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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 Dec 29. 2020

크리스마스의 맛


 세리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하나 있었어요. 바로 다른 사람의 감정을 맛볼 수 있는 능력이에요. 세리는 다른 사람을 쳐다보고 입을 오물오물하다보면 그 사람이 느끼는 감정의 맛을 느낄 수 있었어요. 어른들이 사랑은 달콤하다고들 하고, 패배의 쓴맛을 맛봤다고들 하잖아요. 그 말은 사실 세리처럼 감정을 맛볼 수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냈는지도 몰라요.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감정에서는 달콤한 초콜릿같은 맛이 나고, 경기에서 진 사람들의 감정에서는 한약처럼 쓴맛이 난다고 해요.     


 세리는 어려서 엄마의 무릎을 베고 누워서 엄마를 가만히 쳐다보곤 했어요. 입안이 달콤해지는 그 느낌이 정말 좋았거든요. 사실 세리는 입안에 맴도는 맛이 감정의 맛인지 몰랐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주변에 있는 누구를 쳐다봐도 단맛과 함께 입안이 아플 정도로 싸르르한 맛을 느꼈을 때. 그때 세리는 입에서 맴도는 맛이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때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답니다.      


 세리의 보물 1호는 감정 미식 노트에요. 세리는 노트에 그 사람의 모습과 그 사람에게서 느껴졌던 맛을 적어두고, 어떤 감정에서 어떤 맛이 느껴지는지 열심히 적었어요. 세리는 똑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이라도 조금은 다른 맛의 감정을 느낀다는 것도 알 수 있었고, 모든 감정의 맛은 조금씩 뒤섞여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답니다.

     

 세리는 친구들과 놀 때 친구들의 감정을 몰래 맛봤어요. 어떤 친구는 새콤하고 달콤한, 초록색의 막대사탕에서 날 법한 맛의 감정을 느끼기도 했고, 어떤 친구는 겉으로는 웃고 있었는데 매콤한 맛의 감정을 느끼기도 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그런 친구는 놀이에서 지자 다른 친구를 퍽 하고 때리고 말았죠.      


 친구들의 감정을 몰래 맛보는 일은 꽤나 재미있었어요. 그중에서도 세리가 가장 즐거워했던 날은 크리스마스였어요. 크리스마스가 되면 친구들에게서 달콤한 초콜릿에서 날 법한 설렘의 맛과 아삭한 사과에서 날 법한 기대의 맛을 모두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답니다. 어느덧 크리스마스 전날이 다가왔고, 세리는 단짝 유현이와 함께 과자로 집을 만들면서 놀기로 했어요.     


 그런데 크리스마스 전날이 되었는데도, 유현이가 조금 이상했어요. 유현이에게서 달콤한 맛이 아니라 아주 짜고 쓴 맛이 났어요. 유현이의 표정은 이전과 같았지만, 세리는 유현이가 무언가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그리고 유현이에게서 나는 맛이 슬픔과 걱정의 감정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죠.      


 “유현아, 혹시 슬프고 걱정되는 일이 있니?”

 “사실은 우리 부모님이 사이가 좋지 않으셔. 맨날 싸우시고 어제는 나를 서로 데려가지 않겠다고 싸우셨어. 이제 누구랑 같이 자고, 크리스마스 소원은 누구한테 말해야 하지?”

 세리는 유현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유현이가 슬퍼하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유현이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유현아, 무슨 그런 걱정을 하니? 만약 부모님이 아무도 너를 안 데려가게 되면, 앞으로 우리 집에 와서 지내면 어때? 우리집에서 네가 좋아하는 과자집도 매일 만들고, 산타 할아버지한테 빈 소원은 우리 엄마 아빠한테 말하면 되겠다.”

 “아니야.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야. 세리야 내 마음을 잘 모르는구나.”     


 세리는 유현이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유현이에게서 나는 슬픔과 걱정의 맛을 모두 알고 있었는데, 유현이의 마음을 모른다니요. 유현이는 과자집도 만들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고, 유현이의 뒷모습에서는 여전히 슬픔과 걱정의 맛이 났어요.      


 세리는 그런 유현이와 화해하고 싶었고, 그래서 산타할아버지에게 소원 대신 질문을 하기로 했어요.

 ‘산타 할아버지, 제가 정말 유현이의 마음을 모르고 있었을까요? 제가 유현이의 마음을 잘못 맛본 걸까요?’

 그러자 세리의 꿈에 산타 할아버지가 나타나서 말해주었답니다.

 “세리야, 유현이가 느끼는 순간의 감정을 맛볼 수 있다고 해서, 그 감정을 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단다. 다 안다고 자신하지 말고, 유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유현이의 마음을 함께 느끼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어떻겠니?”     


 크리스마스가 되자 세리는 유현이에게 달려가서 말했어요.

 “미안해 유현아. 내가 너의 감정을 다 안다고 생각하고, 어제 너를 이해해주지 못했어. 너의 이야기를 더 들려줄 수 있겠니?”

 유현이는 웃으면서 세리를 꼭 안아주었고, 자신의 슬픔과 걱정을 이야기해주었어요. 세리는 가만히 유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입을 오물거리지 않아도 유현이의 마음을 잘 느낄 수 있었어요.    

 

 그러고 나서, 세리는 더이상 감정을 맛보는 능력을 쓰지 않기로 했어요. 세리의 능력은 아주 특별한 능력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완벽한 능력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세리는 마지막으로 유현이를 바라봤어요. 유현이의 감정에서 조금은 크리스마스의 맛이 나기 시작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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