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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 Apr 07. 2022

부부의 가정 폭력 사건

나는 남자가 되고 싶었을까

요즘 새로 시작한 TV 프로그램이 있다. '어른들은 모르는 고딩엄빠'. 우연히 한 편을 보게 되었는데. 한 출연자의 (고딩 엄마가 되게 한) 연애 경험이 나오고 있었다. 남자 친구와 잘 만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에게 집착을 보이면서 학교에도 가지 못하게 붙잡기 시작했단다.


- 남: 너 학교에 다른 남자 있냐? 너, 나 몰래 만나는 남자 있지?

- 여: 너 만나기 시작하고 두 달 내내 붙어 있었잖아. 남자는 무슨 남자야?

- 남: 그럼 왜 그렇게 바득바득 학교를 가려고 그러는데?


말싸움을 하다가 급기야 몸싸움까지 일어났다. 어이가 없는 여자가 남자에게 말했다.


- 여: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 남: 그러게 왜 말을 안 들어? 아이 XX(욕…).


여자가 며칠 간 남자의 만류로 학교에 결석한 후, 그 날은 학교에 가겠다는데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늘어놓으며 여자가 학교에 가지 못하게 하는 상황이었다. 남자의 집착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를 내기 일쑤였다고 했다.


이 에피소드를 보고 있다가 나의 결혼 초 폭력 사건이 생각났다.

무슨 일이었는지는 기억도 안 난다. 우리 부부는 밥상에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있었고 대화를 나누다가 말다툼이 일어났다. 말다툼 도중 화가 난 나는 밥 먹던 숟가락을 그대로 집어던져 내동댕이쳤고 그는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화가 난 것 같았지만 언성도 높이지 않고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 남자가 여자에게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폭력을 쓴 것만 가정 폭력이 되는 게 아니야. 내가 숟가락 던졌으면 여보가 가만 있었겠어? 여자가 남자에게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폭력을 쓰는 것도 가정 폭력이야. 이건 명백한 가정 폭력이야. 이런 행동을 하면 여보와 같이 살 수 없어. 


아...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내가 미쳤나 보다. 나의 폭력 행위가 진심으로 부끄러웠다. 이건 명명백백, 배우자에 대한 폭력 행위였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빠르게 사과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 약속했으며, 배우자 역시 이 기회에 같은 약속을 했다. 이는 우리 부부의 일종의 "폭력 금지 협약"이었다. 나는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고 배우자 역시 단 한 번도 그런 행동을 한 적이 없다. 부부싸움하다 욕하던 버릇도 서서히 고쳐 나갔다. “야!” 소리 지르기 시작하면 나의 배우자는 얼른 “네? 왜 그러세요 누나?” 한다. 웃음이 터져 더 싸울 수가 없다. 그의 지혜로움에 탄복하게 된다. (아닌가? 진짜 무서운 건가? ㅎㅎ)


그러고 보면 나는 꽤 폭력적인 행동을 한 기억들이 있었다. 20대 초반, 남녀공학인 대학을 다녔고 여학생보다 남학생의 수가 5배 정도 많았다. 특정 상황에서는 욕도 서슴지  않았고 술자리에서 성차별적 발언이라도 하는 남자 후배들에게는 손쉽게 머리를 때린다거나 젓가락을 던지기도 했다. 어떻게 그런 폭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사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거친 문화가 있는 곳도 아니었는데. 그 시절을 생각하면 너무 부끄럽다. 많은 별명이 있었는데 20대 후반 즈음 되었을 때 나의 별명은 '단.무.지'였다. 단순 무식 지X.

그 시절의 나는 왜 그랬을까. 힘을 갖고 싶었던 것도 같다. 여성이 약자인 세상에서 남성과 동등할 수 있는 힘. 남자들과 어울리면서 나를 보호하고 강하게 살아남고자 함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매료되었던 페미니즘을 오해해서 더 강한 힘과 권력을 가진 여자가 되려고 했던 것 같다. 남성과 여성의 위치를 바꾸는 것이 페미니즘이 아닌데 말이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남성 중심 사고의 기본 구조는, 세상을 인식자를 중심으로 대립적으로 파악하는 이분법"(<페미니즘의 도전>, 24쪽)이라고 했다. 나는 약자와 강자의 이분법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알려는 노력, 세상에 대한 애정과 고뇌를 유보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 한나 아렌트가 말했듯이, 사유하지 않음, 이것이 바로 폭력이다. (같은 책, 45쪽)


나는 여러가지로 나의 배우자에게 감사한다. 내가 저지르고 있던 폭력을 알아차리고 빠져나오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아이 뿐 아니라 배우자도 나의 인격적 성숙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공동육아를 만나고 비폭력대화를 배우고 평화 감수성을 키우고... 여러 사건과 계기들이 나를 '사유하게' 만들었다. 20대와 비교하면 완전 다시 태어난 수준이다. 평생 더 알아야 하고 갈고 닦아야 할 것도 많지만 말이다.


"데이트 폭력의 기준이 요즘엔 넓어졌잖아요. 저렇게 사소하게 집착을 하는 것도 데이트 폭력이 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고딩엄빠'의 여성 출연자는 자신의 스토리를 재구성한 영상을 보며 담담하게 한 마디 덧붙였다. 헤어지고 혼자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결정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이것들을 알기까지 얼마나 상처받고 고통을 겪었을까. 자신이 당한 것을 폭력이라 알아차리고 빠져 나온 것이 대단해 보였다.그녀가 환하게 빛나 보였다.


나는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다는 것, (중략) 알게 된다는 것은, 무지로 인해 보호받아 온 자신의 삶에 대한 부끄러움, 사회에 대한 분노, 소통의 절망 때문에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같은 책, 22-23쪽) 


변화와 성장은 우리가 겪는 어려움이 고정적이지도 않고 영원하지도 않다는 것을 믿을 뿐만 아니라, 고통을 '자원화'할 때 가능하다. 어떻게 고통과 더불어 살아갈지, 어디에 서서 고통을 바라보아야 할지에 따라 고통은 다르게 해석된다. (같은 책, 36쪽)

        

(다들 눈치 챘겠지? 네, 저 정희진 선생님 팬입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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