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나도 행복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불행만을 추구하던 내가 행복이란 걸 깨닫기엔 너무나 큰 대가가 따라서 내던지고도 이젠 꺼내기가 두려워 그저 모른 채 하는 것만 같다. 그냥 그렇게 지상이 아닌 공중에 붕 떠서 유랑하고만 있다. 내가 정말 정착할 낙원이 존재하는 걸까.
언젠가 내가 정착할 낙원이라면 그저 행복만 가득하지 않더라도 불안에 떨며 고독하게 눈물을 훔치며 더 강해져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지 않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그저 불행이 닥쳐오더라도 유연하게 대처하며 너무 어렵지 않게 벗어날 수만 있었으면 좋겠다. 너무 외롭지 않게, 너무 많이 아프지 않게, 그리고 너무 많이 울지 않게.
여전히 나는 이곳저곳을 유랑하고 있는 것만 같다. 살아도 살아있는 것 같지 않고 뭔갈 열심히 해도 일궈내는 성과도 없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내게 남은 것도 없고 또 시도해 본 것들은 참 많은데 떳떳하게 잘한다 외칠 수 있는 것들조차 없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존재로서 이승을 살아간다는 건 아직 낙원을 찾지 못한 탓이겠지.
고작 인생의 2할 정도밖에 살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방황하며 유랑하는 내게 낙원을 찾아 나서기 위해 떠나고자 했다. 아직 제대로 된 세상을 바라보지도 못할 나이, 혹은 이제 막 꽃을 피울 그런 나이라고 지칭하겠지만 나는 고작 그 나이에 너무 빨리 깨달아버린 세상의 이치들이 너무나도 가혹하다고 느꼈기에. 순수한 시절의 아이들이 쉽게 떠들어대는 정의로운 세상이라는 건 존재하지도 않음을 너무 잘 알기에.
낙원을 찾아가는 그 원정 앞에 섰지만, 여전히 나는 혼자였다. 동반자가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킬 때마다 나이를 먹는 만큼 보낸 세월이 너무 헛된 시간이었음을 일깨워 주는 것만 같아 가끔 살아있는 내 자신이 그저 원망스럽기만 했다. 살아있는 이유조차 깨닫지 못한 내게 과연 삶이 가치 있는 것일까. 낙원을 찾기 위한 까닭엔 내가 살아야만 하는 이유 또한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낙원에 도달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경험하고 수많은 것들을 바라보기로 했다. 함께 어울려 생활하면서 그들이 행하고자 하는 것들도, 사회가 인식하는 부조리한 시선들도, 냉대받는 소수의 집단들도 알게 되었다. 그 속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은 내가 바라보는 시야를 더 넓힐 수 있게 해 주었고 내가 바라던 세상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조금은 낙원에 더 가까워졌을까 싶어 했던 행동들은 방황이라는 결과를 도출했다.
방황이라는 장황한 단어에 비해 내 일상은 늘 같은 생활이었다. 그저 그런 날들 중 하루에 불과했을 뿐이고, 그저 지독하게 서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을 뿐이다. 많은 외부적인 요인들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그 시간 속에서 불행을 쫓고 있는 이들의 일원이 되어 버린 것만 같았다. 고통뿐인 세월이었다.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을 찾아가려 애를 쓰다가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내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언제까지나 행복할 수도 없을뿐더러 정해진 불행들을 잘 헤쳐나가기는 무슨 대면하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내가 과연 행복을 추구할 자격이 있을까. 이미 추락해버린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동족을 혐오하는 내가 행복을 바라는 것이 옳기는 한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애초에 행복이라는 추상적인 단어에 명확한 것들을 부여할 수 있을까.
그렇게 흘러가는 세월을 붙잡지 못한 채 방황이라는 이름 아래 떠돌아다녔다. 유랑하는 나그네의 삶처럼 지내다 보니 잠시 쉬어가고 싶어졌다. 수많은 것들을 접해가면서 정의를 위해 싸우고 불의에 저항하기도 하면서 내가 추구하고자 했던 이상들을 내려놓고 싶어졌다. 어린 시절 외치던 정의로운 세상이라는 건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열의를 갖기 위해 노력할 때도 있었지만, 이미 지쳐버린 탓에 쉽지 않았다. 어렵게 돌아가지 않고 현실과 타협하는 삶이 내게 더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많은 상황들을 이겨내고 유연하게 대처할 요령이 생겼지만 지금에 와서야 세상의 모든 것들이 부질없게만 보인다. 쉬어가고 싶어졌다.
낙원을 그리 애타게 찾지 않아도 그저 표류하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미 현실의 너무 많은 부분들을 깨달아버렸기에 조금은 안식을 취해도 괜찮지 않을까. 지금의 난 부서진 배의 판자 위에 앉아 덧없이 흘러가는 바다를 바라만 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지금 과연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