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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quip Feb 03. 2023

공간을 지나 머물던 시간

찬빈네 집 vol.2 읽고

나고 자란 전주가 고향이라고 얘기해도 되는데, 한 번도 그렇게 말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포항에서 지낼 때도 그곳이 나의 동네가 되지 못할 걸 언제나 알고 있었으니, 어디 출신도 아닌 채로 오래 떠돌아다니는 중이다. 그렇게 살아있는 공간에선 내가 속할 곳이 없어서, 언젠가 죽을 날만 시간으로서 내가 속한 곳으로 여긴 건 내게 늘 자연스러운 결론이었다.
성인이 되고 포항에서 떠돌다 전주로 왔을 때, 이곳은 낯설고 무서운 곳이었다. 그 두려움은 동네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누워있는 낮과 밤동안 내 마음에서 흘러나와 방을 가득 채운 불안과 절망감이, 방에서 뛰쳐나와서도 걸음마다 묻어났다. 나는 이곳을 떠나지 못할 것이란 낙담이 언제나 무거웠다. 두려움의 무게에 부쳐 방에서 나가지 않거나, 방에 들어가지 않는 밤들을 보냈다. 그런 시절에는 일 때문에 경기도 어느 지역들로 다시 떠돌면, 그 방 근처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지도 않았다. 나는 죽어가는 시간에 살았기에, 공간들은 어디나 텁텁했다. 발은 땅에 딛었지만, 마음은 낙하하고 있었다. 떨어지는 감각은 시계를 부유한다. 내가 나라는 생각도 자꾸 잊고, 어딘가에 매달린 사람처럼 마음을 잡아채지 못했다. 차라리 바닥에 닿았다면 어디라도 방향을 볼 수 있었을 텐데, 내 안은 우주처럼 무한하게 허무했다.
동네에 대한 책을 읽은 이유는 그런 허무함 때문은 아니다. 나는 아직도 이 동네가 낯설고 두렵다. 작가가 얘기하는 이웃이라는 개념이 내게는 없다. 이렇게 너무 오래 살아와서 지금 적으면서도 이게 무슨 문제인지 피상적인 기분만 느껴진다. 하지만, 내가 속하지 못한 것이 공간이기 전에 공동의 일이라는 것은 이해하고 있다. 여기가 고향이 아닌 이유는 이곳이 우리 집이 아니고, 우리 동네가 아니고, 우리에 내가 없어서다. 사람들을 꺼린다고 했지만, 이렇게까지 꺼려야 했던 건 아니었다. 세계에 연이 필요 없는 삶이란 없다. 온전히 홀로 독립자인 사람은 지구에 없을 것이다. 모르겠다. 그저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내일 갑자기, 이곳이 나의 안전한 집이 되진 않을 것이다. 느닷없이 우리 동네란 개념도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이곳은 여전히 그저 낯선 곳이다. 낯선 사람들, 낯선 길이다. 내 공허함만 가득한 곳이 아니다. 내일은 그저 날이다. 홀로 낯선 사람들을 본다. 이제 낯설어서 마음이 편해진다. 잠을 조금 잔다. 설치지 않고 편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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