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는 시계와 달력이 걸린, 거실의 왼쪽 구석 벽에 바짝 기대어 서서 말한다. “거기 있지?” 그렇게 부르면 저편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조금은 기다렸어.” 미루는 하루를 마무리하기 전에 꼭 벽 저편의 친구와 대화했다. 미루는 저녁을 먹고든, 자기 전에든 벽 저편에 있는 친구와 함께 이야기를 했고, 저편에 있는 친구의 목소리가 조금은 작게 들렸기 때문에 벽에 바짝 기대어야만 들린다고 했다.
미루와 벽 저편의 친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미루는 벽 저편의 친구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재밌어했다. 벽 저편의 친구는 미루에게 자기가 읽었던 동화책의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하는데, 그 이야기는 대부분 내가 모르는 내용이었다. 한 번은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한다. 퍼엉 펑 소리를 내면서 불을 뿜는 무시무시한 괴물들이 있는데, 그 괴물 중에서 몇 마리는 얼음으로 뒤덮여 있어서 괴물들에게 내쫓겨서 멀리멀리 떨어져버렸다고. 자기가 그 괴물을 만났는데, 그 괴물들은 아마 자기밖에 못 봤을 것이라고.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미루는 언제나 들어주었고, 벽 저편의 친구도 미루의 이야기를 즐거워하면서 들었다고 한다. 나는 미루의 이야기를 반쯤은 믿었고, 반쯤은 믿지 않았다. 벽 뒤편에는 주방이 있고, 주방에는 미루의 벽 저편의 친구는 없으니까. 무엇보다 내가 벽 가까이에 붙었을 때에는 아무 이야기도 들을 수 없었다. 미루에게 물어보니 벽 저편의 친구가 수줍음이 많다고 했다.
얼마 전부터는 미루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저번부터 벽 저편의 친구가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한다고. 나는 미루에게 ‘주변의 어른들게 도움을 요청해보라고 이야기해’보라고 했고, 미루는 벽 저편의 친구에게 그 말을 옮겼다. 벽 저편의 친구는 주변에는 혼자뿐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조금씩 걱정되기 시작했다. 벽 저편의 친구가 사라졌다고 울 미루도 걱정이 되었고, 만약 그 저편의 친구가 실제로 위험에 처한 것이라면 무언가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래서 미루와 함께 벽 저편에 있는 친구 구출 작전을 세웠다. 어른들게 거실이 좁다고 투정을 부려서 벽을 허물어보면 어떻겠냐고 미루가 이야기했고, 나는 좋은 작전인 것 같았다. 아이 둘의 투정에 어른들은 벽을 허물어서 거실을 확장하는 공사를 하기로 했고, 공사 날짜가 일주일 남았을 때 미루는 벽 저편의 친구에게 자랑했다. 너와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벽이 허물어진 날 이후로, 미루는 다시 벽 저편의 친구를 만날 수 없었다. 헤어지기 전날 미루는 벽 저편의 친구의 이름을 알아냈다. 그 친구의 이름은 돈이었다. 그날 이상하게도 뉴스에서는 돈이라는 탐사선이 지구와 교신이 끊겼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