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r에서 Pro로 프로도 아닌데,
드디어 MacBook을 샀습니다. 이번에 강림한 지름신은 절대 허영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MacBook Air를 놔두고 MacBook Pro를 구입한 건 내게 있어 꽤 과분한 처사임은 분명합니다. 그래픽 관련 작업과 3D 모델링, 동영상 편집과 소프트웨어 개발 등등. 무거운 작업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해봐야 고작 쇼츠 정도의 영상 편집과 글을 쓰는 게 다입니다. 어쨌든 은빛 알루미늄 합판에 한 입 배어 문 사과 로고는 커피 향을 머금은 크레마처럼 카페인 중독을 연상케 합니다. (넌 사과에 중독되었습니다)
백업을 불러와 세팅을 끝내기에 시간이 너무 늦어 기본 설정만 마치고 자리에 누웠으나, 잠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어서 새로운 맥북을 내 사용환경에 맞게 설정하고 당장에 써보고 싶은 마음이 벌렁벌렁한 까닭입니다. 그렇게 벌렁벌렁하다 심장이 갈비뼈에 쿵 부딪혀 고통이 밀려와도 몸부림치지 않으리. 겸허한 마음으로 자신을 달래고 토닥토닥 다독였습니다.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MacBook을 들고 카페로 나갔습니다. 백업 콘텐츠를 불러와 설정을 채 마치기 전에 메모앱을 열어 생각나는 대로 키보드를 두드렸습니다. 키보드 키감을 손끝으로 느끼며 두드리다 보면 짧은 일기가 완성되고. 일기는 산문이 되고, 썼다. 지웠다. 하면서 손가락은 마치 혀가 되었습니다. 혀는 허기가 되고 허기는 욕망이 되고 욕망은 외로움이 되었습니다. 나는 외롭게 글을 쓰다가 혹은 쓰려고 하다가 다시 또 새로운 기기가 나오면 사정없이 흔들릴 겁니다.
어떻게 서든 주머니에 MacBook 하나 살 돈을 쥐려고 때로는 일을, 때로는 일이 아닌 불로소득에 가까운 눈먼 자금을 끌어 오기 위해 가진 걸 팔고, 부족하면 내 것이 아닌, 다른 이의 것 탈취하여 내 것이 양 팔기 위해 어둠의 경로를 기웃거리겠지. (어둠은 두 가지다. 캄캄한 불법과 어스름한 편법)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어둠에 삼켜지지 않기 위해 꿈을 꾸었습니다. 꿈이 약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맥북은 고작 내 글 몇 편, 티도 나지 않을 만큼 넓고 거대했습니다. 다른 책을 쌓고 쌓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스스로 열심히 한다고 할 때마다 씁쓸하고 쓸쓸해지는 것 같아서, 혓바늘은 부풀어 오릅니다. 결국 부르튼 혓바닥에 살살 꿈을 바릅니다. 이 꿈은 도대체 무엇인가! 꾸준히 믿을 수 있을까! 의심도 외로움처럼 위태롭기 짝이 없습니다.
.
.
YouTube나 OTT를 보려고 비싼 맥북을 구매한 게 아닙니다. 뭐라도 하기 위해 괜찮은 거 하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거세게 불어 닥치다니보니, 지금 이 순간까지 떠 밀린 것 같습니다. 사실 MacBook Air도 그리 낮은 가격은 아니지요. 하지만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MacBook 또한 아쉬움이 있어서 그 아쉬움에서 벗어나 보려고 조금 무리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화면이 좀 더 컸으면 좋겠고, 인터넷 창을 무수히 열어도 성능이 저하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러니 메모리도 중요하고, 저장장치도 중요하고, 이런저런 옵션이 따라오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결국 선택이 사치스럽고 과분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갑습니다.
후회하지 않을 방법은 꿈을 꾸고, 꿈을 이루는 것일 겁니다. 그래도 마침내 이뤄낼 수 있을지 알 수 없고, 확신도 할 수 없지요. 그런 게 ‘꿈’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