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 죽어있었다. 한 손에 쥘 수 있는 작은 새가 건물 입구에 미동도 없이 누워있었다. 몸 어느 한 군데도 상한 곳이 없어 보이는 깃털과 작은 눈이 보였다. 발에 채일 뻔 해 놀라 소리를 질렀다. 보고 있기 힘들었다. 죽은 것과 눈이 마주치는 게 불안했다. 몸이 살살 떨려 왔다. 그 몸을 여기서 내 손으로 치워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괴로웠다. 주변엔 장갑도 비닐봉지도 하나 없었다. 맨 손으로 죽음을 들어야 했다. 부드러운 깃털과 툭 꺾인 목이 손에 닿았다. 피 한 방울도 묻지 않았지만, 죽음이 손을 타고 내게 흘러 들어올 것처럼 느껴졌다. 건물 한쪽에 조그만 흙무더기를 파고 얼른 덮었다. 경황 이 없어 눈을 감겼는지 모르겠다. 손은 흙투성이가 됐다. 기껏 입고 나온 코트 끝에는 화단 먼지가 묻어났다. 책방으로 가지 않고 방으로 돌아와 손을 씻고 나니, 다시 나갈 힘이 없었다. 항상 죽고 싶다고 말하지만, 죽음은 두렵다. 쉬운 죽음이란 없다. 죽음을 이해하는 일은 어려웠다. 죽은 사람들. 다시는 그들의 존재가 내게 없을 사람들에 대한 기억들은 이제 아무데도 없다. 얼굴이나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는 죽은 친구들. 충분히 미워하지도 못했는데 죽어버린 사람들. 어쩌면, 나도 누군가에겐 죽은 사람이다. 망각 속에서 잠든 내 모습은 그들이 기억을 건져 올리다 잘못 딸려 갈 때, 한번씩 나타나겠지만 그것은 내게도 죽은 모습이다. 과거는 살아있지 않다. 오직, 지금 있는 것들과 있을 것들만 살아있을 세상이다. 난 죽음을 상정하지 않는다. 죽고 싶은 마음은, 죽음과 가깝지 않다. 그 마음은 삶에서 먼 마음이다. 갈 곳이 없으니 방향이 죽음으로 향했을 뿐이다. 세상 참 좁다. 는 말을 간혹 듣는다. 예기치 못하게 다시 시작되는 인연들에 붙이는 상투적인 반가움이다. 세상은 좁다. 좁은 세상은 무수한 절망이 되기도 한다. 어디로도 향하지 못하고 이미 정지할 곳에 닿은 기분은 절망이다가, 안도였다가. 내가 아는 감정은 아니다. 쉴 새 없이 떠나야 하는 삶에도 절망은 있다. 절망은 어디에나 있다. 약한 연대들, 고립된 시간들에도 절망은 방 한구석에 자리 잡은 그림자처럼 있었다. 지쳤다. 지친 마음이 계속 자랐다. 어느새 내 세계는 지친 마음의 농장인 것처럼 무력함을 수확했다. 후원을 전부 중단했다. 내 죄책감을 덜기 위해 시작한 얼마의 돈들을, 무력한 세계에서 살기 위해 종결시켰다. 먼 곳을 보던 마음은 폐허다. 기형도의 방* 에 가만히 눕는다. 어느 곳에도 이젠 손이 닿지 않는다. 마음은 그저 마음이다. 왜 새를 묻어줬을까. 왜 도와주지 않아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일을 했을까. 왜 늙은 일용직 노동자의 생계를 위해 과태료를 안 낼수있게 해줬을까. 이기심이다. 오만이다.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라는 거만한 태도다. 위한다는 것은 나의 만족이다. 낮은 자존감을 채우려 하는 탐욕이다. 그래도 그것이 이루어지는 게 좋았다. 과거를 다 죽여서 마음을 무덤으로 만들지 않았을 때가 편했다. 어느 날 잡았던 손들, 기꺼이 건넬 수 있던 마음들. 입춘이 지나도 봄은 오지 않는다. 날이 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