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정윤-제8강, 읽기부터 하라.
1. 작가 소개
서하진은 1960년도 경북 영천 출신으로 하진은 필명이다. 경희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수학한다. 1994년 '현대문학' 신인상에 <그림자 외출>이 당선되며 문단에 데뷔하여 다수의 작품을 통해 '여성의 내면과 관계, 금기된 사랑'을 섬세하게 포착하여 주목을 받는다. 서하진의 작품은 사랑과 상처, 그리고 그로 인한 인간 내면의 균열을 탐구하는 주제가 많다.
2. 줄거리
한 여자가 차를 몰고 혼자서 제부도를 찾는다.
섬 입구, 아이를 등에 업은 여자의 횟집에 들러 맥주를 시킨다.
내려놓은 유리잔에 입술연지 자국에서 그를 본다. ‘안색이 안 좋아. 또 잠 못 잤구나?’
협궤열차와 길옆의 하얀 싸리꽃, 한없이 따라오던 갈매기.
그와 동행했던 길을 따라 그녀도 재우쳐 간다.
그녀 어머니의 남자.
일 년이면 서너 번 모습을 보이는 희멀쑥한 얼굴. 동네의 어느 아저씨와도 닮지 않은,
아버지가 가져오는 세발자전거 자동차 장난감…. 등의 위세와 따라붙는 가슴앓이.
‘어데 높은 양반인갑데. 부인이 있는데 속아서 결혼했다지 아마. 다방인지, 술집인지….’
아마도 캠퍼스 연인쯤, 신분 차이로 결혼을 반대하여 결국 숨겨진 여자가 되고 말았을. 그리고 물에서 죽음을 맞는.
그녀의 남자, 그의 존재.
고향에서 떠나와 서울의 봉제공장. 악착같이 공부해 지금의 사무직으로 옮겨와 그와 한 사무실에서 만났을 때
그는 허튼 농담 한번 건네지 않은 유일한 남자였다. 차갑고 무뚝뚝한 무심한 남자.
그를 사랑하게 된 것은 그 무심함 때문이었으리라.
인천의 초등학교 선생인 여자에게 그를 뺏기게 된 그녀. 그 후로 숨은 여자가 된.
그러면서도 그를 떠날 수 없었던 것은…. 밤마다 대여섯 개의 캔맥주를 마셔야 하는 이유.
소설은 생략의 미학일까.사무실 동료가 결혼에서 밀리고 내내 순종의 연인이 된 사연. 전날 사표를 던진채 함께 한 여행에서 그녀를 두고 사라져야했던 이유.
그날 정복의 군인은 ‘네 시 삼십 분까지 돌아오십시오. ‘라고 말했다. 검문하던 군인의 말대로라면 아직 20분 동안은 길이 열려있을 터였다. 오후 여섯 시면 사라질 잠깐의 길이.
그는 사라졌다. 저편으로 나가지도 않았고 내게로 돌아오지도 않는 그는 결국 물속으로 사라졌다.
서울로 돌아온 후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건다. 돌아온 것은 또다른 비보.
오늘, 그녀는 다시 제부도를 찾는다. 그를 따라 그녀도 간다.
두려워하지 마. 이제 돌아가는 거야.
남자는 바닷길에서 사라지고, 어머니도 물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결국 그녀 자신도 같은 길을 간다.
춤추는 바다를 그녀는 그 파도를 닮은 손짓으로 밀어내며 어둠 속으로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3. 글의 분석
’나‘는 어머니의 운명을 살게 된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버리고 큰 집으로 가고 어머니는 물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나‘역시 그에게서 버림받고 물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이 소설의 시점은 일인칭이며 화자는 ’나‘가 된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 그, 갈매기, 협궤열차 등을 초점화 대상으로 삼는다. ’나‘는 여러 대상을 관찰함으로써 과거 기억을 회상하고 삶의 비극적 진실을 드러내고 있다.
4. 감상평
끝까지 그녀의 죽음은 예정할 수 없었다. 그의 죽음도 마찬가지. 나름 절제된 소설의 나열방식이 좋았다.
소실이었던 엄마의 길을, 유부남을 사랑하며 그대로 걷다가 죽음 또한 같은 방법으로 맞이하는 인간 윤회의 이야기에서 느끼는 안타까움은 하루 두번만 허락하고 사라져버리는 바닷길에서 위안을 얻는다. 그래 모든건 부질없는거야. 이 글을 읽고 난 오후나절, 두서없이 휘휘거리는 나는 서하진을 뒤적인다.