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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풍 Oct 13. 2023

여행을 싫어했던 이유

내가 좋아하는 여행은 따로 있었던 거야

아빠는 거제도로 여행 중이야. 직장 동료들과 함께

엄마랑 동생들만 집에서 이틀 간 지내고 있어.

왠지 마음이 차분해지고 혼자서 있는 듯 고요하다.

아빠와 아무래도 우리 집에서 엄마에겐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나 보다.     


추석 때 부터였으니까.

딱 2주일 날깨 뼈가 아팠네.

오늘은 이제야 좀 정상이 되나 싶다.

한나가 탁구공으로 마사지를 밤마다 해주고

며칠간 침을 맞고, 며칠간 잠을 설치고, 며칠간 소염진통제를 먹다가 기어코 한약을 지어왔다.     


왜 내 날개뼈 속이 그리 아팠을까 생각해 봤지.

추석이라서 차를 유난히 오래 탔고. 

할머니 댁에서 불편한 자세로 오래 앉아 있었고

가족들과 함께 산행을 했는데 좀 피곤했고

집에 돌아와서 새벽부터 블루베리 분갈이를 했지.

아빠는 새벽부터 블루베리 분갈이를 해서 그렇다며 엄마를 구박했지만 속으로 더 화가 나더라.     

몸은 해야 할 일도 해야 하지만

이제 내 몸을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쓰고 싶은데

아빠는 내 몸을 건강하라고 막 쓰지 말라고 사랑 어린 걱정을 해 주지만

해결은 못해 줄 거 같다.


엄마는 블루베리 분갈이를 하고 싶었는데

아빠는 가족들과 밥 먹고 낮잠 자고 엄마랑 탁구가 치고 싶었던 거지.

한나는 놀이공원에 가고 싶고. 별이는 실컷 자고 싶고.

서로 하고 싶은 게 다를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책임감은 타고난 엄마의 몫이니.

이내 난 이제부터 명절이나 긴 연휴에는 가족들과는 딱 이틀 함께 즐겁게 보내고 남는 빨간 날은 혼자 여행을 가기로 생각한다. 


기울어진 관계는 결코 모두가 즐겁지 않고, 오래가지도 않더라.     

가족들은 이제 엄마 없이 스스로 삼 시 세 끼를 먹으며 자유롭게 쉬라고 해주려 한다. 엄마는 이틀 가족들과 맛있는 것도 먹고 했으니,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 그게 엄마의 솔직한 욕망인 거 같다. 계속 가족들과 함께 있는 건 엄마에겐 또 날개 뼈 통증을 가져올 것만 같다. 서로 사랑하고 아끼지만 24시간 누군가와 함께 계속 있어야 한다는 건 힘든 일이야. 서로에게.     

그래서 각자의 공간과 시간을 만들어 주어야 하지.

자식이 조금 크면 자기 방을 주고

더 크면 자기 시간도 더 주고

성인이 되면 부모 곁을 떠나 오로지 자기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가는 거지.

거기에 맞게 부모도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가는 게 좋다 싶다.     


난 나의 부모와는 다른 명절을 맞이하고 싶다.

자식들을 기다리며 온갖 요리를 하거나 기다리거나 서운하거나 무리하거나 음식 해주고 배부른 데 또 해주고 그런 거로 사랑을 표현하는 거 말고

만나서 정말 반갑고 행복하고 함께하는 행복을 만끽도 하고

각자가 힐링할 수 있는 명절.


가족 구성원 중 누구는 힐링하고 누구는 무리하거나 노예가 되거나 지치는 그런 명절 말고.

이제 엄마가 우리 가족 명절을 바꿀 차례가 된 듯하다.

할머니들에게 따르며 살아왔던 시간 말고.     

아마 이제 엄마는 긴 명절의 앞머리는 온 가족들과 함께 하고 끄트머리에는 여행을 갈까 한다.


왜 내가 여행을 싫어할까 생각해 보니

그건 내게 맞지 않는 여행이었기 때문인 거 같다.

내가 가고 싶은 숙소를 찾아 예약하니, 설레고 기다려지더라.

이제는 내가 가고 싶은 여행을 갈 거야.


멀지 않은 거리에 

혼자서 갈 수 있는

아주 조용하고 따뜻하고 소박한 곳으로.

책과 노트북을 가지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친구와 통화도 하고

글도 쓰며 여유를 누릴 거야

그리고는 또 다음 명절을 기다릴 거야.     


성인이 되어 명절이 기다려지거나 즐거웠던 적이 그다지 없다.

일 년에 며칠 안 되는 휴일인데 피로는 가중되고 허리 통증은 심해지고 가족들에겐 짜증이 나거나 스트레스를 받고.

이건 이제 그만하고 싶다.


아빠는 휴일이 다 지나갔다며 아쉬워하더라. 그러니 서로의 스트레스 크기가 다르다는 거겠지.

그건 아빠 잘못은 아니야. 사회 구조적인 시대적인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와 환경인 거겠지.     

이제 내 가족 문화는 내가 바꾸어보아야겠다.

짜증 내고 화내기보다, 이해 받으려고 따지기보다, 

독립된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인 다섯 가족이 모두 편안하고 자유로운 게 뭔지 고민해 보아야겠다.

아마도 엄마가 평화로워야 우리 집이 평화롭겠지.     


너희들이 성인이 되는 날을 엄마는 서서히 준비하고 있어.

그건 이제 관계가 달라져야 하는 거지.     

지난 날개 뼈 통증으로 엄마는 이런 생각들을 했단다.

몸은 내게 신호를 주는 거겠지.

뭔가 잘못되고 있다고.     


하루하루 추워진다.

옷장을 정리하고 기모 옷들을 꺼냈어.

옷 따뜻하게 입고, 따뜻한 물을 자주 먹고 항시 몸을 따뜻하게 해줘야 해.

따뜻함이 너의 힘듦을 조금은 덜어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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