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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풍 Mar 25. 2024

한껏, 한 컷

그 때 이후 버킷리스트 100개를 쓰고 실행이 시작되었다


버킷리스트 100개 쓰면, 실행이 시작된다


  시댁 조카의 결혼식이 있었다. 시누이는 처음 치르는 큰일에 정신이 없어 보였다. 혹시나 해서 시어머니께 전화해 보니, 어머니는 입고 오실 양장도 한복도 없이 그냥 오리털 파카라도 입고 오실 기세였다. 

 “내 아들도 아니고 손주인데, 요새는 뭐 그냥 편하게 입기도 하고 그러더라”


평생을 아끼고 아끼며 살아온 분이라 행사 참여를 위한 옷을 장만할 리 만무하다. 마침 남편이 같이 산책하던 길에 이 상황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 산책하며 봐 두었던 고운 한복집이 떠올랐다. 산책길을 돌려 한복집에 가서 내가 입어 보며 어머니 치수에 맞게 바로 빌렸다. 그 집에서 가장 곱고 화려한 한복에 빛나는 브로치, 꽃 모양 진주 귀걸이까지 어울리게 골랐다. 나는 시어머니 잘 모시는 효부도 아니고 말 잘 듣는 며느리는 더욱 아니다. 내 가정은 독립되어 있으며, 남편이 부모님에 대한 도리만 잘 지키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요즘 며느리인데, 꽤 많이 드는 그 돈이 아깝지 않다. 그건 내게 기회이기 때문이다. 버킷리스트를 실행할 기회.     

 3년 전 친정엄마가 돌아가셨다. 내 나이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법한 일인데, 나에게는 정말 수습이 오래 걸린 사건이었다. 세상의 시간과 공간, 모든 것을 달라 보이게 했던 사건.


 2021년 1월 12일 오후 2시경, 세 아이에 직장까지 바빴던 나는 오랜만에 식탁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휴대전화가 울려 받으니 옆집에 사시는 친정아버지였다. 

 “네 엄마 죽는다, 얼른 와!”

처음 들어보는 다급하고 절박한 목메는 목소리였다. 슬리퍼 바람에 총알같이 현관문을 열고 마당을 가로질러 아버지 댁으로 갔다. 식탁 옆에 엄마가 쓰러져 있었다. 나도 모르게 119를 누르고 통화를 하는 동시에, 몇 달 전 교육받은 대로 엄마 입 속에 손을 넣어 기도 막힘을 확인하고 가슴에 두 손을 올려 심장박동 속도로 압박했다. 처음 해보는 심폐소생술인데 교육받은 모든 게 갑자기 영화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전화기에서 나오는 구급대원의 안내에 따라 “삐~삐~” 심장박동 속도에 맞춰 온 힘을 다해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그래, 엄마는 눈을 뜰 거야’ 마음으로 외치면서.

 내 발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내 손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119구급차가 도착해 있을 때, 내 손과 얼굴은 땀에 젖어있었다. 구급차는 눈 쌓인 겨울의 한복판을 달렸다.

 응급실에서 가슴을 조이며 엄마가 소생하기를 기다리던 우리 가족들에게 전해진 건 그저 엄마의 죽음 소식이었다. 그렇게 엄마는 아버지와 내 눈앞에서 점심 식사하다 일어서던 그 한순간에 쓰러져 돌아가셨다. 가실 준비도 없이 보낼 준비도 없이 그렇게 가셨다. 

 장례를 그날로 치러야 했다. 그제야 엄마 영정 사진이 없는 걸 알게 되었다. 엄마의 휴대전화기 속 사진부터 찾아보고, 온 가족들 휴대전화를 다 뒤져보아도 엄마가 이쁘게 차려입고 찍은 사진은 없었다. 결국 20년 전 내 결혼 사진첩에서 찾아낸 엄마의 한복 입은 사진을 찾아 영정 사진으로 썼다. 

 장례 후 팔순이 넘은 아버지는 인사말 한마디 못 하고 엄마를 보냈다며, 매일매일을 회한과 후회와 아쉬움으로 눈물을 흘리셨다,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제대로 못 자며 몇 달을 지내셨다. 그런 아버지를 혼자 둘 수 없어 나는 초등학생이었던 막내와 같이 아버지 방에서 한 달 넘게 같이 지냈다. 아버지는 밤마다 시간이 안 가고 잠이 안 오면 빨간 낡은 상자를 열어보셨다. 엄마 계실 때는 열어보지도 않던, 옷장 속에 엄마가 두었던 오래된 사진 상자였다. 보며 우시기도 하고, 어떤 사진들은 핸드폰으로 찍어두고 수시로 열어보셨다. 삶의 의욕을 잃으신 아버지는 딱 일 년 만에 큰 병에 걸리셨고, 엄마를 따라가셨다. 그 일 년간 소중한 인생의 한 컷 한 컷을 자꾸 돌아보셨다. 소중한 보석들을 꺼내어 매만지고 보는 듯했다. 그때야 알았다. 그 사진 속에 아버지와 엄마의 행복했던 순간들이, 소중한 인생이 들어있음을.



 부모님은 산처럼 공기처럼 늘 계실 줄만 알았다. 나는 어제 살고 오늘 살고 내일도 살아갈 줄만 알았다. 부모님은 한순간에 가시는 거고, 나는 오늘만 살 수도 있음을, 인생이 얼마나 순식간에 지나감을 그때야 깨달았다. 그때부터였다. 버킷리스트를 실행하기로 한 게. 마음에 품고만 있던 버킷리스트를 꺼내어 공책에 하나하나 며칠에 걸쳐 100개를 적었다. 해마다 조금씩 고치기도 하고 추가하기도 하며 지금도 공을 들인다. 


 오늘도 버킷리스트를 두 개나 실행했다. 언제 가실지 모르는 시어머니, 남편을 가장 사랑하고 우리 가족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주는 소중한 분의 행복한 순간을 한 컷 찍어드렸다. 평소 좋아하시는 빛나는 장신구와 예쁜 한복을 입고 가족들과 누리는 행복한 표정의 사진을 찍어드렸다. 어머니 독사진, 가족들과의 사진, 우리 부부만의 사진도 찍었다. 한껏 멋을 낸 모습으로 행복한 표정으로. 오늘의 인생 한 컷을 남겼다. 어머니의 70대 행복의 한 컷, 우리 부부 50대의 어울리는 컷, 두 가지 버킷리스트를 한 방에. 참 행복한 순간이다. 


 다음 주 내 생일에는 우리 가족 다섯 명이 다 같이 한껏 멋을 내고 가족사진을 찍어볼까 한다. 봄이 가득한 마당에서 찍을까? 정갈한 사진관에서 찍을까? 아이들이 좋아하는 인생 네 컷 사진 가게에서 찍을까? 꽃처럼 자라나는 세 아이와 함께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사진에 담아두고 언제든 꺼내 보며 한껏 누리려 한다. 또 다른 인생 한 컷을 남길 거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결혼 20년이 되도록 가족 다섯 명이 같이 찍은 사진이 채 다섯 장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도 내일도 이제 나는 인생 한 컷을 남길 거다. 오늘도 나는 버킷리스트를 실행하고 있고 내일도 버킷리스트를 실행할 거다. 날마다 매 순간이 내 인생 한 컷이다. 부모님이 주신 한 컷이고, 아이들에게 남겨줄 한 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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