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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ay 싸이 Jun 03. 2024

영주권이 뭐라고 5

라오스 영주권을 따내기 위한 처절한 사투

2023년 12월


12월 초에 김장하러 한국에 가는 김에 서류 일체를 서울 한남동 대사관로에 있는 주한라오스대사관에 제출했다. 한산하고 일 없는 대사관일줄 알았더니 라오스에서 파견되어 온 외교관과 직원들도 십수 명은 되고 꽤 일이 많은 분위기였다. 접수에는 한국인 직원이 있었는데 일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은지 시종 불만스러운 표정이다. 회의 중인 담당자를 기다리는 동안 라오스 직원들이 몇 명이나 되냐고 묻자 아주 날선 어투로 "그런 건 왜 물으시죠?" 한다. 왜긴요 그냥 궁금해서 그러죠... 뭐 기밀이라도 되는 건지. 한 30분 기다려 담당자가 나왔다. 일이 없으면 하루이틀에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지만 담당자 말로는 검토에만 1-2주 걸린다고. 김장하러 집에 내려간 동안에 되기는 글렀구먼. 서류를 접수받은 서기관에게 간만에 고향의 맛 좀 보라고 라오스에서 가져간 째오빠댁과 째오벙을 뇌물로 바치고 명함만 받아 나왔다. 수수료는 70불.


김장김치를 들고 라오스로 돌아온지 며칠도 더 지나서야 서기관에게서 확인레터 준비됐으니 받아가라는 연락이 왔다. 이미 라오스로 돌아왔다고, 우편으로 좀 부쳐주면 안되냐니까 그건 서비스는 없단다. 역시 아직 자본주의를 덜 배웠구만. 서울 사는 친구에게 대리수령을 부탁해서 EMS로 서류를 받았다. 받아보니 내가 제출한 모든 서류들 위에 대사의 확인레터 한 장이 추가되어 있었다. "위 신청인은 라오스의 제반 법규정을 충실히 준수해왔고, 라오스를 사랑하여 라오스에 영주하기를 희망한 바, 주한 라오스 대사는 이에 동의하며 모든 서류가 잘 갖추어졌음을 확인하였음." 네, 뭐 그런 걸로 하지요. 그래도 뭔가 '받아들여졌다'는 느낌이 좋았다.


더 기다릴 것도 없이 바로 다음 단계인 구청 공안과로 갔다. 우리 구 공안과는 주택가 한가운데 있어서 뭔가 가족적인 분위기였다. 통합 접수 창구에서 서류를 검토하더니 보증인의 거소증명서를 첨부해야 한단다. 8번 라오스인과의 관계증명서라는 것이 보증인의 보증서인데, 사실 여기에는 아무런 추가첨부서류에 대한 안내가 없어서 기본적으로 선생님의 공무원증과 가족관계부를 첨부해서 제출했던 거다. 거소증명서는 헝깐반에서 쉽게 발급받을 수 있지만 문제는 보증인 선생님이 요즘 지방에 은퇴 후 정착할 집을 짓고 계시는 중이라 비엔티안을 종종 비우신다는 것. 아니나다를까 선생님은 지방에 계시고 아들을 시켜 거소증명서를 떼 주겠다 하신다. 이래저래 귀찮게 해 드려 죄송할 따름이다.


아들이 선생님의 증명사진을 받아 거소증명서를 만들어서 전달해준 게 12월 28일 오전. 바로 접수를 한다해도, 금요일인 29일 오전이면 이제 올해의 업무를 마감해서 내 서류는 십중팔구 내년으로 넘어가기 쉬운 상황. 묵혔다 내년에 새마음으로 시작할까도 싶었지만, 새해니 새뜻이니 결국엔 다 인간의 핑계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그냥 바로 접수하기로 했다. 겨우 두 번째 방문인데도 구 공안과 접수 창구 직원은 나를 기억하는지 창구에 얼굴만 들이밀고 별 이야기도 안 했는데 바로 담당자 사무실로 안내한다. 

안내받은 사무실은 무슨 취조실을 겸하는 곳인지 억울한 인상의 청년이 경찰과 심각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담당자는 사뭇 유쾌한 사람으로 내 서류를 휘리릭 넘겨보더니 수수료는 30만 낍, 잘하면 내일 안으로 처리될 수 있을 거라며 어깨를 툭툭 친다. 지갑을 열어봤더니 달러나 밧은 꽤 있는데 라오 낍이 30만이 채 되지 않는다. 근처에 ATM이 있는지 물었더니 어디 꽤 먼 곳을 알려준다. 에라 왔다갔다 땀 빼고 기름 쓰느니 돈으로 바르자 어게인. 점심 시간이 거의 다 돼서 ATM에 다녀오면 오후 1:30에 근무를 재개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도 하고. 65만 낍 정도에 해당하는 천 밧 짜리를 내밀며 "거스름돈은 필요없어요"를 시전하자 담당자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걸 보며 '여긴 문제가 없겠군' 싶었다. 아니나다를까 연말이라 업무를 제대로 안 할 것 같았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다음날, 2023년의 마지막 근무일 오전에 서류가 통과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럴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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