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살던 동네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몇 안 되는 주택과 작은 텃밭 그리고 들판이 주를 이룬다. 아파트가 있긴 했지만 시골 시가지답게 많지도 크지도 않았다. 스마트폰이 없던 그 시절에는 낮은 건물 사이에서, 들판에서 놀고 성장했다. 도시에 나와 사는 지금, 인파가 몰리고 가는 길이 높은 오피스텔 상가 건물로 이루어져 있는 호수공원보다 낮은 주택가와 산등성이를 산책하는 이유는 그곳이 내가 살던 곳과 더 닮았기 때문이리라.
지금 본가에 내려가 보면 들판이었던 곳에는 온통 원룸 건물이 들어서 있다. 정말 원룸뿐이다. 당장 우리 집 앞에 있던 풀밭도 원룸이 차지하고 있다. 동네를 걸어도 온통 같은 풍경이다. 집에서 터미널까지 가는 길에도, 공원으로 이어지는 길에도 회색빛 건물뿐이다. 공간적으로, 시각적으로 평안하기 그지없던 시골도 이처럼 삭막해질 수 있구나 싶다.
수도권에 살면서 계절 냄새에 둔감해진 것도 이러한 부분에 기인한 것일 테다. 다소 삭막해졌다 하더라도 여전히 자연과 교감이 되는 본가에서는 계절의 오고감이 극명하다. 특히 냄새는 그 계절의 감각이나 오래된 기억을 깨우는 메신저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곳 도시에서는 냄새와 같은 감각은 미미해지고 기온의 변화에 의존해, 가로수의 변화에 의존해 계절을 알 뿐이다. 조금은 서글픈 일이다.
화목한 새상을 위해 건축을 한단다. 문명의 공간은 인간이 좀 더 인간답게 살아가는 곳이다. 삶이 이루어지는 만큼 수많은 경험이 쌓이는 곳일 테고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탄생하는 곳일 테다.
급변하는 세상이라는 말을 벌써 수년째 쓰고 있다. 변화 자체가 지긋지긋해질 즈음이 아닐까 싶다. 그 말인즉, 본질로 돌아가야 할 때가 가까워 오고 있음을 의미하지 않을까. 집약적인 기술의 발전은 삶의 수준도, 질도 높였지만(과연 그렇긴 할까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역사 속에서 인류가 영위해왔던 자연의 것들을 너무 많이 잃게 했다.
이렇게 백 날 떠들어봐야 기술은 더 발전할 것이고 인류 문명은 더 진보할 것이다. 그러니, 그 속에서라도 인간의 인간다움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을 지켜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은 연령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도 할 테지만, 인간이기에 갖는 공통적인 무언가로 이루어지는 것도 있을 테니. 살아가는 곳은 나와 우리를 이루는 곳이고 나아가 인간의 인간됨을 이야기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공간이란 손익과 너비, 크기, 가치 같은 유와 같이 숫자놀음만으로 치부하기엔 아까운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마음을 넉넉히 하고 공간으로써의 화목을 도모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