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Xay 싸이 Dec 15. 2021

<새벽의 나나> 박형서

책 리뷰 (2014년 글)

여행을 많이 다닌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사는 인도차이나 반도를 중심으로 해서 십 년 넘게 꽤 눈도장을 찍은 도시들이 있습니다. 뭐 도시라고 해봐야 인구 몇십만, 몇백만의 큰 도시를 말하는 건 아니고, 여기서는 사람들 모여 사는 곳 정도로 해두죠. 그런 여행지에서 제가 가장 매력을 느끼는 부분은 바로 '현지인'들입니다. 사람 사는 게 어디나 다 비슷하겠지만, 그래도 모든 풍경이 낯선 이방인의 눈에는 그 낯선 풍경을 낯설어하지 않고 능숙하게 지배하는 현지인들이 멋져 보일 수밖에 없겠죠. 동네에 구불구불 뻗은 좁은 수로 사이로 능숙하게 쪽배를 저어 가는 청년이라든지, 길모퉁이에서 주저하지 않고 대각선으로 무단 횡단해서 똑바로 갈 길을 가는 아가씨라든지, 안장에 앉은 사람이 안 보일 정도로 산같이 짚단을 쌓은 자전거를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고요하게 몰고 가는 노인이라든지요. 그렇게 매력적인 사람들의 모습을 보다 보면 눌러앉아서 사람 구경 좀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렇다 보니 깔끔한 주택가보다는 오래되고 허름한 숍하우스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이 이런 관음증을 충족시키기엔 더 나을 것 같더군요. 있는 사진 중에 대충 골라보자면 이런 정도?


방콕 카오산 근처의 한 골목

어떻게 하다 보니 동남아에 눌러앉아 살게는 됐지만, 이런저런 사정상 위 사진 같은 곳이 아니라 좀 더 현대적이고 다닥다닥 붙지도 않은 곳으로 와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늘 2% 부족한 뭔가를 느끼던 와중 박형서 작가의 소설 <새벽의 나나>를 읽게 됐지요. 몇 년 전에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책나눔을 하는 데 그 책이 끼어 있어서 알게 되었고, 그즈음에 받아 보던 국립국어원 뉴스레터에 작가 인터뷰가 있기도 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 판타지를 120% 충족시켜주는 소설이었어요. 우리나라로 치자면 청량리 588 정도 되려나요, 사창가의 뒷골목에서 각종 인간 군상들이 저마다의 체취를 풍기며 살아가는 이야기. 현실을 넘어서 판타지의 세계로 넘어가는 꿈같은 이야기. 냄새로 비유하자면, 들척구리구리한 파파야 냄새가 계속 풍겨 나오는 가운데, 한 번씩 강렬한 두리안 냄새가 스쳐 지나간다고 할까요. 나온 지 좀 된 책이지만 혹시 아직 안 읽어보셨다면 일독을 권합니다. 막 배낭을 꾸리고 싶어질지 몰라요.


뱀발.

표지에 보면 적박으로 크게 표시된, 간판에서 추출한 글자들이 있는데 디자이너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것들을 집어넣었을지 궁금해지더군요.

오른쪽 위 : 수쿰윗 소이 38 (새벽의 나나는 수쿰윗 소이 16 배경이지요)

왼쪽 위 : 위앙짠 (라오스의 수도는 왜?)

그 아래 : 타위숙 리조트 (라오스 왕위앙에 있는)

게다가 위앙짠과 타위숙 리조트는 태국어도 아니고 라오스어로 적었어요. 인터넷에서 찾았을 것 같지는 않고, 취재차 현지를 여행한(방콕에만 내내 있기 뭐해서 주변국도 좀 돌았겠죠) 작가가 제공한 사진 철에서 무작위로 뽑은 걸까요?

작가의 이전글 율 브리너, 왕과 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