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미묘한 차이
나는 남동생과 함께 남매로 자랐다. 어릴 적 몇 년간 우리집에는 엄마의 고모님이 함께 산 적이 있었다. 우리에겐 고모할머니셨다. 엄마 부재 시 우릴 돌봐 주시기도 했고 몇 년을 함께 살아 정이 들기도 했다. 정이 많고 언제나 밝은 분이셨다. 고모할머니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 사셨고 경상도 사투리를 쓰셨다. 고모할머니를 좋아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아들 선호 사상이 뼛속까지 깊이 새겨진 분이셨던 것 같다. 문득문득 지금까지도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고모할머니는 남동생이 아들이라서 대놓고 우대하셨고 티나게 예뻐하셨다. 심심치 않게 “고놈 고추 예쁜 거 봐라”는 말씀을 하셨고 툭 하면 “고추 달린 게 역시 다르다”고도 하셨다. 동생이 쉬 마렵다고 하면 아무데서나 뒤돌아 데려가 바지를 내리고 쉬하게 하셨다.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생각한다면 반대의 경우를 상상해 보자. 남아에게 “고놈 고추 실하네” 소리 하는 어른들을 많이 보았다면 여아에게 “고놈 잠지 예쁘네”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들은 적이 있는가? 나는 한 번도 딸들에게 이런 말 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또 만약 어린 딸이 쉬 마렵다고 할 때 공개된 자리에서 그릇 하나 주고 쉬하라고 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역시나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물론 요즘은 아무리 아들이라도 이 정도는 아니다. 야외에 나가 보면 요즘은 아무데서나 길에서 소변을 보게 하는 일은 아들이든 딸이든 드물어진 것 같다. 대신 다른 버전은 가끔 보았다. 빈 음료수병을 하나 꺼내 아들에게 소변을 보게 하는 장면은 꽤 많이 목격한 걸로 기억된다.
성인이 되어 도시의 길에서 노상방뇨하는 여성을 맞닥뜨린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다. 그런데 노상방뇨하는 남성을 마주친 적은 정말 많다. 나만 그런 것 같진 않은데. 도로의 갓길에서, 조용한 골목에서, 전봇대 뒤에서 등등. 그 뿐인가. 대학가 축제 등에서 캠프파이어를 마치고 나면 남학생들만 남아 불을 끈다며 대규모 노상방뇨를 계획(?)하는 모습을 본 것도 기억난다. 여학생들이 먼저 자리를 피하고 나서 그 계획은 실현된 것으로 안다.
우리나라에서 노상방뇨는 경범죄로 되어 있어 신고를 당하면 벌금을 내야 하며, 벌금은 10만원 이하 또는 구류 및 과료형 처분을 받는다. 미국은 50개 모든 주가 노상방뇨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을 갖고 있다고 한다.
버지니아의 경우 통상 범죄를 ‘중범죄’와 ‘경범죄’로 나눠 각각 6개 등급으로 구분하는데 노상 방뇨를 ‘1급 경범죄’로 취급한다. 경범죄라고는 하지만 교통법규 위반으로 받는 범칙금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형법상 경범죄는 범칙금과 달리 전과 기록으로 남는다. 1급 경범죄의 경우 최대 징역 1년이나 벌금 2500달러까지 선고가 가능하다. (출처: https://m.seoul.co.kr/news/newsView.php?id=20180113017001&cp=seoul)
이 기사를 쓴 기자께서는 "미국은 노상 방뇨를 길거리에서 급한 볼일을 해결하려는 행위로 생각하지 않고 공공질서를 해치는 짓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한다."고 한다. 그것이 높은 범칙금이나 형사처벌을 하는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여남 불문하고 공개된 장소에서 노상방뇨를 하지 않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확실히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서는 노상방뇨, 특히 남자들의 노상방뇨에 대해 관대한 문화가 있어 보인다. 태어나면서부터 "고놈 고추"를 칭찬하는 말을 듣고 자라는 남성들이 전 세계에서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 없을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자신의 성기를 예찬(?)하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고 자란 남성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여성들보다는 자연스럽게 노상방뇨를 하는 편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나는 한 사회의 문화라는 맥락 안에서 이것들이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다. 특히 여중, 여고 근처에 자주 출몰하던, 자신의 성기를 드러내는 것에 거침이 없던 사람들은 내가 목격한 바에 따르면 100프로 남자였다. 왜 이 같은 행위를 하는 자들은 대부분이 남자일까? 나는 그것에 사회적 맥락이 있다고 생각한다.
유명한 소아신경정신과 의사인 서천석 선생님은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이 일어났을 때 “정신병에도 맥락이 있다”고 하셨다. (출처: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2211045 (출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11045)
권위주의 독재 시대에 한 조현병 환자가 방송국에 뛰어 들어와 ‘내 귀에 도청장치 있다’고 외친 사건을 언급하며 조현병 환자들의 망상에도 사회적 맥락이 있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조현병 환자가 강남역 여자 화장실에서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살해하고는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 화가 나’ 죽였다고 말한 것도 일정한 “사회적 맥락 안에 있다”고 해석했다. 그리하여 그는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을 명백한 “여성 혐오 범죄”라고 보았다. 나는 이 분 말씀에 깊이 공감하고 동의한다.
특히 이 분 글의 결론에도 깊이 공감한다. 이 범죄를 두고 정신병이 원인인지, 여성 혐오가 원인인지 논쟁은 불필요하다. ‘뿌리 깊은 여성 차별이 여성 혐오가 되고 있는’ 시대에 이렇게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성도 안전하여 모두가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안전하게 살고 싶다. 우리의 딸들도 안전하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커버 이미지: 드라마 '아들과딸' OST CD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