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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풍 Mar 22. 2024

나는 지금 왜 글을 쓸까?

돌보고, 찾고, 하고 싶고

 즉입~

“엄마, 2천 원 즉입~(즉시 입금의 줄임말)”

초등학생 막내가 공책을 내밀며 당당히 말한다.

“엄마가 일기 읽어도 돼?”

“그럼요, 어차피 엄마가 내 하루를 다 아는데 뭐”

스마트폰을 갖게 된 막내는 두 언니에 비해 글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잘하지 않는다. 생각다 못해 난 방학 때 일기 한쪽 쓰면 2천 원의 용돈을 제안했다. 주말에 친구들과 마라탕을 사 먹기 위해 막내는 정 심심할 때만 한쪽씩 써서 내밀며 ‘즉입’을 요구한다. 바로 카카오 카드에 2천 원을 즉시 입금(즉입)해준다. 내가 제안했지만, 참으로 우습다. 

‘일기 쓰는 일이 용돈 받을 일이라니~’

난 어릴 때 방학 숙제인 일기를 밀리곤 했다. 개학 전날 30개 넘게 밀린 일기를 쓰자니, 머리를 쥐어짜며 한 달 동안 먹었던 거, 놀았던 거 떠올리고 이리저리 쪼개고 이어서 쓰곤 했다. 그렇게 나를 괴롭히던 일기를 나는 아이에게 용돈을 줘가며 쓰게 하고 있다니!      


작은 수첩

초등학교 시절 밀린 일기와 독후감은 숙제로만 기억난다. 중학생이 되고 이런저런 고민이 생기고 자발적으로 공책에 무언가 쓰기 시작했다. 무슨 이야기를 썼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비밀스러운 ‘나만의 세계’ 같은 거였다. 주로 친구나 외모 고민 종류였던 거 같다. 가족 중 누군가 들쳐 보기만 하면 바로 ‘원수’가 될 준비가 된 사춘기 맘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집에서 멀리 떨어진 학교 앞 하숙집 생활을 하게 되었다. 별 이유 없이 마음이 답답할 때가 많았다. 아주 작은 시골 동네에서 학교와 하숙집만 왔다 갔다 하는 생활 3년.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고, 친구들과 실컷 수다도 못 떨고, 맛있는 것도 실컷 못 먹고 작은 하숙방과 교실에 갇혀 지냈다. 난 작은 수첩을 교복 주머니에 늘 넣고 다녔다. 그 속이 나의 해방구였다. 자습하다가 답답해도 펼치고, 시험점수가 실망스러워도 펼치고, 벚꽃이 피어도 비가 와도 친구들과 뭔가 불편해도 감정이 요동치는 날이면 수첩을 조용히 펴고 무작정 썼다. 머릿속 답답한 기분을 마구 쓰고 나면 쓰레기통을 비운 것처럼 가볍고 개운해졌다. 신기하게 파도치던 마음이 잠잠해지고 조용해지는 걸 느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내 감정 기복에 대해 혼자 질문하고 답하고, 누군가를 욕하거나, 친구 관계에 대한 고민, 나에 대한 실망, 공부 계획 등등 닥치는 대로 쓴 거 같다. 어른이 되어 내 아이들이 10대가 되면 보여주어야지 생각해서 서랍에 수첩들을 두었다. 30대의 어느 날엔가, 부모님 집 서랍 속에서 발견한 작은 수첩들 속에 ‘외모 고민, 이성 고민’ 등 차마 누가 볼까 싶어 얼른 다 버렸던 게 지금은 살짝 후회된다. 요즘 드라마에서 유행하듯 시간 여행자가 되어 50대의 내가 10대의 나를 만날 수도 있었는데….     

교단일기 & 해방일지

20대가 되어 대학에서 이오덕 선생님의 책을 접하게 되었다. 우리말과 우리글 교육에 참된 삶의 교육이 있음을 일찍이 알고 실천해 오신 시대의 스승. 지금도 내 잠자리 앞 책꽂이에 ‘이오덕 일기 5권 세트’가 전시되어 있다. 정신적 지주라고나 할까? 처음 교단에 설 때는 ‘이오덕의 글쓰기 교육’을 교실에 꽂아두고 보며, 나도 교단 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었다. 교단에서의 고민이나 있었던 일들을 공책에 열심히 기록도 했다. 30대가 되어 결혼, 출산, 남편의 암 투병, 세 아이 육아 등 이리저리 삶의 파도에 휩쓸렸다. 내게 주어진 삶은 잔잔한 바다보다는 파도치는 바다 느낌이었다. 파도의 굴곡을 타며 생활인 엄마가 되어 넘어서고 버텨왔다. 한 가정을 만들고 지킨다는 건 교단 일기를 쓰는 것보다 어려웠다. 바쁨에 치어 천천히 ‘기록’하기는 잊고, 빠르게 해결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며 20여 년이 지났다. 이제는 나를 돌볼 갱년기가 되었음을 아픈 몸과 약해진 마음이 내게 알려주었다. 빠르게 처리하기를 잠시 멈추고 천천히 나를 다시 써보기로 했다. 나를 돌볼 시기임을 알아채고 제일 먼저 찾은 것이 글쓰기. 나는 닥치는 대로 아침이면 내 감정과 몸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썼다. 몇 달이 흐르면서 이오덕 선생님처럼 훌륭한 교단 일기와 글쓰기 교육은 내 것이 아님을 알았다. 50대의 나는 교단 일기가 아닌 ‘나의 해방일지’를 쓰고 싶어졌다.   

   

왜 나는 이런저런 삶의 굴곡에서 늘 글쓰기를 해 온 것일까?      


나는 글로 나의 마음을 다독여주며 성장하고 있었다

내가 어린 시절 느꼈던 쓰레기를 비워내고 가벼워지는 기분. 

봄이 되면 집이 무겁게 느껴진다. 겨우내 쌓인 먼지와 짐들로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무겁다. 옷장에서 묵은 옷들을 비우기로 한다. 사회생활을 위해 남의눈에 맞춰서 샀던 지금은 필요 없는 출근복들을 챙겨 친구에게 보내기로 한다. 잘 안 입지만 질이 좋아서 미련 두고 쌓아놨던 옷들은 기증할 곳을 알아보고 잘 쓰일 곳에 보내기로 했다. 안 입는 옷을 박스에 하나하나 싸며 보내고 비울 상상만 해도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 삶이 가벼워지고 발걸음조차 가벼워진다.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옷, 나를 편안하고 기분 좋게 할 옷을 새로 산다. 늘 잘 보이게 공간을 비워두며 정리하기로 한다. 

무거운 삶을 스스로 가볍게 하는 것이 치유였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삶에 대한 감정, 나를 좌절시키고 힘들게 하는 무거운 감정도 묵은 옷들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를 가볍게 해주는 것. 그 수단이 내게는 글쓰기다. 뭔지 모를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들이 쌓여있었다. 불안, 아쉬움, 미련, 원망 과거의 감정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버리고 보내고 다시 쓸 것들은 하나씩 정리해 간다. 그것이 내겐 글쓰기다.

이제는 마음속도 옷장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그것으로 채우고 편하게 볼 수 있게 빈  공간을 만들어두려 한다. 

아이들을 키울 때, 아기가 아프고 나면 신기하게도 쑥 자라 있는 거 같았다. 내가 나를 치유하고 있다고 느끼면서 나는 단단하게 자라고 있었다. 조용히 서 있는 나무처럼 겉으로는 그대로인 거 같지만 나이테를 채우며 ‘성장’이란 걸 하고 있었다. 글을 쓰며 시간을 되돌려 과거로 가기도 하고 어떤 사건을 다시 해석하기도 했다. 그러면 복잡했던 감정들이 신기하게 사라지며 가벼워진다.

‘그때는 그래서 그랬구나’

내가 쓴 글이 나의 마음을 다독여주었다.      


즐겁고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다

글쓰기는 나를 표현하는 거다. 어떤 이는 노래로, 어떤 이는 그림으로, 어떤 이는 악기로 자기를 표현한다. 내게는 그런 예술적 감성은 없다. 꿈은 있다. 집 짓기와 책 쓰기. 머릿속으로 내가 지을 집을 상상하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글쓰는 것도 똑같은 느낌이다. 내가 사는 하루하루에서 진주를 발견하고 모아둔다. 어느순간 크고작은 진주알들을 모아 나만의 목걸이로 만든다. 글을 쓰기 위해 세상에서 내가 관심 있는 것들,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 읽고 메모하며 골라내고 구성해 보는 건 나만의 진주 목걸이 만들기다.  글쓰기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고 나답게 엮어가는 것이기에 나를 즐겁게 해주고 자유롭게 해준다.     


아름다운 순간을 남기고 싶다

글은 사진을 찍어두는 느낌이다. 마음의 사진이다. 내 삶에서 아름다운 순간들, 아름다운 사람들의 사진을 내 머릿속에 찍어두는 거다. 사진은 있는 그대로 찍는 것이라면, 글은 내가 보는 시선과 느낌까지 같이 담는다. 나의 시선과 해석을 입히니 그 순간의 감정까지 생생히 담겨있다. 그 기록들이 모이면 내 인생도 나에게만큼은 무엇보다 아름다운 예술이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마지막 해에 아버지가 지나간 사진들을 보시며 시간을 많이 보내셨다. 아름다웠던 내 시간을 내 방식으로 기록해 두고 싶다. ‘내 삶의 순간들’, ‘내 삶의 인연들’ 이런 주제로 글을 꾸준히 써보고 싶다. 내 인생의 의미는 내가 스스로 부여하고 싶은 거다. 세상 떠나는 날 잘 살아왔으니 미련도 아쉬움도 없이 갈 수 있도록.      


마음을 주고받고 싶다

나는 대화하기를 좋아한다. 친구들이나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면 몇 시간이고 재미있다. 남편과 산책하는 내내 3시간이라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친구들과 막걸리라도 곁들이며 이야기를 나누면 더욱 즐겁다. 이 세상에 나와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딘가 있었다. 내 말을 하고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글이다. 내가 보는 시선을 담아 내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하고 싶고 누군가의 시선이 담긴 이야기를 진심으로 다가가 듣고 싶다. 소중한 인연이 삶에서는 참으로 중요했다. 글로 소중한 인연을 만들고 대화를 나누며 마음을 주고받는 삶을 살고 싶다. 글은 나에게서 시작하지만 결국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로 나의 관심을 넓어지게하고 나와 나의 주변을 함께 돌보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세상과의 '소통'이다.      


 선입~

좀 전에 막내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친구들이 쌀국수 먹고 가재. 만원이 필요한데 용돈이 없어요.”

“그래 그럼, 오늘 일기 다섯 장 써야 해. 미리 만원 입금해 준다(선입).”

언젠가 50대가 된 막내가 내가 쓴 책을 읽으며, 나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이래서 나 어릴 때, 엄마가 일기 한 장 쓰면 2천 원씩 준 건가?’

나 없는 세상에서도 나는 아이들과 대화하기를 꿈꾸며, 마지막 순간까지 자유롭게 살기를 꿈꾸며 글쓰기를 계속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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