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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 Jun 07. 2022

엄마의 도시락 ‘해방’기

아빠도 도시락 쌀 수 있다

아이가 다녔던 공동육아어린이집은 한 달에 한 번 먼나들이가 있었다. 먼나들이는 대절한 차를 타고 멀리까지 나들이를 가는 것. 멀리 나갔다 오려면 도시락이 필요했고 그건 곧 내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싸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아이의 아빠가 도시락을 쌀 수도 있었지만 일단 그가 새벽에 일어나는 거 자체가 ‘미션 임파서블’이었다. 그는 당시 회사에서 매일 12시를 넘겨 들어올 만큼 중노동과 중회식(?)에 시달려, 아침에 아이를 10시에도 등원시키지 못할 때가 많았다. 도시락은 언감생심.

나는 당시 7시 30분까지 출근하고 대신 일찍 퇴근하는 상태였고 6시 50분쯤 집에서 나가야 하니 도시락을 싸려면 5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유부초밥도 싸고 꼬마김밥도 싸고, 볶음밥도 싸고, 불고기에 상추쌈도 싸고, 그랬다.


그러던 어느 날, 전날 저녁에 도시락 재료를 사 냉장고에 채워 놓고 일찍 일어나기 위해 아이와 함께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은 일찍 일어나 출근을 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리고 회사에 도착해서도 한참만에 깨달았다. 으악! 나 오늘 도시락 싸고 나왔어야 하는데!!!!! 까맣게 잊고 그냥 나왔다! 미쳤다! 황급히 집으로 전화를 걸어 남편을 깨웠다. 전화벨 소리 듣고 일어나니 땡큐.


- 마루치, 큰일 났어! 빨리 일어나! 오늘 하늘이 도시락 싸 보내야 하는데 내가 깜박 잊고 그냥 출근했어! 김밥 싸기는 너무 늦었고 아마 볶음밥용 야채 썰어놓은 게 어딘가 있을 거야. 그걸로 얼른 볶음밥 만들어서 도시락 싸 보내!!! 빨리!!! 


마루치는 아마도 정신이 번쩍 들어 벌떡 일어나 볶음밥을 만들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는 무사히 도시락을 싸 보냈다. 미션 완료! 아이는 아빠가 싸준 간단하지만 맛난 볶음밥을 들고 즐겁게 먼나들이를 다녀왔다.


다음 달, 도시락을 싸는 먼나들이를 앞둔 날이었다.


- 엄마! 나 먼나들이 때 도시락 싸 줄 거야?

- 그럼 싸 줘야지.

- 나 볶음밥 해 줘.

- 볶음밥 먹고 싶어? 그래 볶음밥 싸 줄게.

- 엄마 말고! 아빠가!

- 그래. (잠시 정신 차리고) 어? 뭐라고?

- 아빠가 싸 준 볶음밥 먹고 싶어. 제일 맛있어. 


머릿속에는 GOD의 ‘어머님께’가 자동 재생되고 있었다. 하늘이는 ‘엄마가 해준 김밥이 싫다고 하셨어’, ‘아빠가 해준 볶음밥이 좋다고 하셨어.’

아니, 내가 장장 2년 동안 매달 일어나 도시락을 쌌는데 아빠가 해 준 볶음밥이 더 맛있다고? 배신감도 이런 배신감이 없었다. ‘김밥이 만들기 더 어렵거든? 김밥이 영양가도 더 많거든?’ 혼자 구시렁거리고 씩씩거렸지만 아빠가 해준 볶음밥이 맛있다는 걸 어쩌랴.


마루치에게 전화를 걸어 ‘아빠가 해 준 볶음밥이 엄청 맛있대. 좋겠다?’ 했더니 신이 나셨다. “내가 요리를 좀 잘 하긴 하지.” 쳇. 볶음밥이 뭐 대단한 요리라고. 그날 마루치는 또 한 번 볶음밥 도시락을 싸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로부터 아이 졸업할 때까지 주야장천 아이 어린이집 먼나들이 도시락을 싸게 되었다. 그럼 엄마인 나는? 그날로부터 나는 먼나들이 새벽 도시락에서 해방되었다!

나는  그동안 내가 아이 도시락을 싸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일찍 출근하는 내가 도시락 싸는  훨씬 힘든데 말이다. 아무래도 아이가 어릴수록 엄마인 나는 주양육자로서  책임감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이가 아빠가 해준 볶음밥이 엄청 맛있다고   서운하기도 하고 화도 났는데 시간이  지나니 너무 좋았다. 엄마를 도시락에서 해방시켜 주려는  그림이 있었나 싶었다.  화가 났었던 거죠?  아이가 효녀가 아니면 누가 효녀랍니까!


(사실 매달 도시락을 싼 건 아니었다. 어린이집이 점점 좋아져 가까운 곳으로 먼나들이를 갈 땐 집에서 빈 도시락통만 가져오라 하고, 맛단지 선생님이 일찍 출근해 일품요리를 해 각자 가져온 도시락통에 담아 주시기도 했다.) 마루치는 아이의 ‘아빠 도시락이 맛있다’는 한 마디에 어린이집을 졸업하는 날까지 성실하게 도시락을 쌌다.


지금 생각하면 참 뜻깊고 좋은 일이다. 엄마가 싸 준 도시락을 먹은 아이들은 세상에 많을 것이다. 우리 아이도 엄마 도시락을 먹고 자랐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아빠 도시락도 먹고 자랐다.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골고루 먹고 자랐고 도시락을 싸거나 요리를 하는 게 ‘엄마’나 ‘여자’라는 편견도 없이 자랐다. 그렇게 자란 아이는 가-끔 먹는 걸로 아빠와 싸우기는 해도 사춘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아빠와 사이가 좋다.


아이는 6-7세를 지나는 동안 종종 얘기했다.


- 엄마, 아빠는 볶음밥을 잘 만들지?

- 그렇지.

- 아빠는 쿠키도 잘 만들지?

- 그렇지. 그럼 엄마는? 엄마는 뭐 잘해?

- (잠시 정적) 엄마는 렌자렌지*를 잘 돌리지.

(*아이가 어릴 때 ‘전자레인지’를 이렇게 불렀다)


큽. 아이 키워 봐야 다 소용없다. 엄마가 저녁마다 해 준 요리들은 다 어디로 가고 엄마는 전자레인지나 돌리는 사람으로 기억하는지. 역시 아이는 내가 한 만큼 기억하는 게 아니다. 그냥 본인 기억에 남는 걸 기억한다. ㅎㅎㅎ 딸아이는 아빠의 요리를 더 잘 기억한다. 네가 어릴 적 이런 소릴 해서 엄마의 요리 의욕을 꺾은 바 있다고 얘기하면 이제 많이 큰 아이는 깔깔대며 웃는다. ㅎㅎㅎ

그러니까 엄마들이여, 아이에게 아빠가 한 요리, 먹게 해도 된다! 엉망 요리여도 아이가 의외로 좋아할 지도 모른다. 시켜보지도 않고 아빠가 해준 도시락, 아빠가 해준 밥 먹을 기회를 뺏지 말자!


“때때로 엄마들은, 모든 것이 되어야 하고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배운 탓에, 아빠들의 역할을 축소하는 데 기여하고 있어. (중략) 최악의 경우엔들 무슨 일이 일어나겠어? 애가 아빠 손에 죽지는 않을 거야.”

(<엄마는 페미니스트>,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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