동생들처럼, 가로와 세로축 어느 한 곳에도 매이지 않은 포물선의 시간을 나풀나풀 날아오르고 싶었을 거다. 그러기엔 너무 일찍 바다를 알아버렸던 걸까. 새로 사서 실은 그물을 파도에 묻어버리고, 수리를 마치고 막 조선소에서 내린 배를 만신창이로 만들고, 그도 모자라 선원들을 삼켜버리는 배신을 당하고도 아버지는 바다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갑판에 다시 그물을 실었고, 상처투성이 배를 조선소 독에 올렸고, 바다를 달래느라 밥을 올리고 술을 부었다. 

아버지의 굳은 믿음 덕분으로 모두 하나가 되었다. 바다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배도. 그것들은 나누어질 수 없는 하나가 되어 단단한 몸을 만들고 있었다. 날개 없이도 수면을 날아오르는 날치 떼처럼, 무모하다 싶으리만치 맨몸으로 그물을 던졌다. 믿음만 있다면 아무리 무거운 짐도 부릴 수 있다는 것을 배운 까닭이었다. 한번도 네모나 세모였던 적 없이 둥글게 날아오르던 아버지의 그물들. 모서리의 시간조차 옹글게 끌어안았기에 가능했을 거다. 

투망질을 끝내면 배는 노를 바다에 담근 채 뱅뱅 맴을 돌았다. 아버지의 두 팔에 푸른 힘줄 불끈 심던 노(櫓). 그 노깃을 따라 붉은 물결 속으로 흘러 들어가던 거친 숨소리들. 바다 끄트머리에 생의 한 가닥을 심는 의식이었을까. 아버지는 조금씩 바다가 되어갔다. 그토록 많은 상처를 안고도 바다가 지금껏 숨을 쉬고 있는 것은 그때 아버지가 불어넣어 준 숨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아버지가 펼치는 연기를 보며 혼자 있기를 배웠고, 기다리기를 배웠다. 나는 점점 말을 잃어갔다. 어른들은 그런 나를 철들어 간다고 했다. 셈든다는 말이었을 거다. 아버지는 나에게 셈법을 가르쳐준 적 없지만, 바다라는 단어 속에는 손가락으로 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것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존재하는 것에는 보이는 너머의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황혼 끝에는 어둠이 내렸다. 그러면 자리에서 일어나 돌비알을 내달렸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서도 몇 번이나 머리를 돌려 바다를 보았다. 돛단배도 아버지도 날치 떼도 감쪽같이 사라지고, 검은 휘장이 덮고 있었다. 연극이 끝나고 내리는 장막 같았다. 몇 번 그 일을 겪으며 나는 객석을 떠나 주인공으로 삶의 무대에 올랐을 거다. 

극장 무대에도 막이 내리고 있었다. 연극이 끝나고도 한참을 앉아 있었다. 뜻밖에 배우가 객석으로 오더니 인사를 했다. 머리카락 끝에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연극을 혼자만 본 것이 미안했다. 내가 없었더라면 오늘은 공연하지 않고 쉴 수 있었을 텐데요, 하고 말끝을 흐렸더니 배우는 관객이 없어도 시간이 되면 무대에 서야 한다며 웃어 보였다. 

출렁이는 바다 한가운데에 서서 혼자 그물을 던져야 했을 아버지가 떠올랐다. 외로움을 어찌 다 감당했을까. 어린 날 나는 아버지에게 오늘처럼 단 한 명의 관객으로 초대받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어느새 나의 바다에도 노을이 설핏하다. 삶은 모노드라마라지만 자주 쓸쓸했다. 그럴 때면 ‘그 자리’를 떠올렸다. 그런 날에는 혼자 연극을 보러 간다. 객석에 앉아 있으면 막이 오르고, 사늑하니 바닷새 울음이 들려오고, 바다 끝에서 그물을 던지는 아버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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