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상의 몸의 표준은 남자인가
나는 추위를 많이 타지 않는다.
'많이' 탄다, '많이' 타지 않는다, 라는 개념은 무척 상대적이어서 객관적인 기준이라기엔 애매한데, 조금 더 부연하자면, 여자들끼리만 모인 자리에 있으면 나는 상대적으로 추위를 많이 타지 않는 사람에 속한다. 또 코로나 시기에 처음으로 나의 몸에 대해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평상시 내 몸의 체온은 남들보다 0.5도 높은 37도라는 것이다. 아이 키우면서 아이 체온을 잴 일이 종종 있으니 아이의 평상시 체온이 37도라는 걸 알고 신기하네, 했었는데, 그게 나의 체질을 물려준 거라는 사실은 애를 낳고 15년이 지나는 동안 까맣게 몰랐다. 코로나로 가는 곳마다 체온을 재게 되면서 이제야 새롭게 알게 되었으니 내가 이렇게 나를 몰랐다. 내가 이렇게 내 몸을 몰랐다.
여태까지 내가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인 줄만 알고 살아왔다. 나는 남자 형제 뿐이다. 그는 키도 나보다 20센티쯤 크고 몸무게는 거의 나의 2배에 육박한다. 그와 비교될 때 나는 언제나 추위를 많이 타는 쪽이었다. 그러다가 남자와 결혼을 했다. 그 역시 나보다 키가 20센티쯤 크고 몸무게는 세상의 표준(?)인 70키로 내외다. 그와 비교될 때 역시 나는 대체로 추위를 많이 타는 쪽이었다.
여고 시절 3년을 제외하고는 주변에 남자들이 많은 환경이었다. 남자형제밖에 없는데 어릴 때 함께 큰 엄마의 절친 아이들도 모두 남자아이였다. 20대에는 여자들이 20% 미만인 집단에서 공부를 했고 30대에도 여전히 남자들이 훨씬 많은 환경에서 사회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40대가 되어서야 같은 여자들이 주류(?)인 환경에 놓이게 되었고 이제까지와는 다른 상대적 조건이 내 몸을 새롭게 알게 만들었다. 이 곳에 오니 나는 추위를 안 타는 사람이 되었다. 체온이든 체질이든,,, 각자가 가진 다른 특성들이 얼마나 상대적인 것인지 알게 되었고 이에 따라 남자들에게 맞춰 온 표준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세상의 몸의 기준은 온통 남자에게 맞추어져 있다. 집에서는 양변기로 여남 모두 사용하는데 왜 공용 남자 화장실은 소변기라는 걸 따로 두고 양변기와 소변기를 함께 만들어 더 많은 인원이 편리하게 사용하게 만들게 되었을까? 왜 엘리베이터의 탑승 인원 기준은 70킬로그램의 남자 몸무게에 맞추어져 있을까? 전기 자전거도 몸무게 70킬로그램 기준으로 몇 킬로미터 갈 수 있는지 적혀 있다. 맥주 500cc 마신 뒤 알코올 분해 속도도 몸무게 70킬로그램 기준으로 2시간 걸린단다. 국민보험공단 홈페이지 DB에서 찾아 봤더니 2020년 평균 체중 분포 현황이 남자 73.8, 여자 58.5다. (출처: https://stat.kosis.kr/statHtml_host/statHtml.do?orgId=350&tblId=DT_35007_N132&dbUser=NSI_IN_350) 남자 몸무게를 표준으로 삼고 있다는 게 팩트다. 사실 몸무게 뿐이 아니다. 자유, 평등, 박애를 외쳤던 프랑스 혁명 정신의 박애가 “brotherhood”인 것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던 기억이 지금도 난다. 여자들은 ‘인류’에 포함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암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어차피 사람 몸무게 다 다른데 어떤 식으로든 표준이 필요하지 않냐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 표준이 왜 하필 남자의 표준 몸무게인지를 물어야 한다.
몸무게만 그런 것이 아니다. 몸에 대한 기준도 여자인지 남자인지에 따라 다르게 본다.
2020년 최초로 여성 운동선수들이 나오는 예능 '노는언니'가 런칭했다. 이 프로그램을 즐겨 보다가 우연히 기사를 보게 되었는데, 이 예능을 기획한 방현영 CP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노는 언니>를 기획했어요.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시청률이나 채널 데이터를 참고하는데, 참고할 데이터조차 없었어요.” (출처: 이유진 기자, 경향신문, 2020.08.25,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8251400001&code=960100) 남성 스포츠 선수들이 예능에 진출한 사례는 많았으나 여성 스포테이터(스포츠+엔터테이너)는 2020년이 되도록 없었다는 거다. 세상 좋아졌다고들 하고 무척 성평등한 세상이 된 것처럼 말하지만 방송에서도 역시 그랬던 거다. 여성들이 주인공이면서 운동 선수들이 나오는 예능이 당시까지도 없었던 거다. 스포츠나 운동은 특히 남성 중심성이 강한 분야이니 더욱 더 그랬을 거다.
나는 당시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여성의 몸', 그 중 '근육질의 여성의 몸'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수영선수 정유인이 나오는데 1회에서 그는 오락실에 함께 가 펀치 게임을 제안한다. 긴 머리를 질끈 묶고 펀치를 준비할 때부터 동료들은 "여전사" 같다, "멋있다"고 반응한다. 정유인은 최고기록이 9479인 펀치 기계에서 9105점을 얻으며 최고 기록에 근접해 모두를 놀라게 한다. 이어 물놀이를 위해 물놀이 복장을 준비하면서 그의 '근육질' 몸매가 화제가 된다. 그는 수영으로 다져진 어깨 근육을 드러내고 박세리는 두 팔을 든 정유인의 근육을 보면서 근육에 "날개가 생긴 것 같다"고 감탄한다. 나는 이 장면이 너무 감동적이고 좋았다!
정유인은 사실 SNS에 사진을 올릴 때 포토샵으로 근육을 줄여 왔다고 한다. 운동을 위해 단련한 것인데 팔뚝 굵기를 가지고 '너는 여성적이지 않다'고 말하거나 이상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 때문'이라는 거다. (출처: 곽현수 기자, 스포츠동아, 2020.08.05, https://sports.donga.com/article/all/20200805/102313853/1) '뭉쳐야찬다'에 수영선수 박태환이 나온 적이 있는데 이 때는 수영으로 다져진 (남자다운) 떡 벌어진 어깨를 부러워하면서 줄자를 가지고 와 어깨 길이를 재며 남자들의 넓은 어깨를 뽐내는 게 그 날의 주요 에피소드이기까지 했다. 달라도 이렇게 다를까 싶다. 그래서 '노는언니'가 좋았다. 여성 운동 선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몸에 대해 세상이 얼마나 이중적인 잣대로 남성과 여성을 다르게 취급하는지를 생생하게 알 수 있었다. 전형을 깨는 여성들이 TV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통쾌함을 느꼈다. 그로부터 여자들이 운동하는 프로그램을 즐겨 보게 되었다.
여자의 떡 벌어진 어깨도 너무 멋있다.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멋있다. 운동 선수는 운동 선수로 봐야 한다. 남자가 나오면 교수로 보고 운동 선수로 보고 군인으로 보는데, 왜 여자가 나오면 교수여도 운동 선수여도 군인이어도 그저 '여자'로만 보는가. 그 눈이 문제다. 여자가 나오면 무조건 성별로만 보는 사람들 눈의 렌즈를 갈아 끼울 필요가 있다.
코로나 이후 집단으로 어울리며 놀기 어려워 마루(남편)와 함께 걸으러 다니다가 급기야 산에도 다니게 되었다. 그는 산에 오르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걷는 것은 아주 좋아하는데 산처럼 가파른 데 오르는 걸 좋아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내려올 건데 왜 정복하듯 올라야 하는지 당최 이유를 모르겠다. 풀과 나무의 기운, 새소리, 물소리는 꼭 꼭대기까지 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보고 듣고 냄새 맡을 수 있는데. 오르락내리락하는 재미가 있는 둘레길 정도가 딱 적성(?)에 맞는다. 2년 동안 하도 걸었더니 체력이 좋아져서 어느 날엔가부터 뒷산(우리집 뒷산은 남한산성이다) 오르는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게 되긴 했다. 내가 거뜬히 남한산성 오르는 걸 보더니 감동하며( 또는 감동한 척하며) 작전을 걸어온다. 그는 한라산 가는 게 버킷 중 하나기 때문에 아마 작전일 거다.
- 체력이 좋아졌는데? 이제 남한산성은 거뜬하네?
- 그러게. 체력이 좋아지긴 했나 봐.
- 그럼 이제 조금만 훈련하면 한라산 갈 수 있겠어. 거길 가려면 근력이 더 필요해.
- 나는 이 정도 근력으로 만족해. 마루 기준에 나를 맞추려고 하지 마. '나혼산'에서 전현무 한라산 갔다 오는 거 보고 결심했어. 난 한라산은 안 가기로.
나는 마루와 함께 운동을 하지만 더 이상 내 몸을, 내 체력을 그의 페이스에 맞추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다. 공통 분모만큼만 같이 하려고 한다. 내 몸 생긴대로 내 몸이 감당할 만큼만 운동할 거다. 내 몸 생긴대로 살 거다.
표준 몸무게 70이 아니면 아닌대로 살아야 한다. 아직은 젊지만 늙어가고 있고 나도 언젠간 노인이 될 텐데 노인의 몸으로도 차별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한다. 조금씩 노안이 오는 기미가 보이는데 노안을 시작으로 노인이 되면 여러 몸의 어려움과 장애들을 맞이하게 되겠지. 장애가 있는 몸으로도 편안히 살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그게 내가 출근길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출근 투쟁으로 지각을 하더라고 지지하는 이유다. 우리는 누구나 불편한 몸으로 살아갈 날을 맞게 될 거고 그래도 편안히 살아갈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김은형이 쓴 한겨레신문 칼럼 “만국의 노인이여 단결하라”(출처: https://m.hani.co.kr/arti/opinion/column/1038818.html)에서 그는 영화 <그레이스 앤 프랭키>의 주인공 그레이스의 대사를 인용한다.
“나는 80살 여성이고 천천히 걸을 권리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