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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적휘적 Apr 12. 2023

나는 내 글을 쓰겠습니다.

글다운 글을 써본 지가 한참인 것 같다. 얼레벌레 써야 해서 쓴 것이 아닌, 무디더라도 내 주관이 또렷히 담긴 글이 손끝에서 나온 건 아마 해가 바뀌기 전이었지 싶다. 워낙 사건 사고 많을 때라 혼자서 이런 저런 글을 써보기도 하고 그중 한두 개쯤은 업로드하기도 했는데, 근 얼마간기계적으로 글을 뽑아낸 느낌이다.


편집자 겸 기자 일을 그만 둔 게 벌써 지난 여름이다. 대학원에 들어온 지는 한 달 하고 반이 지났다. 신학대학원이기에 글 쓸 일은 많다. 다만 시간에 기고 레포트 양에 치이다 보니 내가 원하는 퀄리티의 글은 절대 나오지 않는다. 주관을 담기도 어렵다. 잠에 취해 쓰다 보면 내가 뭐라 썼는지도 모를 때가 왕왕 있다.


언제였지, 스터디 준비하면서 초대교회사 주교재 정독 중에 문득 역사인문서 읽던 때가 떠올랐다. 가만히 앉아서 글자 하나 하나 꾹꾹 눌러가며 읽었던 게 언제였더라, 슬쩍 슬퍼지더라. 이제 일반 서적은 그렇게 읽을 일은 없겠구나, 그럴 시간도 없겠구나 하는 게 몸으로 다가오는 바람에. 잠시간의 사색에 잠겨 있다가 다른 책들이 읽고 싶어 알라딘 ebook 서재를 뒤적이다가 이번에는 글이 쓰고 싶어져 아주 오랜만에 브런치까지 들어왔다. 새삼스럽다. 내 본업은 글 쓰는 거였는데 이제 이리도 찾아와야 하는 거구나 싶어서.


전에 쓴 글을 읽어보다가 또 다시 이어지는 생각은, 난 내 글을 써야겠다 싶은 거다. 레포트 같은 유의 글 말고, 의무적으로가 아닌,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지금 이 글을 끄적이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일 테다. 쓸데없이 결연하다. 천성이 진지하다. 그렇다 보니 글도 드라이하다. 재미없다. 그래도 어쨌든, 쓴다. 그것이 숨통을 터 주고 사고 순환의 길을 열어주는 인 이상, 쓴다.


소설가가 되려던 꿈은 어디로 갔나 이 역시 슬프다. 대학생 때는 졸업만 하면 곧장 등단도 하고 신인 작가로 별처럼 떠오를 줄 알았다. 이 모든 게 허상이었다는 것을 알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놓지는 않았다. 완성은 못해도 시작은 계속했다. 그렇게 쓰다 만 단편이 서너 편쯤 될까. 그저 써 내려가는 일이 이토록 어려워졌다는 건 더 이상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는 뜻일 테고 이제는 진정 철을 들어야 할 때라는 의미일 터인데, 이런 유의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난 아무래도 철들기엔 글렀다는 뜻일까.


신학을 하는 일은 글을 쓰는 일과 연관이 깊다. 끊임없이 읽고 연구하고 쓰는 작업이다. 지난하면서도 새로워 감탄사를 남발하는 일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경우 그 새로움은 우리의 감탄사에 다 담기지 못한다. 이 글쓰기 또한 작게 다룰 마음은 없지만, 어쨌든 사회 저변의 이야기들을 자발적으로 관찰하고 쓰는 일을 지속하고 싶은 게 내 간절함이다. 서른에 접어들어서도 꿈이라는 구닥다리 단어를 잡고 있자면 너무 낭만일까. 암튼 그렇다.

쓰는 일은 내 본질로 자리 잡은 듯하다. 나는 쓴다. 그리고 호흡한다. 이 작업의 연장 끝에 하늘 아버지의 통치와 의가 명명백백 드러나길 기도하는 것까지도, 구태여 결연해 조금(사실 많이) 민망하다. 그냥 대학원 캠퍼스에 갇혀 굴러가는 시간 시간이 갑갑해서 나오는 대로 떠들어봤다. 읽는 분들은 어엿비 여겨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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