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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quip Feb 03. 2023

종말을 바라는 우리의 세계

*2022년 11월 초에 글쓰기 워크샵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당시 재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주제와 암시가 노골적입니다.


SF장르에는 ‘타임루프’ 라는 것이 있습니다. 일종의 시간여행 중 하나인데, 특정 시간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SF에선 오래쓰여 진부한 소재가 됐지만, 최근에 큰 인기를 끈 웹소설인 *전지적 독자 시점의 세계관으로 사용됐을 정도로 오랫동안 인기 있는 설정입니다.

타임루프의 세계는 일견 불교의 윤회와 유사한 맥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어느 날 자신이 시간이 반복되는 세계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는 세상에 자신이 존재한다는 착각과 그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불교 수행의 초입과 비슷해 보입니다. 일련의 사건이 진행되면서 고통의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여러 시도를 하고, 몇 번의 반복과 실패를 겪지만, 결론에는 되풀이되는 윤회의 세계에서 해탈하듯 벗어납니다. 반복되는 세계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은 이야기에서 가장 결정적인 돈오의 순간입니다. 많은 작품에서 그 순간은 과거의 반복에서 외면하던 비틀림을 포착할 때 찾아옵니다. 반복이 끝나면 이전 세계는 종언하고, 찾아 헤매던 다음 세계에 도착합니다. 그것으로 반복되던 이전 세계의 깨달음과 노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전과 같아 보이지만 달라진 세계는 비틀림을 간과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죽음에 대해 사고하는 날들이었습니다. 가까운 죽음과 먼 죽음들. 때로 죽음은 인간에게 가장 공평한 일이라고 하지만, 기실 죽음은 삶만큼이나 공평하지 않습니다. 어느 끝은 해가 지고 다음 해를 기다리듯이 순리처럼 흐르지만, 부지불식간에 강탈당하는 종말도 있습니다. 삶의 끝이 마땅한 자격으로 누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강탈된 시간은 누구에게도 마땅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전에도 이런 강탈을 목격한 적 있습니다. 사람이 사라지면 어떤 가능성은 사라집니다. 그것은 도래할 수도 있던 시간이기도 하고, 그의 마음과 걸음이 향하던 곳이기도 합니다. 사라진 것이 어떤 것인지는 이제 모르겠습니다. 다만,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들에 할 수 있는 말이 없을 뿐입니다.

우리의 세계는 반복해서 명멸하는 날들입니다. 계속해서 되돌아오는 과오의 세상입니다. 찾아 헤매던 다음 시간에 도착하기 위해선 우리의 외면을 그만두고, 어떤 방법이라도 시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타임루프는 과오와 남겨진 생존만 반복됩니다. 잃어버린 가능성과 삶들은 다시는 태어나지 않습니다. 타임루프 작품에는 자주 사용되는 클리셰가 있습니다. 반복되는 시간을 경험하던 인물이 허무에 빠져, 인간성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되풀이되는 재난속에서 끝내 돈오 하려하지 않는 날들을 봅니다. 허무하고 상실된 세계 자체인 사람들이 우리의 지난한 시간을 연장하는 것을 봅니다.

같은 전개를 계속 보여주는 것은 수용자에게 지루하고 답답한 시간이 될 수 있기에, 작중 드러나는 시간반복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의 세상에선 아마 관객들은 퇴장하고, 독자들을 책을 덮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음으로 나갈 길을 모르는 채로, 어쩌면 알려하지 않은 채로 이 시간선의 망령이 되어갑니다. 사라져야 할 것은 우리의 세계입니다. 우리의 현재는 비탄하고 애통하기에 찾음에 그침이 없어야 합니다. 외면을 그치고 돈오의 순간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자의 새 하늘을 막연히 기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번에는 이 반복을 마지막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새로운 마지막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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