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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준호 Jul 21. 2021

부조리 속 진실을 관철시키다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어른들을 위한 잔혹동화 같은.

<판의미로>는 혼란스러운 영화이다.

악마의 상징인 염소를 닮은 판, 끔찍한 괴물이 등장하는 오필리아의 임무, 판을 보지 못하는 비달 대위 등과 같은 미장센을 보여주며 지하왕국의 이야기를 진실이 아닌 것처럼 꾸미다가도, 맨드레이크를 실재적으로 그려내고 미래의 일들을 보여주는 책을 통해 동화 속 세계를 진실인 양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가 끝이 나면 사람들은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환상인지 그 진위를 구별하는 것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러나 미로의 출구를 찾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것처럼 아무리 파고들어도 이 질문엔 해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럴수록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이 영화를 이해하려면 분석의 초점을 옮겨야 한다.



1944년 스페인, 현실의 정의가 무너졌고 파시스트들의 반인륜적인 행위가 넘쳐흘렀다. 또 다른 세계인 동화의 환상 속에는 목숨을 위협하는 끔찍한 괴물과 호러틱한 캐릭터들이 존재한다. 현실의 잔혹한 내러티브가 동화 속 미장센으로 연결된 것만 같다. 바로 이 세계의 연결성이 환상과 현실의 교차를 만들어내고, 관객에게 하염없이 혼란만을 전달한다. 그렇기에 두 세계의 차이를 구분할 수 없다. 감독은 왜 혼란을 전달했는가? 인간의 잔인함과 사라진 인륜을 고발하기 위해서이다. 그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오필리아와 메르세데스의 시선에 있다. 이제 영화가 시작됐다.


오필리아는 현실 속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불의에 몸담았고, 유일한 피붙이인 어머니는 자신을 돌볼 수 없는 상태이다. 어른들은 그녀의 동심을 지켜주지 못할망정 억압과 고통만을 퍼붓는다.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보아도 현실의 참혹함은 이로 말할 수가 없다. 따라서 이 시선은 일종의 고발적인 성격을 가지게 된다. 무엇이 정의이고 진실인지 모르는 파시스트들을 무력하고 순수한 오필리아와 대비시켜 현실의 부조리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스러져가는 아이의 일생보다 두 세계의 혼돈성에만 집중하는 어른들은 마치 파시스트들과 다를 바가 없게 느껴진다. 우리무엇이 진실이고 정의인지 알아야 한다. 이 영화는 미로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오필리아를 통해 그 의식을 계몽시키려고 끊임없이 소리치고 있다.


어디를 따라가도 출구가 나오는 미궁과 달리 미로는 출구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 이 자발적인 의식이 없다면 미로에서 영영 나오지 못한다. 오필리아는 미로의 끝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고군분투한다. 본질과 미메시스를 오가며 자기희생을 통해 정의를 세우고, 불의를 이긴다. 우리도 미로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감독이 우릴 혼란 속으로 내몬 이유가 이것이다. 진실한 자아(id)와 사회 속에 살아가는 나(ego), 그 속에서 무엇이 정의이고 진실인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메시지(super ego). <액트오브킬링>의 담담하고도 소름 끼치는 고발이 떠오른다.


남아있는 시선, 자기희생을 통해 소중한 흔적들을 남긴 채 지하 왕국의 공주가 된 오필리아와 맞닿아있는 메르세데스의 역할은 무엇일까? 현실 속에 존재하는 부조리를 고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해결해야 한다는 꾸짖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미메시스로 이동하지 않았지만, 본질에 남아 오필리아처럼 끊임없이 대항하며 갈등을 해결했다. 두 번째 임무에 실패해 이성적이지만 때론 어리석은 인간의  입체성을 보여준 오필리아가 죽음을 선사받았다는 걸 보면, 오히려 메르세데스가 더 완벽한 인간상을 보여준다고 느껴진다. 본질의 주인공인 그녀의 행보는 영화 속 판타지적 해소를 이뤄준 오필리아를 넘어 실질적으로 파시스트들을 소탕한 반군처럼 현실 사회의 실적인 변화를 외치고 있다. 우리는 이 두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자기 각성과 문제의 고발을 배우고 나아가 고질적인 부조리를 개선해야 한다. 어려운 길이 있을지라도 끊임없이 걸어야 한다. 그녀의 자장가로 위로를 받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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