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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적휘적 Jan 06. 2022

우연의 황홀함이 있는 오늘을 살고 있나요?


지난여름은 무척 더워서 지하철에 타서 에어컨 바로 밑자리를 점해도 땀이 식지를 않았다. 사람들은 오밀조밀 붙어 있고 날은 습하고 더우니 퇴근길은 불쾌함 그 자체였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그렇게도 덥던 어느 날, 지하철 디제이를 만났다. 그는 방송으로 "날씨가 너무 뜨거운 탓에 승객 여러분께서 많이 더우실 거라 생각됩니다. 현재 지하철 내 에어컨과 선풍기를 모두 가동 중이니 더우시더라도 조금만 양해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편히 퇴근하셔서 집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라고 전했다.


핵심 내용은 현재 지하철 내 에어컨과 선풍기를 전부 가동 중이니 더워도 조금만 양해 부탁드린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때론 핵심이 아닌 부수적인 무언가가 우리 마음을 움직일 때가 있다. 이 방송에서는 바로 "오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편히 퇴근하셔서 집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였다. 적어도 내게는 말이다.


열차는 지축 역을 향하고 있었다. 더운 여름 지하철을  채로 지상으로 올라와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지친 몸을 겨우 가누고 있던 , 생각지도 못하게 마음이 스르륵 녹아내렸다(더워서 그런  아니다 결코). 습함과 끈적함, 흘러내리는 땀에 치솟았던 불쾌지수가 수직 하강하고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것은  여름날의 '황홀한 우연'이자 환기였다.




그래. 정확하게 산책이다. 팍팍함 속에서 말랑함을 찾아가는 여정은 목적지 없이 그저 가볍게 길을 나서는 것에서 시작된다. 치열하게, 아등바등 살아가지만, 그 안에서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힘, 이는 어쩌면 용기가 아닐까. 목표한 것만을 바라보며 펼치는 달리기에서 벗어나, 길도 잃어보고 심호흡도 하며 쉬어갈 수 있는, 주변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용기 말이다. 그렇게 숨을 고를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자만이 황홀한 우연을 만끽하고 삶의 환기를 누릴 수 있겠지. 어쩌면 그것은 특권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이제 슬쩍 돌아봤으면 좋겠다. 그 용기를 가지고 있는지. 혹 아직 없으시다면 어서 챙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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