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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은 Nov 19. 2021

꼬불꼬불한 내 머리

히피펌과 칼 단발을 좋아하지.

날개뼈 근처에서 꼬불 거리던 머리가 어느새 허리춤에서 찰랑거리는 계절이 왔다. 젖은 머리에 샴푸를 할 때면 폭신폭신하던 꼬불머리가 가끔은 그립다.


앙상한 나무는 다름이 없고, 제법 쌀쌀한 온도도 같은데 머리카락만 한 뼘이 자란 건가 싶었다. 하고 싶은 것은 늘어가고 노트의 속지는 모자라다. 오클랜드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던 비행기 안에서 야무지게 그린 별표 울타리 안에 '하고 싶다!'라는 다소 당찬 포부를 적었다. 기내식은 마다하지 않고 창밖은 잠시 사양한 채로. 한 페이지를 넘기고 나니 그제야 고개를 갸웃거렸다.


'욕심인가?'


과찬은 생각에 고개를 힘껏 흔들었다. 하고 싶은 것에 욕심이 어디 있어. 마음은 참 단순해서 고갯짓 몇 번에 순수해진 정신으로 두 번째 페이지를 채우고 있었다. 한글 번역이 없는 '프렌즈'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레이첼과 그런 레이첼의 커피잔에 설탕을 타 주는 로스를 세 번째 보고 있을 때였다. 일시 정지를 누르고 웨딩드레스의 빛을 벗 삼아 나름의 신중한 미간으로 목차를 늘려간다. 때마침 다가오는 승무원이 불을 켜도 된다고 친절이 뚝뚝 흐르는 말을 건넷지만 '어두운 게 좋아요.'라는 대답을 했다. 사실이었다. 글을 쓸 때나 방해받고 싶지 않은 시간으로 깊이 빠져들 때면 갖추는 습관이 있었다. 주로 캔들이나 작은 스탠드 조명이면 됐다. 비행기 안에서는 웨딩드레스의 화사함이면 충분했다. 승무원에게 다소 괴짜 같은 대답을 내놓은 나는, 털이 복실 한 점퍼에 사무용 가위로 대충 자른 처피뱅과 그 아래에 진한 다크서클을 장착한 얼굴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고 끝까지 친절했던 승무원을 잊지 못했다. 아니, 그 순간의 나를 잊지 못했다.


구름을 마다하던 하늘 위에서 적어진 꿈을 읽고 있는 지금은 조금 행복했다. 그날의 마음이 온전히 전해지는 기분이 그랬다. 하고 싶은 걸 하고 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려고 한다. 하고 싶은 일은 할 수 있는 일이 되고, 하고 싶다는 하고 있다가 되었다. 그런 발돋움이 나를 부풀린다. 나는 여전히 무럭무럭 자라고 있으니까.


어디까지 자라야 까치발을 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이 될까. 여전히 욕심부려 부푸는 꿈으로 뒤꿈치가 닿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눈동자를 굴려 흘끔 바라보는 곳에 닿아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하겠지. 내가 나를 만족하는 것이 계절이 흐르고 꼬불 머리가 허리춤에 닿는 일만큼 무던한 시간으로 다가왔으면 하고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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