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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 Apr 19. 2021

별, 빛

 쥬빌과 찬드라는 별지기입니다. 별지기들은 여러 일을 합니다. 어디서 별들이 태어나고 사라지는지를 지켜보고, 별들이 어떻게 자라나는지 기록하기도 합니다. 엉켜 있는 별들을 풀어주고, 가끔은 말썽쟁이 별을 진정시키기도 합니다. 별지기들이 별을 언제부터 관리하기 시작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별지기들은 별과 함께 태어나 별과 함께 사라집니다. 쥬빌과 찬드라가 하는 일은 별에 이름표를 붙이는 일입니다. 이름표에 써 있는 이름에는 별들이 앞으로 찬찬히 사라지게 될 과정이 담겨 있습니다. 그 이름을 알아차리는 것이 쥬빌과 찬드라의 일입니다. 

 둘은 예전에도, 지금도 함께 별을 보러 갑니다. 둘은 미우나 좋으나, 파트너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둘은 생긴 지 얼마 안 된 별에 아주 가까이 가서 별을 지긋이 바라봅니다. 그러고는 별을 한가운데 두고 서로 마주 설 수 있도록 이동합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둘은 연결되고, 함께 눈을 감습니다. 자 이제, 둘은 별을 느낍니다. 둘 사이에 있는 별이 뿜어내는 빛, 끌어당기는 힘, 뭐 그런 것들을 느낍니다. 쥬빌과 찬드라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다시 내쉽니다. 그 둘이 눈을 떴다면 그건 별의 이름을 알아차렸다는 뜻입니다. 그 별이 무엇인지 완전히 느끼고, 별에 이름표를 붙일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번 별의 이름표에는 ‘           ’가 붙었습니다. 이 별은 조금 무게가 부족해서 점점 커지더라도 결국에는 작아질 것입니다. 그러다 점점 그 빛을 잃어가게 될 것입니다.

 찬드라는 이런 별을 만날 때면 엉엉 울었습니다. 어느 별을 만나든지 찬드라는 항상 울었지만, 이런 별을 만날 때는 더 크게 울었습니다. 쥬빌은 찬드라가 우는 것이 성가셨습니다. 이름표를 붙이고 나서도 둘은 잠시 연결되어 있었는데, 그럴 때 찬드라가 울음을 터뜨리면 쥬빌의 안에서는 찬드라의 울음소리가 가득 차 엉엉 울려댔기 때문입니다. 쥬빌은 찬드라가 울음을 그치게 하기 위해 항상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다음 별은 무지막지하게 커지는 별일 거야.” 그럼 찬드라는 쥬빌을 꽉 껴안으며 이렇게 대답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쥬빌. 그렇지만 그런 별도 언젠간 펑 하고 터져 버리고 말걸.” ‘그럼 어쩌라는 거야.’ 쥬빌은 이렇게 생각만 하고 한숨을 푹 내쉽니다. 예전에도 지금도 함께 별을 보러 가면, 그 끝은 항상 이랬습니다. 

 쥬빌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별을 알아차리는 일은 어쩔 수 없이 그런 일이라고. 별의 끝이 영영 밝을 수는 없고, 쥬빌이나 찬드라가 어쩔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다만 찬드라는 그런 별의 끝도, 저런 별의 끝도 너무너무 슬펐습니다. 점점 빛을 잃어 딱딱해지거나 펑 하고 터져버리는 끝이요. 쥬빌이 그걸 슬프다고 생각하는 찬드라를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데도 매번 엉엉 울어버리는 찬드라가 성가셨을 뿐입니다. 성가신 찬드라를 쥬빌은 점점 멀리 했습니다. 찬드라가 껴안으려 할 때면 쥬빌은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엉엉 우는 찬드라를 뒤로 하고 가까운 곳에 새로운 별이 없는지 찾는 데에 몰두했습니다. 이럴 거면 찬드라 없이 혼자 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쥬빌의 일이 바뀌었습니다. 쥬빌이 처음 별지기가 되어 찬드라를 만났을 때처럼, 이유도 모른 채 쥬빌은 새로운 일을 시작했습니다. 쥬빌은 이제 파트너 없이 별이 사라지는 과정을 기록합니다. 넓은 우주에서 별들은 수없이 태어나는 만큼 수없이 사라져서, 쥬빌은 바쁘게 움직여야 합니다. 쥬빌은 이제 혼자 별을 보러 갑니다. 사라지기 직전의 별은 단단한 돌이 되어 버리기도, 엄청나게 작아지기도,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려 하기도 합니다. 쥬빌은 별이 어떻게 사라지는지를 관찰해서 잘 기록합니다. 성가시게 하는 찬드라는 이제 없습니다. 

 성가시게 하는 찬드라도 이제 없는데, 쥬빌은 성가신 기분을 느끼곤 했습니다. 지금 쥬빌은 빛을 잃어 우주를 떠다니는 암초 같은 신세가 되어버린 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성가신 기분이 다시 쥬빌을 감쌉니다. 쥬빌은 성가신 기분을 잠재우기 위해 잠시 눈을 감습니다. 그리고 별의 끝을 기록하기 위해 이름표를 찾았습니다. ‘           ’. 쥬빌과 찬드라가 이름을 붙였던 별이었습니다. 쥬빌은 기록을 마치고 엉엉 울어버렸습니다. 별의 끝이 너무 슬퍼서, 찬드라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만 엉엉 울어버렸습니다.

 한편 찬드라는 울지 않아도 되는 일을 새로이 시작했습니다. 말썽쟁이 별들을 진정시키는 일을 맡아 별들을 찾으러 다녔습니다. 찬드라도 이제 혼자 별을 보러 갑니다. 찬드라는 말썽을 부리는 별들을 꼭 안아 주고, 토닥토닥 두드려줍니다. 그러면 별들은 조금 진정이 돼서 찬드라를 꼭 안고 엉엉 웁니다. 별들이 울음을 그치면 찬드라는 힘차게 인사하고 다음 별을 찾으러 갑니다. 별들이 사라지는 것이 슬퍼서 엉엉 우는 일은 이제 없습니다. 

 대신 찬드라는 쥬빌을 매일매일 그리워했습니다. 쥬빌이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울고 있지는 않을지 궁금했습니다. 이름표도 잘 붙이고 엉엉 우는 자신을 꼭 안아주던 쥬빌이, 이제는 어쩌면 말썽쟁이 별들을 잘 안아주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쥬빌을 생각하면 눈물이 왈칵 날 것 같았지만, 쥬빌이 우는 걸 싫어한다는 것쯤은 찬드라도 알고 있었습니다. 찬드라는 눈물을 꾸욱 참다가 문득 쥬빌과 이름을 붙였던 별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말썽쟁이 별을 찾으러 가는 길에 그 별에 인사를 하러 갔습니다. 

 그곳에서는 쥬빌이 엉엉 울고 있었습니다. 돌덩이가 되어버린 별 앞에서 엉엉 울고 있었습니다. 쥬빌이 그랬던 것처럼, 찬드라는 울고 있는 쥬빌을 꼭 안아주었습니다. 찬드라는 쥬빌을 껴안고 이야기했습니다. “다음 별은 나랑 같이 보러 가지 않을래?” 쥬빌은 찬드라에게 울면서 대답했습니다. “당연하지. 지금까지 어디 있었던 거야, 찬드라!” 찬드라는 말썽쟁이 별처럼 우는 쥬빌과 다시 만나게 된 것이 너무너무 좋아서, 그렇게 한참을 쥬빌을 안고 있었습니다. 

 쥬빌과 찬드라는 다시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둘은 이제 여러 가지 일을 함께 해냅니다. 별에 이름표를 붙이기도 하고, 사라져가는 별들에 인사를 하고 기록하는 일도 합니다. 말썽쟁이 별을 진정시키기도 하고, 별들이 새로 태어나는 과정을 지켜보기도 합니다. 지금은 생긴 지 얼마 안 된 별에 이름표를 붙이러 왔습니다. 둘은 별을 한가운데 두고 서로 마주 설 수 있도록 이동합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둘은 연결되고, 함께 눈을 감습니다. 자 이제, 둘은 별을 느낍니다. 눈을 뜬 둘은 별에 이름표를 붙이고 서로를 꽉 껴안습니다. 쥬빌도 찬드라도 이제 울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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