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행복]
한 가지의 행복에 목매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고. 다양한 행복을 찾아보라는 글을 읽었어요. 그리고 덧붙여 행복은 단순해야 한대요. 그래야 쉽게 행복할 수 있다고.
길을 걸으면 다양한 행복이 지천에 널려있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그 행복은 모두 단순했어요. 나무가 흔들리는 행복, 시냇물이 맑은 소리와 함께 흐르는 행복, 포동포동 살이 오른 길고양이와 마주치는 행복, 울창한 나무를 지나쳐 걸을 때 내리는 햇살을 맞는 행복.
꼭 걷지 않아도 행복을 마주할 수 있었어요. 감자를 삶아서 설탕을 뿌려 크게 한 입 먹는 행복, 아따맘마 겨울 시리즈를 보며 이불속을 더 파고드는 행복, 좋아하는 책을 발견하는 행복, 내 마음을 다독이는 문장을 발견하는 행복, 마음에 쏙 드는 양말을 두 켤레 사는 행복, 숨과 함께 피어나는 입김을 마주하는 행복, 기대하지 않았던 눈송이를 보는 행복. 그런 단순하고 다양한 행복이 늘 있었어요. 저는 행복을 다양하게 누릴 줄 아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요, 그러니까 어려운 수학문제 같아요. 단순한 문제를 푸는 건 쉬워서 쉬운 만큼 성취감이 짧고 이후에는 기계적으로 무감각하게 답을 써버려요. 구몬 학습지를 풀 때처럼요. 얼마나 많은 문제의 답을 찾은 지도 모르게 돼요. 행복도 그랬어요. 걸으며 만나는 행복의 수를 다 헤아리지 않고 당연히 스쳐가요. 쉬운 행복은 쉽게, 그리고 짧게 스쳐가요.
복잡한 문제를 풀 땐 몇 시간이고 앉아서 풀고 또 풀어요. 하루종일 그 문제만 붙잡고 앉아서. 끝내 공식을 찾고 문제의 답을 발견했을 때, 그때의 성취감은 오래 가요. 또 공식을 써 보고 싶고 같은 문제가 나오면 반갑고 그랬거든요. 행복도 어렵게 찾은 행복은 오래갔어요. 한 주 내내, 때론 몇 달을 그날의 행복에 젖어서 지냈어요.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머금은 행복은 쉽게 빠져나가지 않았어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잡히지 않는 행복만, 멀리 있는 행복만, 손에 닿지도 않는 행복만 추구했나 봐요. 시간은 계속 가지만 풀리지 않는 문제로 눈물이 날 만큼 속상하지만 붙잡고 있었어요. 오래오래 행복하고 싶어서. 스치기만 하는 행복으론 충족이 안 돼서. 심심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그랬나 봐요.
어려운 문제 앞에 앉아 있어요. 내내 머리를 싸매고 앉아서 행복을 잃고, 찾고 그러다가 앞장으로 돌아가 단순한 문제의 답을 지우고 다시 풀어요. 마음이 좀 편안해져서.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채워지는 기분이 좋아서. 다시 앞 장으로, 또 앞 장으로.
멀리 있는 행복에 닿으러 걷고, 높은 행복에 닿기 위해 올라요. 길이 있고 계단이 있고 사다리가 있을 텐데. 길가에 핀 들꽃에도 마음을 빼앗겨 금세 행복해하는 나를 잊지 않는다면 쉬운 행복에 심심할 틈 없이 닿아 있을 거라고 믿어요. 행복은 도망가지 않으니까. 익숙해서 무덤덤해지는 행복을 경계하며 걸어요. 걷고. 또 걷고.
행복은 욕심부려도 된대요. 늘 조금 더 바라요. 다양한 행복을 바라요. 사랑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행복하기를. 각자 다른 모양의 행복이라면 알맞은 모양으로 든든하게 채워지기를. 혼자가 아닌 함께 행복하기를. 알맞은 행복을 떠들며 같이 부풀려지기를. 단순한 행복을 걸어 마침내 행복.
열손가락을 펼쳐 행복을 세다가
발가락의 도움이 절실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