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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널리 Mar 09. 2023

조언

2022년 6월 13일의 기록

가족에게 조언을 받았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들어서 엄마랑 언니한테(한 자리에 있었다) 전화를 해선 '이게 이렇고 저게 저런데 이런 상황에서 내가 이렇게 하거나 저렇게 하면 이런 결과나 저런 결과가 나오려나요?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죠?'라고 했더니 별 말 하지 않다가 정원에 꽃이 어떠냐며 카메라를 돌리길래, 나도 모르게 울컥해서 화를 버럭 냈다. 딸이/동생이 '이런 얘길 했으면 좀 심각하게 같이 생각해 주지, 왜 딴 얘기 하느냐'라고.

그러고 보니 언제나 그랬다. 말수 적은 내가 좀 심각한 얘길 할라치면 약간 회피에 가까운 반응을 하던 가족들. 그 가운데 아빠는 조금 다르다. 내가 워낙 그런 얘길 잘 안 할뿐더러 아빠한텐 직접적으로 조언을 구할 게 있으면 정식으로(?) 회사에 찾아가서 이런저런 얘길 꺼내놓는다. 그럼 아빠는 웃음기 없이 내 얘길 듣고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시고 뒤에 꼭 한마디 덧붙이셨다. '현실적으로는 이런데 결정은 네가 하는 거니까 책임도 네가 져야 하는 거야'라고.

그래서 난 큰일이 있을 때마다 아빠에게 직접 만나서든(한국에 있을 때) 이메일이든(외국에 있을 때) 아빠의 생각을 묻는다. 그게 지금까지 대 여섯 번 되려나. 나란 사람은 원래 독불장군이라 '하면 한다!'가 강해서 내가 판단하기에 보통의 일은 다른 사람의 조언 없이 그냥 직진 본능으로 앞으로 나아갔고 다행히 큰 탈 없이 일이 진행됐다. 그래서 그런 기조를 여태껏 유지하고 있는지도 모르고(글 쓰다 보니 아빠한테 고마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표현을 그리 적극적으로 하지 않게 되는 이유는 아마도 하는 쪽도 받는 쪽도 살갑지 않아서일까. 아빠는 대표적인 경상남도 남자+인디아나 존스 한 스푼이라서 통화 상대로는 그다지 매력적인 사람이 아닌지라. 그렇다 보니 점점 인터랙션 하는 시간이 짧아진다. 소중한 사람한테 고마움을 전달하는 것, 세상을 살다 보면 자꾸 잊게 되는데, 잊지 말아야지).

어쨌든 그렇게 화를 냈더니(다시 첫 문단 이야기), 엄마와 성향이 다른 언니는 '엄마는 이래서 안 된다, 그건 그냥 그래도 되지 않을까?'라고 얘길 하고 엄마는 본인이 내가 얘기한 비슷한 상황이 나와 반대 입장으로 여러 번 겪었을 법한 일임에도 편하게 얘길 해주지 않으신다. 짐작되는 이유는 있고 큰 딸 앞에서 그런 얘길 하면 또 큰 딸은 불같이 틱틱 쏘아댈 것이기에 얘기를 하지 않으신 것 같지만 이것도 나의 판단일 뿐이다(언니는 대표적인 K-장녀다(K-장녀의 장단점을 알고 있는 나는 언니에게 엄청 고마워하고 있다, 언니에게 툴툴대기는 해도 화를 내지 않는 이유는 그런 언니의 책임감과 가족에 대한 헌신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빠도 본인(언니)도 인정하지 않지만, 미안. 내가 보기엔 둘 다 엄청 대표적인 케이스들이야. 경상남도 남자와 K-장녀. 그러다 보니 둘이 엄청 투닥댄다. B형 둘이 모여 그러고 있음 AB형인 엄마와 나는 상대적으로 유한 부분이 있고 무슨 생각하는지 모를 부분이 많아 그냥 보고 있다. 그러면 안 됐는데...라고 지금은 자각하고 있지만 그땐 그런 것도 모르고 왜 만나기만 하면 저러는 거지 의아함만 가지고 있었다. 나의 판단일 뿐 모두를 틀 속에 넣는 행위가 잘하는 행위는 아니다. 글 쓰면서 반성하는 나란 사람. 생각 정리엔 글 쓰기가 필수다. 덧붙이자면 그런 성격적 특성뿐만 아니라 '대화' 방식이 많이 달라서였던 것도 한몫했다고 본다). 어쨌든 나는 물었고 그들은 답했고 나는 친구의 조언을 들었다. 물론 가족의 조언도 어느 정도 버무려서.

질문하는 것과 거기에 대한 답을 하는 것, 그 답이 틀리는 데에 대한 두려움. 그게 모두한테 내재되어 있는 걸까. 조언을 구하는 사람도, 조언을 해주는 사람도, 그리고 다시 그 조언을 선택해서 취할 전자의 입장에 있는 사람도, 본인이 제시한 조언이 선택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후자의 입장에 있는 사람도, 누구든 편하게 얘기하고 선택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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