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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 Apr 19. 2021

부탁드립니다.

 제 친구의 미간에 무언가 나기 시작했던 것은 1년 전쯤이었습니다. 자취방 화장실 거울에서 처음 그걸 봤을 때는 그냥 여드름인 줄 알았대요. 짜고 나면 흉만 지고 2~3개월 쯤 지나면 흉조차 사라지는 그런 여드름 말이에요. 얘가 그런 애에요. 누가 봐도 심각한 일인데 ‘음,’ 하고 넘기는 그런 애요. 그런 단순한 여드름이 아니라는 건 2~3개월이 다 지나고서야 깨달았다더라고요. 미간에 난 무언가는 그때쯤 동그란 형태를 갖추어가면서 점점 커지고 있었어요. 피부를 조금 비집고 나온 그 형태가 티눈이랑 비슷했죠. 재작년에 제가 피부에 농양이 생겼을 때 갔던 병원이 있어요. 걔 보고 얼른 그 병원에 가보라고 했어요. 그런데 걔 말이, 미간에서 나고 있는 게 글쎄 지 얼굴 같다더라고요. 

 참 이상한 일이죠. 장난치지 말라고 했는데, 장난치는 표정은 아니었어요. 울었냐고요? 천만에요. 걔는 잘 우는 애가 아니었어요. 장난기가 그득한 표정으로, 피식 웃으면서, ‘미간에서 얼굴이 난댄다? 야, 너 여드름은 나 봤어도, 얼굴이 새로 나 본 적은 없지?’ 하더라고요. 저는 심각해서 웃지도 못하고 물어봤죠. 그래서 그거 어떻게 없앤대? 모른다더군요. 조금 이상했어요. 별 걱정을 안 하는 듯했거든요. 예전에 어느 책에서 봤는데, 사람이 큰 충격을 받으면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게 된대요. 얘도 그런가 싶어서 괜찮냐고 물어봤는데, ‘음, 그냥. 이게 뭔 일인가 싶은데, 그냥 그래.’ 아니 미간에서 얼굴이 난다는데 그냥 그렇다니요? 저는 얼른 그 애를 닦달했어요. 큰 병원에 가보라고요. 그렇게 그 애는 서울에 있는 큰 대학병원에 갔어요. 그곳에서 피부과의 짱격이라는 의사를 만났다더군요. 의사가 미간에서 얼굴이 나는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라면서, 치료를 해주는 대신 학계에 치료 사례를 공개해도 괜찮겠냐고 물어봤대요. 그 애는 저한테 와서 어쩌면 좋을지 물었어요. 그래도 치료는 해준다고 하니, 방법이 없겠더라고요. 대신 앞으로 저도 병원에 같이 가기로 했어요. 

 의사가 가리킨 스크린에는 그 애의 미간이 확대되어 있었어요. 미간에서 얼굴이 은은하게 웃고 있더라고요. 너무나 선명하게요. 그 표정이 왜인지 모르게 낯설었어요. 거의 매일같이 봐왔던 그 애의 얼굴이 분명했지만, 그 점은 아주 달랐죠. 병원에서 나오고, 그 애는 ‘미간에 있는 얼굴이 더 괜찮았지?’ 라더군요. 그 말이 왠지 열 받아서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어요. 그때까진 정말 아무 문제 없을 줄 알았죠. 치료받고, 그렇게 끝인 줄 알았으니까요. 그런데 진료를 받고 며칠 뒤에 네이버 메인에 걔 얼굴이 올라왔어요. 모자이크는 되어 있었지만, 그걸 모자이크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를 정도로 너무 그 애였어요. 이미 여러 언론사에서 그 애의 미간을 대서특필하고 있었어요. 분명 병원에서 걔가 누군지 공개하지는 않았을 텐데, 생각해보니 병원에 있던 간호사 하나가 우리를 계속 흘긋댔던 것이 떠올랐어요.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걔 미간에 난 얼굴이 신비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까지 기사에 써 있더군요. 찾아보니 해외 기사도 났더라고요. 구글에 ‘face’만 쳐도 걔 사진이랑 기사가 쭉 뜰 정도로요. “가족 없는 20대 아시안 여성의 미간에서 태어난 신비로운 얼굴” 따위의 제목을 냈더라고요. 우리나라 기사도 별반 다를 건 없었지만, 어쩐지 좀 더 거슬렸어요. 신비로운 게 알게 뭐람. 걔가 무슨 석굴암은 아니잖아요. 

 걔한테 바로 전화를 걸었어요. 전화를 안 받더라고요. 놀라서 자취방에 찾아가 문을 두드렸어요. 뭐하고 있었는 줄 아세요? 자고 있었어요. 열도 받는데, 걱정이 확 풀리면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울면서 너 기사 떴다고 그랬어요. 뭔 기사인지 들여다볼 법도 한데, 그냥 저를 꽉 껴안았어요. 저는 엉엉 울고 있었는데, 걔도 울었는지 모르겠네요. 그러고 밤에 같이 라면을 끓여 먹었어요. 끓기 전에 수프 넣을지, 나중에 넣을지 실랑이도 했어요. (걔는 ‘끓기 전’ 파에요.) 라면을 먹으면서 뉴스를 트니까 아니나 다를까 걔가 나오더라고요. 걔는 심각한 표정으로 뉴스를 계속 보더니, 저를 쳐다보면서 한 마디 하더군요. ‘으, 열받아! 가족이 없긴, 여기 있는데!’ 저는 그 말을 듣고 웃었어요. 맞지, 내가 네 가족이지. 우리가 가족이 아니면 뭐겠어. 

 병원에서는 뭔가 여의치가 않았나 봐요. 걔 미간에서 나고 있는 얼굴은 그냥 뾰루지처럼 똑 뗄 수 있는 게 아니라던가 뭐라나. 그때쯤부터 걔도 조금씩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미간에서 나는 얼굴이 점점 커지고 있었거든요. 다행히 통증은 없었지만 그래도요. 그래서 이번엔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갔어요. 그 일로 조금 싸웠어요. 제가 가지 말라고 했거든요. 그랬더니 걔가 ‘얼굴에 얼굴 난 건 니가 아니라 나야.’라는 거에요. 맞는 말인지라…. 할 말이 없어서 벙쪄 있는 동안 걔는 휙 가 버렸어요. 화해는 금방 했어요. 씩씩대면서 저희 집으로 찾아왔거든요. 그 무당이 대뜸 숨기고 있는 것이 뭔지 말하라 그랬대요. 돈은 돈대로 받고 그딴 말이나 지껄였다니, 덩달아 화가 나더군요. 걔 가족 없는 20대 아시안 여성인 것까지도 기자들한테 까발려졌어요. 그러니까 걔한텐 더 숨길 것이 없어요. 뭐, 걔가 가족 없는 20대 아시안 여성인 걸 숨기고 싶어하지도 않았고 숨길 필요도 없기는 하죠. 그런데 그걸 세상 사람들한테 다 알려주고 싶지는 않았을 것 아니겠어요. 그런 것까지 이미 다 알려진 마당에 뭘 더 숨기겠냐고요. 

 무당의 말은 또 언론에서 대서특필됐어요. 전에는 맘대로 걔를 신기해하거나 안타까워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걔가 숨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고 싶어하더군요. 대학 다닐 때는 걔랑 얘기도 안 하던 애가 갑자기 걔가 평소에 미간을 자주 찌푸리고 다녔다고 하질 않나…. (물론 저나 걔나 그 새끼랑 마주칠 때마다 찌푸리긴 했어요. 아무튼.)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은 걔가 학창시절에 어두운 아이였다고 하질 않나…. (어쩐지 걔를 유달리 미워한다 했는데, 그래서였나봐요.) 심지어는 미간에 얼굴이 나는 게 전염되는 병인데, 그걸 걔가 숨기고 있다는 자칭 간호사도 나왔어요. (걔랑 몇 달을 붙어 있던 제 미간이요? 완전 깨끗 그 자체에요.) 십 년을 넘게 알고 지내는 동안 그 애는 한 번도 누구한테 미움받을 짓 한 적 없어요. 저한테 매일 전화해주고, 뭔 말을 해도 헤실헤실 웃는 게 다였던 애였어요. 그런 그 애가 미움을 산 건, 미워할 사람이 필요했던 그 사람들의 탓이겠죠. 근데 그런 걸 사람들은 알아주질 않더라고요. 대학에 다니면서도 그 애는 꾸준히 웹소설을 썼는데, 그게 걔 꿈이었어요. 처음 정식 연재가 결정됐을 때는 둘이 파티도 열었어요. 제가 작가님, 하고 부르니까 빨갛게 달아올라 그만하라며 웃던 걔 얼굴이 떠오르네요. 어제 아침엔 연재처에서 전화가 왔대요. 연재 중단해야 할 것 같다고요. 걔 펑펑 울었어요. ‘내 미간, 걍 소재로 쓸까?’ 하면서 농담도 하던 걔가, 제 앞에서 펑펑. 저도 같이 울었어요. 할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더라고요. 

 이 글은 그렇게 같이 울다가 쓴 글이에요. 그래서 생각나는 대로 썼더니 조금 별 소릴 다했다 싶기도 하네요. 그 같잖은 무당 얘기가 언론에 났을 때부터 글 올리고 싶었는데요, 걔가 올리지 말라 그래서 지금까지 참았어요. 근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남아 있고 싶지는 않아서요. 그 애는 병원에서 받은 약을 먹은 뒤로 저보다 6시간 정도를 더 자요. 이따가 깨면 병원에 다시 가보려고요. 응원도, 동정도 말아주세요. 특히 신상 캐지 말아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그 애는 미간에 난 얼굴 신경 쓰기도 바쁘니까, 그냥 신경 쓰이는 일을 하지 말아주셨으면 해요. 누구든지, 전부 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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